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오다(옥녀탕)

옥녀탕 휴게소 아래, 민박집에 주인도 없이 나 홀로 있다.

휴게소의 식당 불이 꺼지고, 휴게소를 지키던 여직원마저 사라졌다. 화장실 불을 소등한 후, 휴게소 앞의 공터에 서자, 옥녀탕 계곡의 어둠이 야음을 타고 거대한 몸체로 내 앞에 선다. 그것이 어둠인 지 밤인지를 나는 분간할 수 없다.

밖으로 나가 별을 보지 않는다. 어둠이 무섭다. 아직 풀리지 않은 개울의 소리는 어둠 저 밑에서 침울하게 흐른다. 방의 등을 밝히고 ‘칼의 노래’를 읽는다.

오랜만에 읽어 보는 소설이다. 이순신 장군의 독백에서 우수영 앞 바다의 살이 썩어가는 냄새가나고 서캐가 살 비듬을 파먹고 자라는 간지러움을 느낀다. 차디찬 칼 비린내와 피비린내가 난다.

소설 속의 이순신 장군은 ‘즉자적 나’의 이미지가 탈각됨으로써 고뇌하고 있다. 정유년 가토를 잡아들이지 않는다고 체포되고 백의종군을 하다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참패하자 선조는 못마땅하나 그에게 삼도수군통제사를 명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과거와 같이 국가에 충성하기만 할 뿐인 즉자적인 장군 이순신으로 존재할 수 없었다. 그는 왜적들을 단순하고 투명한 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이 자신을 적으로 대함으로써 그들의 적이 되었고 그래서 적으로써의 치열한 적의를 갖는다고 한다.

얼마나 단순하고 복합적인가? 그는 적들에 의해 규정된 ‘나’와 임금과 조정의 정치적인 시야 속에서 생존방식을 찾아야 하는 ‘나’는 합치될 수 없기에 처절하기만 하다. 적과의 싸움보다 허기와의 싸움에서 메주뜨는 냄새는 피비린내보다 질기고 강렬하다. 적과의 싸움에서 패배는 삶을 구할 길이 있어도 허기와의 싸움에서는 죽음 밖에 물러설 구석은 없다.

자고자 책을 펼치나 책은 심사를 긁고 견고한 불면으로 이끌 뿐이다.

탄핵정국에 칩거하는 노 대통령이 읽고 있는 중이란다.

TV의 시국토론회의 시끄러운 소리에 뒤척이다 잠을 깨니 한 시 삼십 분. 설악산 옥녀탕을 감싸고 도는 개울소리가 한결 시끄러운 것을 보니 봄이 분명하다.

다시 ‘칼의 노래’를 읽는다. 잠을 청하건만 잠이 올 것 같지는 않다.

결국 네 시간을 뜬 눈으로 보낸 후 다섯 시 삼십 분 민박을 벗어난다.

민박집으로 부터 어둠을 더듬거리며 휴게소 주차장에 있는 차에 겨우 당도했다.

한계령 쪽으로 밀려간 나무 그림자 위로 박명의 빛이 오르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 잠겨있는 장수대, 한계령 휴게소를 지난다. 지나는 차가 없어 라이트를 하이 빔으로 올렸다. 급커브 경고판과 반사판들이 인불마냥 일어난다.

산 구비의 나뭇가지들이 미명 속에 잔설마냥 허옇다. 아마도 겨울의 음울한 색을 덜어내기 위하여 잎이 나기 전까지 이른 볕에 탈색 중일 것이다.

하늘은 점점 엷어지지만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라이트 위에 놓여진 도로와 엔진소리와 불면으로 몽롱한 나의 정신이 일치되고 있었다. 차가 달리는 것도, 내가 있다는 것도, 그리고 한계령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도, 무의미했다. 아니 규정할 수 없는 것,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 몸서리치며 몰려와 시속 80킬로로 가속하도록 충동할 뿐이다.

오색을 지나고 한참을 간 후에 라이트를 껐다. 도로는 침침하고 공허하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지만 침울하고 조용한 새벽 속에 모든 사물들이 차분하게 자신의 모습을 보였다.

한계령의 틈으로 흘러내린 개천 위로 모래톱이 있고 나무들이 자란다. 아마 아름다움과 슬픔같은 것을 맛 보았을 것이다. 어제 두물머리(양수리)를 지나면서 만났던 감상이 아닌가? 그러나 양수리에서는 흐르지 못하여 역류하는 물에 뿌리를 빨며 머리를 차가운 봄바람에 날리는 나무의 곤궁함이 슬펐고, 오늘은 어둔 개울을 타고 깨어나는 아침이 서글프게도 아름답다.

양양의 옆 길로 강릉으로 내려간다.

하조대에 이르자 해가 올랐다. 해가 뜨는 바다는 조용하여 기름먹인 듯 하다.

개울 위에 서린 안개가 포구를 향해 머리를 풀며 달려가는 것이 보인다. 안개는 춤을 추며 해무와 포옹을 한 후, 옷을 벗고 넓은 바다 위에 몸을 누인다. 갈매기가 통속적으로 포구 위를 난다. 너무도 통속적이어서 잠시 멈추고 싶었으나, 시속 백여키로로 내 뒤를 압박하는 차량 때문에 벌써 그 곳을 벗어나 있었다.

대지 위를 각도 오의 아침 햇살이 비추었다. 그 빛은 투명하여 대지의 속살마저 보여줄 것 같았다. 몽롱했던 정신도 조금은 맑아지는 것 같다.

영동고속도로에 올랐고 뒤차가 야음을 타고 내습하는 적들과 같이 나를 추월했고, 나는 다시 앞차를 스쳐 지나면서 서울에 도착하였다.

봄을 찾아 길을 떠났으나, 따스한 봄바람에 집 앞에 놓인 목련이 지고 있을 뿐이다.

2004.3.28일의 일을 2005/03/18 11:29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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