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극장에 대한 추억

삐삐님의 블로그에 들렀다가 남과 여의 주제가(원 주제가와는 달리 약간 풀린듯한 음악이었지만)를 들었다. 음악을 듣다 보니 어린 시절에 영화가 나에게 주었던 감흥이 불현듯 살아났다.

사실 블로그에서 음악과 영화에 대하여 글을 쓰거나 포스팅을 금하면, 블로그의 존립 자체가 의문시 될 정도로 막강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니들이 영화를 알아 !? 하고 한번 을러보고 싶을 정도다. 그들의 평과 감상은 분석적이고, 감각적이며, 감독과 배우 이름과 거기에 나온 음악 등을 도배하고 볼짱 다보았다는 식이다. 즉 내가 보기에는 너무도 프로페셔널하게 썼다는 것이다. 아예 공책을 들고 극장으로 가라하고 싶을 정도로…

남과 여(Un Homme Et Une Femme)는 쌍육년 시월에 출시되었으니까, 내가 본 때는 육칠년 아니면 육팔년 쯤 되었으리라. 그리고 78년 거의 십년이라는 세월 후에 대한극장에서 리바이벌되었다.

리바이벌된 영화를 여자친구와 함께 보았다. 영화가 끝난 후, 여자친구는 나를 기적과 같이 쳐다 보았다. 우선은 초등학교의 학생이 어려운 성인영화를 홀로 보았다는 것과 십년이라는 세월동안 내용을 파편처럼 기억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번 들어올 때가 되었는 데 소리를 한 후 불과 몇개월이 안되어 다시 리바이벌되었다는 것들이, 아주 하찮은 것임에도 그녀에게는 놀라움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영화란 나에게 이차원의 스크린 위에 춤추는 빛들의 몽상 이상의 것이었다. 헐거운 외로움과 희미한 어린 추억들이 한 어린아이를 극장 앞으로 유혹했고, 두려움과 들뜬 호기심으로 컴컴한 극장 안으로 말려들어가곤 했다.

그러면 오랜된 어둠에 짖눌려 서늘해진 공기 속에 담배냄새가 섞이고 있었고, 영사기가 차르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빛이 뭉쳐있는 스크린 위에는 스크레치 비가 지익지익 소리를 내듯 내리고 있었다. 그 스크레치 비와 함께 대부분의 영화들은 우울에 들뜨거나, 내가 이해하기에는 아련했다. 갑자기 화면의 중간이 덜커덕 짤리면서 전혀 관계가 없는 장면으로 접혀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면 어둠 속에 움크리고 전면을 응시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은 절망에 가까운 비명을 잠시 내지르곤 이내 잠잠해졌다. 그쯤 되면 스크린에 머물던 빛들이 서서히 용해되어, 어느 정도 극장 안을 식별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코와 입술과 턱선에만 빛이 머물고 있고, 나머지 부분은 어둠 속에 잠겨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들의 무료함과 외로움을 알 수 있었다. 삼류극장 안에 깃든 그들은 대부분 남자였고, 홀로였다. 그래서 극장 안에는 소근거림도 없고, 간혹 담배불을 빨아들이는 붉은 빛이 이곳 저곳에서 한숨처럼 피었다가 사라지고, 영사기에서 나오는 광선 속으로 연기로 흡입되곤 했다.

극장 안의 어둠이 허옇게 들뜰 때 즈음이면,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러면 알 수 없는 말들을 지껄이는, 경탄할만한 용모을 지닌 사람들이, 존재할 것 같지 않는 풍요의 도시와 품위있는 골목을 거니는 장면이 나왔다. 거기에는 연탄재와 음식찌꺼기도 없고, 값 비싼 차가 거리를 흘러가고 있었다. 배우들의 얼굴에 어리는 우울과 고뇌는 현실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잘 살고, 아쉬울 것이 없었다. 그들은 다른 것, 사랑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나는 어렸다. 무엇보다도 화면 한 쪽 구석의 자막과 화면을 동시에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그 영화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클로드 를루슈의 <남과 여>는 무수한 시간을 보냈던 종로 2가 모퉁이의 화신백화점 맨 윗층, 화신극장에서 본 영화 중 최초의 예술영화이자, 어느 정도 이해한 영화였다.

줄거리라면, 과부와 홀아비가 아이들의 학교에서 만나게 되고, 함께 어디론가 놀러가게 되고, 전남편과 부인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자신들이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는 지를 살펴본 다음, 서로 살을 섞고 헤어진다는 지극히 단순하고 통속적인 줄거리 속에서 자동차 경주가 벌어지고, 지금 나오는 주제가가 시속 60Km로 깔리고 하는 영화이다.

내가 본 영화 속에서 명장면이라고 하면, <금지된 장난>에서 성당 뒷켠 공터에 온갖 죽은 것들의 무덤에 떨어지는 은빛 햇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과 아버지가 너도밤나무 아래에 함께 서 있을 때, 타라농장 저 편 광야로 서서히 물들어가는 석양, 이 영화에서 해변에서 노인과 다리가 짧은 개가 해를 등지고 카메라 앵글 속으로 촛점이 풀려가면서 걸어들어오는 장면이다. 물론 <카사블랑카>의 공항에서 잉그릿 버그만이 눈물을 흘리며 가물한 빛 속에 소멸되는 듯한 모습도 좋지만, 그것은 영화관에서 본 것은 아니고, 이제 흑백의 카사블랑카는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삼류극장에서 본 <남과 여>에서의 사랑은, 그저 담담하기만 한 중년의 사랑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그들이 왜 헤어짐을 택해야 했는지 이해하지는 못했다. (결국은 다시 만나지만) 십년 후에도 필연성 없는 헤어짐을 또 다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절제되고 산문화된 그와 같은 사랑, 그래서 불타오르지 못한 채 꺼져버릴 사랑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어린 시절, 얼마나 많은 영화관을 전전했던가? 그러나 내가 매료된 것은 영화 그 자체는 아니었는 지도 모른다. 이용복의 일기를 영화화한 <저 하늘에도 슬픔이> 세종로의 국제극장에서 상영될 때, 만장하신 관객 여러분이 손수건을 짜가며 울어도, 화면 가득한 가난을 목도하면서 울 수가 없었다. 그것은 슬퍼해야 할 것이 아닌 고통이었다. 극장을 나왔을 때, 국제극장 앞의 분수대는 여름 밤을 향하여 물을 뿜어대고 있었고 밤 바람이 불었다. 그때 전차가 밤 하늘에 스파크를 일으키며 중앙청을 향하여 좌회전을 했다. 영화는 현실과 꿈의 접경이었고, 꿈을 지나서 극장 문을 나서는 그 순간, 도시의 냄새와 바람 속에서 문득 다가오는 현실의 그 명료함을 잠시나마 맞이했을 것이다. 나는 그 밤의 짙었던 여름 밤의 냄새를, 반바지의 종아리와 속살을 파고 들던 바람을, 여름에 들뜬 공기를, 밤 속으로 풀려가는 사람들을, 추억한다.

어린 시절 나의 나와바리는 <효자동 이발사>가 살던 옆 동네였고, 외로움이 지닌 헐거움을 즐기기 시작했던 나는, 홀로 종로로 가거나 세종로를 따라가다 극장이 있으면 그 어둠 속에 잠수하여 꿈을 꾸었다. 나는 꿈 속에서 태고(공룡백만년) 속으로 간 라켈 웰치의 육감적인 다리와 터질듯한 가슴을 보며 어린 정염이 꿈틀대는 것을 느꼈고, <초원의 빛>에서 나탈리 우드의 젊은 사랑이 짓밟히고 워즈워드의 시와 함께 사랑했던 자에게서 멀어져 갈 수 밖에 없을 때, 그 아픔으로 며칠을 앓았다. 그것은 분명히 다가갈 수 없는 꿈임에도, 영화는 그 모든 것을 천연덕스럽게 펼쳐보였고, 나는 꿈의 실마리를 찾아 어둠 속을 전전했다.

나는 더 이상 극장을 가지 않는다. 이제는 삼류영화관 속에 배어있던 담배냄새와 어둠 속에 길들여진 밀폐된 차가운 공기, 그 속에 감돌던 허무하고 침울한 외로움이 지금의 극장에는 더 이상 없다. 가난이 어둠 속에 묻히고 무수한 사람들의 엉덩이에 짓이겨진 나무판때기를 홑겹으로 둘러싼 비로도의 감촉도 더 이상 없다.

물론 영화가 그때보다 못하지는 않을지라도, 사랑의 색깔은 너무 진하고, 너무 재미있거나, 너무 환상적이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멀리 가 있는 것이다.

어느 삼류가 이본동시상영의 낡은 극장을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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