논어를 읽다 04 (이인편)

이인편은 어진 것의 도리를 말한다고 되어 있으나, 의식주에 대한 언급이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보인다.

어떻게 사는냐 하는 문제는 어디에 사느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공자는 풍속이 온화하고 어진 사람이 사는 마을에 사는 것이 아름답다. 이런 마을에 살지 아니하면서 어떻게 슬기롭다 하겠는가? 1이인-01 : 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 라고 말한다.

오늘 날에 우리가 자신이 살 곳을 선택할 때의 기준을 전혀 이와 같지 않다. 우리의 기준은 소인의 기준에 따른다. 즉 소인배들은 땅에 집착한다고 하듯, 주택의 평수, 교통의 편의성, 학군, 학원 및 편의시설 등과 함께 보유하고 있는 주택의 환가가치를 생각하고 집을 고른다. 아니면 자신의 금전적 능력에 따라 반지하의 사글세로 살 수 밖에 없다.

이웃은 집을 구하는 데, 더 이상 고려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평수중독증에 걸려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 고립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과의 유대를 통하여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한다면 좋은 이웃과 동료는 나의 삶을 고양시키고 보다 풍요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담과 벽, 집에 사는 사람들의 이름(순이네)이 탈색된 203동, 그것은 외부에 자신을 스스로 차단한 감옥과 수감번호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웃과 고립된 사람들이 블로그를 하면서 익명의 그림자 속에서 외로움을 달랜다.

이러한 고립은 아이들이 함께 뛰어놀지 못하게 하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친구들을 좋은 성적이라는 것을 탈취하기 위한 경쟁자들로 전락시키고, IQ와 성적 외의 인간의 덕성은 이 험난한 세상을 살기에 오히려 불편한 요소라고 가르친다. 부모와 이웃들이 지켜보는 마을과 동네라는 공간 속에서 아이들이 친교하며 덕성을 일궈가기엔, 이 도시는 너무도 삭막하다.

인문지리지인 이중환의 택리지의 복거총론에는 살 터를 잡는데는 地理, 生理, 人心, 山水가 좋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공자와 같은 철인이 아니라, 학자로서의 관점에서 살만한 곳을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지리는 산, 물, 볕, 토질 등이 인간의 몸과 살림살이에 적합한가, 생리는 사는 곳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 자손이 번성할 수 있느냐, 인심은 바로 위의 공자의 이인위미의 구절과 맹모삼천지교를 거론하고 있다. 산수는 가까운 곳에 소풍할 곳이 없으면 사람의 정서를 화창하게 할 수 없다고 한다.

먹고 입는 것에 대하여 공자는 도에 뜻을 두고 있는 신사로서 옷이 허름하고 먹는 것이 조악하다고 수치스러워 하는 자와는 함께 이야기할 가치가 없다 2이인-09 : 士志於道, 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 고 한다. 이것은 자신의 분수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더불어 그는 근신절제를 하는 사람이 과실을 범하는 일은 드물다 3이인-23 : 以約失之者鮮矣. 고 한다. 이 구절에서 약(約)은 약속의 개념이지만 검약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신용카드 문제는 (먹고 입는 데) 절약과 절제가 안되어 돈을 갚겠다는 약속을 이행치 못한 사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신용을 상실하여 더욱 곤란한 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 곤란한 상태를 극복치 못하여 극단적으로는 절도, 살인강도 등의 범법행위을 통하여 채무를 갚거나, 자살이라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절약과 절제가 안될 때 그 과실의 크기란 이와 같다.

그러나 이 사회가 아이들에게 근검절약을 가르치기란 어려운 것 같다. 나 조차도 지갑 안의 돈만 보면 어쩔 줄 모르는 소모성 질환을 앓고 있으니 자식들에게 아끼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울 지경이다.

이인편에 논어의 핵심 구절이 나오는 바, 앞의 이야기와 연관은 없으나 거론하고 가자.

공자: 증삼아! 나의 가르침은 하나로 처음부터 끝까지 관철되어 있느니라.
증삼: 그렇습니다.
공자가 나가자 동창들이 와서 말했다.
동창: 선생님이 시방 무신 말씸을 하신게냐?
증삼: 선생님의 가르침은 忠恕일 뿐이야.
4이인-15 : 子曰: 參乎! 吾道一以貫之. 曾子曰: 唯. 子出. 門人問曰: 何謂也?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5

여기에서 충서란 무엇인가? 忠이란 국가나 왕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에게는 효를 아래에는 다사로움을 말한다”(孝慈則忠) 이것이 통치이념으로 차용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충이란 적극적인 행동규범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하는 것이다. “恕란 수동적인 규범으로 자신이 싫은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는 것이다.

※ 忠恕란 孝慈則忠(논어 위정편),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논어 위령공편)이다.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유리알 유희 09.01.29. 15:19
    네, 덕분에 쉽게 논어를 접합니다. 그리고 반성합니다. 예전과 달리 여러번 이사를 다니고 떠돌다 보니 저도 아래위층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는 처지가 되었거든요. 쩝!

    다리우스 09.01.30. 23:02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습니다.

    旅인 09.01.31. 18:33
    빨리 논어를 읽어가야 하는데, 진도가 안나갑니다. 슬슬 올리겠습니다.
    ┗ 다리우스 09.02.05. 19:43
    네 천천히 하셔서 되씹어 볼 시간을 주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난 향 09.02.06. 09:40
    덕분에 잊고지내던 논어를 다시 봅니다..충서의 뜻을 다시 새기며….충성하고 용서하란 뜻인것만 알았습니다..화를 가끔 잘 내는 내겐 특별히” 충 “보다 “서 “를 기억해야 할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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