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티 시티의 하루

Makati City라고 불리는 이 곳, 마닐라의 건너편은 온갖 것이 섭씨 30도의 시간 속에서 녹아가는 곳이다.

25시간만 주어진 필리핀 체류 시간 동안, 화장실에 물도 나오지 않는 국제공항 청사 안에서 두 시간째 보내고 있다. 청사의 유리문을 지나면 청사로 다시 들어오기 위해서는 검색을 거쳐야 한다. 담배를 피우기 위하여 나간 후 두 번이나 검문을 받았기에, 일행이 올 때까지 그냥 죽치고 있기로 했다.

이 곳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시간이다.

일본에서 일행이 오고 난 후, 청사를 지나 승차장으로 내려갔다. 승차장 건너편에 철장이 있고 그 뒤로 많은 필리피노들이 서 있었다.

누군가를 마중 나왔던 지, 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사람들은 철장에 몸을 기대고 이 쪽을 건너다 보고 있다. 차가 오지 않아 기다리던 삼십 분 동안, 이쪽을, 움직이지도 않고, 막연한 눈으로, 언제 올 지 모를 그 사람을, 아니면 시간이 지나가기를, 그들은 바라보고 있다. 그 지리한 눈길이 무더웠다.

어디서 나타났는 지 늘씬한 여인이 철장 쪽에서 이 곳으로 도로를 가로지른다. 곡선이 다 드러나도록 착 달라붙은 옷을 입은 여인은 무수한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가슴을 출렁이며, 도로를 가로지른다. 그녀의 당당한 걸음은 폭양 아래의 무료함에 내지르는 고함처럼 신선했다.

차가 왔다. 차를 타고 매트로 마닐라 중 가장 풍요롭다는 마카티 시티로 간다. 오후 네시 반의 폭양과 혼잡스러움을 만난다.

스쿠터와 지프니, 1톤 트럭에 양철로 지붕을 만들고 갖가지 색으로 멋을 부린 버스들이 야자수와 허물어져 내리는 집들의 가운데를 달린다.

썩은 물이 흐르는 강 가에는 판자로 만든 수상가옥들이 새까맣게 곰팡이와 이끼에 그을고, 짓다 만 건물이 있는 공터에는 잡초가 자란다. 철공소와 냉차가게가 맨 땅이 드러난 노변으로 이어졌다.

지글거리는 오후의 길 가는 아련한 우리의 옛 모습이었다.

가난은 모든 것을 길 가로 내놓는다. 아이들을 길거리에 내놓고, 노동에 찌든 구멍 난 런닝셔츠와 좌판과 하꼬방들을. 세상의 온갖 구정물과 함께.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가난이 도시의 변두리와 외곽으로 밀려나고, 좌판들이 유리창 안으로 들어가면 풍요 속에서 행복하리라 여겼다. 이 곳을 잠시 일별하니 그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가난을 보이지 않는 곳에 숨기고, 그것을 죄악으로 내화하며, 겉으로 풍요를 가장하고 부유를 갈망한다. 그리고 이 곳에 와 교만의 얼굴로 저들의 가난을 비웃는다. 이제 거리는 가난한 사람이 만나고 시간을 보내는 곳이 아니라, 지나가는 곳의 값어치 밖에 남지 않았다. 또한 노동이 공장의 담벼락 속에 감추어질 때, 노동은 더 이상 하늘과 지나가는 행인과 아이들과 섞이지 못하고, 기계와 표준서와 작업할당표와 시간과의 대립 밖에 남지 않는다.

밖으로 드러남으로 해서 저들은 행복할 지도 모른다. 가난은 늘 있어 왔기에, 여기와 저기에 거기에 넘쳐 나고 있기에, 더 이상 부끄럽지 않고, 생존만이 문제될 때, 값싼 도덕과 염치는 한날 사치이며, 한끼의 식사를 위하여 뭐든 할 수 있고, 식은 저녁밥과 밤이 있다는 것은 지극한 축복이다.

고객과의 상담을 끝내고 호텔로 향할 때, 시각은 다섯시 반, 퇴근 때였다.

거리의 곳곳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석양이 그림자를 길게 그리도록, 그들은 꼼짝도 않고, 버스를 기다린다. 그들의 모습은 석양 빛 아래 마르고 그로테스크 해 보였다.

마카티 시티의 중심부에 들어설 때, 도시의 뒷길을 지나는 단선의 철로를 보았다. 그리고 판자집들, 철로를 따라 이층 삼층으로 길게 연이어져 있다. 그 뒤로 다운 타운의 검은 건물들이 판자집들을 덮치고 있었다.

철로의 중간, 시멘트로 승강장이라고 표시해 둔 것 같은 곳에, 사람들은 언제올 지 모를 기차를 기다리며, 멍한 표정으로 또 어딘가를 본다. 그들의 망연한 응시 속에 여름의 한 낮이 지글거리며 녹고, 시간이 가고, 밤이 내습하기 시작했다.

휘황한 에스파냐식의 건물 건너편, 호텔에 들어설 때 우리는 다시 검문을 받았다.

방에 올라가자 그 사이에 이미 밤이 되었다.

창 밖으로 보는 밤은 짙은 에머랄드 빛으로 낮의 폭염과 도시의 남루를 지워가고, 어둠 저 편으로는 아득한 빛만이 점점이 보였다.

짐을 놓고 우리는 남국풍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악단들이 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남국의 밤처럼 감미로웠다.

음식은 맛있으나 허기가 가시지 않았다. 좀 더 먹기를 바랐으나, 그들은 가라오케를 가자고 했다.

차는 어두운 골목을 지났다.

골목의 어둠은 은밀하고 깊었다. 때로 어둠 저 편에서 아가씨들이 유령처럼 떠올랐다가 웃음을 지으며 사라졌다. 그리고 나면 어둠은 더욱 깊어지고 공허해졌다.

가라오케로 올라가자 마담은 유리창 안에 있는 여자를 고르라고 했다. 한 삼사십명의 여자들이 여권사진을 찍는 표정으로 웃었다. 밖에서 창 안을 호기심에 깃든 눈동자로 들여다 보는 어느 남자의 수줍은 표정이 재미있어 웃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창 밖의 여섯명의 남자. 그녀들이 누구에게 눈을 맞추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나는 은은한 미소를 지닌 여자를 골랐다.

마담은 내가 그 여자를 고른 것에 화가 난듯한 억양으로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자신이 선택된 것을 모른 듯 어리둥절해 했고, 마담은 억양을 더욱 높였다.

같이 간 일본인들은 들어서자 마자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나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여자에게 내 대신 노래해주기를 부탁했다.
여자는 노래를 못한다고 했다.

여자가 나에게 무엇을 잘하냐고 물었다.
춤은 출 수 있다고 했다.
방이 좁아서 춤을 출 수 없는 데… 했다.
그래서 춤을 출 수 있다고 말했다 고 했다.
그녀는 내 가슴을 치며 조용하게 웃었다. 그녀의 웃음을 보면서 그제서야 내가 아주 먼 곳에서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

다섯 살 된 딸이 있다고 했다. 나이는 스물셋. 삼 년째 그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젊은 그녀의 얼굴에 어리는 담담함은 어머니로써의 그것일까?

왜 자신을 택했냐고 물었다.
당신의 얼굴을 보고 난 후, 고를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건너편에 있는 아가씨를 가리키며 저 아가씨가 예쁘지 않냐고 물었다.
예쁘지만 당신만은 못하다고 했다.
그녀는 내가 한국인과 필리피노의 피가 반반씩 섞인 것처럼 생겼다고 했다.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라고 하기에 노래방 책을 펼쳤다. 그러나 거기에는 일본어 밖에 없었다. 나를 이해해 달라며 노래방 책을 덮었다.

나는 여자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다.
라구나!
라구나? 거기는 머나먼 곳 어느 한적한 해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도시의 가난이 한낱 신화 같이 여겨지는 곳이기를 빌었다.
라구나에 가 본지가 얼마나 되냐고 물었다.
그녀는 웃으며 매일 간다고 했다. 아침 일곱 시에 퇴근하면 여덟 시에 잠을 잘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곳이라고 했다. 때론 새벽 세 시에 버스를 타고 가기도 한다고 했다.

늦은 잠을 자는 그 바닥이 어떠한 가를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의 피곤한 육신이 눕는 곳, 그곳이 차고 습기 진 곳이 아닌가하고 안스러웠다.

그것을 묻지 못하고 그렇게 늦게 퇴근하면 남편이 싫어하지 않느냐고 했다.
남편이 없다고 했다.
나는 당황했고, 딸이 있다고 하지 않았냐고 했다.
그녀는 웃으며 자신에게 딸은 없다고 했다.
만약 당신과 사랑한다면 딸이 있을 지도 모른다며 내 가슴에 안겨 왔다.
그때 마음이 이 낡은 이야기를 위하여 값싼 사랑이, 허무하기 그지 없는 사랑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속삭였다.

좀더 그렇게 있고 싶었다.

그러나 저들은 간절하게 나에게 노래를 요구했다. 할 수 없이 서양 창가를 골랐다. 가라오케의 쿵작쿵작 소리 속에 나의 목소리를 감추고자 낮게 노래 불렀다.

한 장의 그림에 수천개의 낱말을 그릴 수 있다면
어찌 그대 모습을 그리지 못하겠나요
제가 알게 된 당신을 그 말들이 보여줄 수는 없다 하여도
한 얼굴에 수천척의 배를 띄울 수 있다면
저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당신 말고는 제가 깃들 곳은 없으니까요
당신은 제게 남겨진 모든 것이기에
그리고 삶에 대한 저의 애착이 점점 시들어갈 때,
제게 다가와 당신을 채워주세요
한번에 사람이 두 곳에 있을 수 있다면,
전 당신과 함께 하리다
내일도 오늘도 당신 곁에 언제나
세계가 회전을 멈추고 서서히 사멸해 간다면
마지막을 당신과 보내리다
그리고 세상이 완전히 끝나고,
별들이 하나씩 하나씩 사라져버리면
당신과 저는 흔적없이 날아가 사라지이다          <If / Bread>

노래는 그녀들의 노래 속에 묻혀 합창이 되어버렸다. 노래를 마치자 그녀들은 나보고 잘 불렀다고 했다. 아니었다. 자신들이 간절히 원하는 사랑의 송가를, 값싼 돈에 짧은 사랑을 팔아야 하는 그들에게 던져주었고, 환호했을 뿐이다.

그녀는 다시 필리핀에 올 것이냐고 물었다.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온다면 가족과 함께 올 것이라고 했다.
여자는 혼자 오라고 했다.

잠시 나갔다 돌아 온 그녀는 술집 명함에 자신의 이름과 이 메일 주소를 써 왔다. 메일을 보내라고 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타갈로그어로 뭐라고 하냐고 물었다.
마할 키타(mahal kita).
아무 감흥이 일지 않았다.
감사합니다는?
살라맛 포(salamat po).

합장을 하고 그녀에게 말했다,
살라맛 포.

공허한 밤의 거리를 지나 호텔로 돌아오니 잠이 오지 않았다. 피로가 엄습함에도 나의 잠은 짧았다. 식은 땀처럼 깨어났고, 다섯시 반이었다. 커튼을 열었다. 조수(潮水)의 도시라는 마카티 시티의 하늘에 밤이 썰물처럼 밀려가고 있었다.

2005.03.10~03.12일의 기행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유리알 유희 09.03.19. 01:00
    마카타 시티의 가라오케, 그녀와의 대화가 순수해서 풍광의 묘사보다 그 부분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습니다. 여행이 아닌 출장을 가셔서도 기행문을 쓰시다뇨. 천생 글쟁이로군요. 여인님! 덕분에 필리핀 땅을 상상으로 살며시 밟아 봅니다.
    ┗ 旅인 09.03.20. 09:14
    너무나 짧은 시간 다녀와서 마닐라 시내를 스쳐지난 것으로 출장을 마쳤습니다. 왜 그렇게 필리핀의 가난은 우리의 옛날과 닮았는지 개천변의 집들과 길 가의 철공소 그리고 사람들의 순박한 눈들. 그런 것이 어린 시절을 그립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몹시 피곤한 자리였는데(일본인 4명 한국인 2명, 저는 일본말 모름), 참으로 마음 편하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숲 09.03.19. 05:13
    나는 참으로 여인님이 부럽습니다. 저도 수년 전 메트로 마닐라를 방황하듯 돌아다녔고 수많은 필리핀 미혼모를 만났지요. 그러나 그들에 대한 글 한 줄 못쓰다니요.. 밤마다 카지노 가서 바카라 도박에 푹 빠져 있다가 돌아온 기억 뿐….
    ┗ 旅인 09.03.20. 09:16
    숲님께서는 여행이나 출장을 많이 다니시는 모양이네요. 너무 익숙하면 그곳에 대해서 쓸 것이 없는지도 모르지요. 통상 자신의 방구들 여행기는 쓰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한번 숲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슬 09.03.19. 09:23
    글 잘 읽었습니다..제겐 필리핀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더운것 보다 습하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라요. 고온다습… ^^
    ┗ 旅인 09.03.20. 09:18
    제가 갔을 때는 그래도 습기가 아직 많지 않았던 때였는지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3월에 30도를 넘었으니 여름에는 날씨가 어떨지 상상이 가질 않더군요.

    난 향 09.03.19. 12:54
    여인님의 글은 늘 신선하고 새로워서 좋습니다..이 글을 읽으며 제 필리핀 친구가 생각났습니다..저 위의 여인과 어쩐지 닮아 있는 듯 했습니다..모든 면에서 ..그녀는 가수였고 어찌어찌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지요..그리고 서른 한살의 그녀는 나를 편안하게 잘 따랐는데..가끔 옛이야기하며 눈물 짓기 일쑤였지요..그녀의 고운 얼굴이 겪었을 풍상이 자주 느껴지던 지난 가을 이었지요..
    ┗ 旅인 09.03.20. 09:35
    홍콩에서 필리핀 메이드가 살림을 도와준 적이 있습니다. 아내의 말을 빌자면(저는 거의 만날 기회가 없으니까) 그들은 그것을 허드렛일이 아니라 직업으로 뚜렷이 인식하고 있고, 착하지만 비굴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느낀 것은 그녀들은 가장으로써 집 안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책임감도 컸고, 소박하나마 인생을 즐길 줄도 아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보다 슬픔 또한 찐하게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라비에벨 09.04.01. 09:28
    If 의 선율과 남국의 전경이 조화롭게 상상됩니다. 좋은 기행문…살라맛 포!
    ┗ 旅인 09.04.02. 00:15
    저도 살라맛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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