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중감 김훈을 위하여

독중감(讀中感)이란 다급해서 읽던 책을 잠시 밀쳐두고 쓰는 감상문이 될 것이다. 책은 특히 소설, 시, 수필등의 문학적 범주에 드는 책이란 여유를 갖고 읽어야 함에도, 허허로운 여적의 감상을 재쳐두고, 다급히 책장의 귀퉁이를 접어놓고 읽는 중의 느낌을 적게 만드는 심사란 무엇인가?

김훈이 나를 그렇게 만든다. 그 글은 간결하면서도 사물과 생각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그의 글을 들여다 보면 금새 그가 얄미워진다. 표현하지 말고 넘어가도 될, 아니 넘어가야 할, 하찮게 여겨지는 마지막 숨통을 꽉 쪼우면서, 반드시, 여지없이, 짚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세상의 더러움에 치가 떨렸고, 세상의 더러움을 말할 때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까워서 가슴이 아팠다. 저물어서 강가에 나가니, 내 마을의 늙은 강은 증오조차도 마침내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밥벌이의 지겨움, 책머리에

비록 내가 먹물을 팔아 끼니를 때우고자 하는 삶도 아니고 그럴 의사도 없지만, 내 글 속에 낭자한 <그래서, 그런데, 그러나, 또, 그리고, 또, 과, 기타 등등>으로 어거지로 조각난 낱말과 문장을 덧이어가는 지루함은, 그의 글을 보면 문득 낱말들이 재잘거리거나, 고유한 색깔로 선명하고, 문장은 숨가뿐 오르내림으로 노래를 그리고 있다. 그 글은 몽당연필로 쓴 듯 짧고 힘차다.

김제는 아득하다. 아득한 농경지가 끝나는 해안선에서 다시 아득한 갯벌이 펼쳐지고 바다 는 그 갯벌 너머에서 신기루처럼 반짝인다. 강의 음악은 하구에 이르러 들리지 않는다. 강의 음역은 넓어져서 인간의 청력 범위를 넘어선다. …… 빛들의 죽음은 모든 순간마다 생사존망이 명멸하지만, 그 갯벌 전체에서 빛들의 죽음은 고요하고 가지런하다. 빛들은 어둠과 습합되는 방식으로 죽는 것이어서 빛의 죽음은 죽음의 자취를 드러내지 않고, 삶과 죽음의 경계는 지워진다.

같은 책, 큰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중

정말로 이 풍경이 아득하지 아니한가?

내가 다급히 독중감을 쓴 또 다른 이유는, 그의 글은 몇 장만 넘겨보면 더 이상 볼 것이 없다는 것 때문이다. 그의 글에는 배울 것이 없다. 또 외울 것도 없고, 줄거리도 없다. 남는 것은 다만 느끼는 것이다. 즉 읽고 나면 느낌만 남아있기 때문에 더 이상 감상을 더할 꺼리가 없다. 그의 좋아하는 낱말대로 그의 글은 내 살 속으로 습합될 뿐이다.

나는 그가 줄기찬 생명을 갖고 글을 계속 써주기를 바란다. 좋아했던 작가들의 글의 세월이 짧아서 아쉬웠지만, 제발 더 이상의 절필이 없이, 가슴이 아파도, 글을 써 주길 바란다.

그의 아버지(김광주 씨)가 임시정부에서 돌아와 창씨개명을 하고 일인들 밑에서 노예처럼 비굴하게 살았던 고국의 동포들에 대해서 후일 그에게,

그 비굴한 대다수의 동포들이 바로 민족과 국토와 언어를 보존한 힘이었다.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김훈, 그는 우리보다 더 치욕과 비굴을 치열하게 느끼고, 몽당연필에 침을 칠해가며 꾹꾹 눌러씀으로써 우리가 그것들을 넘어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참고> 밥벌이의 지겨움

This Post Has 3 Comments

  1. 善水

    와.. 옳으신 말씀입니다. 저분 글은 제가 에너지가 넘칠때 봐야 하는 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네요, 느낌이 남아있네요 저분이 언젠간 함께 나눠가질 희망을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여간해서 책읽기를 안하는데=.= 참 훌륭하신 분들을 보면 다 책을 많이 읽으신 분들이 많은것 같아요 여인님도 그러실거 같고요^^

    1. 여인

      한동안 소설을 안 읽다가 김훈씨의 책과 충돌했습니다. 그의 책을 읽다가 그가 일정시대의 영향에서 벗어나 한글로 글을 배우고 쓰기 시작한 작가 중 제가 최초로 만난 작가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김훈씨의 글을 다른 나라의 글로 번역한다면, 글 맛이 날까하고 생각해보니 그렇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글이 지닌 우리 냄새를 저는 사랑합니다.

      그리고 신예작가들의 글들도 우리 글의 냄새가 점점 짙어지는 것 같습니다.

    2. 善水

      아 그렇군요 정말 그 좀 거칠기도 하고 우리말로만 그 정서가 공감되는 청,촉,후,미,시각을 그렇게 간질간질 후려치게 표현하기는 일단 영어로는 어려울것 같네요 우리 글의 냄새가 짙어지는 신예 작가들의 글들 추천해주세요~~ 흠.. 근데 제가 아무래도.. 그래도 아마도 언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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