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에…

13층을 내려간 나는, 담배를 피우고 다시 13층을 올라간다. 커피를 마시고 나니 또 담배가 생각난다. 그래서 또 다시 내려간다. 누군가 담배를 한 개피 달라고 한다.

주머니에 쑤셔박아 꾸겨진 천원짜리 지폐마냥 나의 모습은 볼품없다. 그래서 있지도 않았던 사랑을 추억한다. 무료하기에 분노할 것이라도 찾기 위하여 신문을 읽는다. 인생처럼 단순한 것은 없다. 어제도 살아있었고, 오늘도 살아있었다. 그러나 내일이라고 다를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걱정과 재미없음으로 점철된… 그래도 케이블 TV는 밤새도록 방영된다.

연인이 입을 맞춘다. 사랑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랑에는 유효기간이라는 것이 없다. 무척 짧거나, 금새 시금털털해진다. 사랑의 치명적인 비밀을 알고 있는 영화는 후닥후닥 두시간 만에 이야기를 끝낸다. 그리고 쏘고, 죽이고, 두들겨 패는 영화를 한다. 신난다. 그러나 자야한다.

TV를 끄고 자리에 눕는다. 잠이 죽음처럼 다가온다. 살아있는 것이 무료한 만큼 잠은 달콤하건만, 몸이 살자고 나를 깨운다. 통증과 불쾌감. 그리고 아침.

무의미한 하루를 위해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변기에 앉는다. 그리고 오늘 할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지만, 없다. 귀찮은 일이 없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다시 TV를 켠다. 앵커는 무표정과 심각을 반죽한 얼굴로 뭔가를 이야기한다. 그 사건과 나의 삶과의 함수관계를 계산해 본다. 그러나 나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에이! 빌어먹게 춥겠군. 이발하러 가야 하는데…

식구들은 깨어나는 법이 없다. 늘 내가 깨운다. 일요일인 오늘은 깨우지 않기로 한다. 깨어나면 나를 괴롭히거나 내가 그들을 괴롭힌다. 그리고 서로 혐오하게 된다. 더 이상 생각하면 피곤하니까 생각말자.

다시 드라마를 본다. 심각하게 본다. 저 허구의 드라마를 내 삶에서 제거한다면, 나의 삶에 건더기가 남아 있을까? 없다. 건더기가 있었던 적은? 너무 오래되었다. 기억조차 가물하다.

아저씨! 우울이 뭐야?

삶의 마이너스 형식.

삶은 뭔데?

그딴 것은 딴 데 가서 물어.

3 thoughts on “어느 일요일에…

    1. 세상은 크게 웃으며 넘어가야 합니다. 하하하

      그런데 플러스 형식은 다른 데서 좀 알아서 저한테 갈쳐주시면 안돼요? 저도 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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