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에 대한 생각-1

어느 연예인의 죽음

왜 이은주가 자살을 했죠?
왜 이은주가 죽었데?

그 여자하고 친하지 않아서 잘 몰라.

요 며칠 사이에 이런 질문과 답변이 반복되고 있다.

석연치 않은 그녀의 자살에 대한 의문과 그 배후에 있을 지도 모르는 전설(루머)을 알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느끼는 석연치 않음을 그럴 듯한 루머로 해소해 주기를 그들은 기대하고 있는 듯 했다.

이러저러해서 자살을 했다 라고 그럴듯 하게 내가 씨부리기만 하면, 순식간에 입으로 혹은 인터넷에 유포되고, 누군가가 만들고 있을 지도 모르는 X-File에 등록되고 관리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누구나 정보조작자가 되고 정보발신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1.

자살처럼 명백하고 논리적인 죽음은 없다. 죽음에 대한 의지와 결과가 논리적인 정합관계를 갖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자살에 대한 충동조차 죽음을 감수할 만큼 강렬하다.

노환으로 밥숟가락을 놓음, 숙환으로 관 뚜껑에 못질 등등의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죽을 수 밖에 없었다는 불합리한 운명 속에서,

위와 같이 타당성을 확보하고 있는 자살은,
살아있을 충분한 이유가 있는 살아있는 자들에 의하여 이야기되어진다.

그래서 자살은 충분하게 이해되지 못할 뿐이다.

그녀의 자살에 대해서 의문을 사람들이 가진다는 점에서 이은주의 죽음은 행복하다. 그만큼 이 세상은 죽어 마땅한 자들이 보약까지 먹어가며 집요하게 살아갈 뿐 아니라, 어느 죽음은 너무 흔하여 흔적조차 없다.

자살에 대한 의문은 그녀가 살아 있었어야 하는 데 하는 산 자들의 요청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2.

자살을 해야 할 충분한 이유와 충동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자살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늘 변명되고 있다.

자식 새끼들이 불쌍해서, 울 엄마 가슴에 못을 박을까봐, 이 세상이 불쌍해서 등등…

그들은 타인과 자신의 밖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고 있는 만큼, 자기가 자살해야 할 이유도 내재적인 것이 아니라, 타인과 외부에 의지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간혹, 우연히, 자살의 충동을 겪어본 사람들은 ‘자살을 할 용기가 있다면 무엇을 못하랴’하고 말한다.

그러나 자살이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충동의 문제라는 것을 사람들은 호도하고 있다.

3.

우리가 자살에 대하여 음울한 환상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선택 중 가장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그 선택의 결과는 자신이 의도했던 것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죽음이다. 명백한 자살의 결과는 죽음일 뿐이며, 다른 어떠한 것도 없다.

살아있는 동안 벌어지는 모든 선택은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으며, 어떠한 결과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선택이나 결과를 위한 삶의 과정으로 치환된다. 그러나 죽음은, 윤회고 천당과 지옥이고 지랄이고 자시건 간에, 살아있는 이 곳에선 결과일 뿐, 과정으로 치환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의 음울한 질문은 그 살벌한 선택을 살 아 있 던   인 간 이   어 떻 게    할   수 가   있 었 느 냐 에 있으며,

어떠한 변명과 이유와 유서와 루머가 있다 하더라도,
자살은 석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이은주를 보내며, 친지와 동료 여러분들 제위께…

5 thoughts on “자살에 대한 생각-1

  1. 호스피스 병동에 근무하시는 한 의사분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내 아무런 여한이 없어, 어서 편히 갔으면 좋겠다, 가족들에게 편한 웃음을 지어보이시는 분들도 백이면 백 의사선생님과 단 둘이 있을때면 살수 없냐고, 살려달라고 하신데요, 특히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더한가봐요, 죽음이 두려워서일까요? 무엇을 못했기에 아쉬워서일까요? 생에 대한 사람의 집착이 얼마나 대단한지 소름이 돋았드랬어요, 자살하는 사람은 사실 얼마나 살고 싶었으면 그랬을까요… 누구나 한번 생각 안해보지 않았을텐데.. 아무래도 지금 이대로 죽어봤자 딱 요만큼의 생각에서, 딱 요만큼의 번뇌그대로 죽은것도 산것도 아닌채 계속될것같다는 생각이 든적이 있는데.. 그러니 정신이 번쩍 나더라구요 허걱.

    1. 어렸을 적에 사십까지만 살자, 귀찮게 더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저는 유효기간을 넘어 죽자고 살고 있습니다. 산다는 것이 아직도 벅차고 힘들지만, 세상을 놓치기에는 너무 아쉬운 이 기분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한번은 지하철에서 순간적으로 제 생애의 마지막 시간을 백일몽처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는데,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지나간 모든 시간들을 껴안고 죽음을 기다리는 한 노인네의 지나간 세월에 대한 용서가 가슴 속에 차올라 문득 깨어나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뻔 한 적이 있습니다.

      아~ 자기의 생을 다른 누가 감히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2. 아~
      그런데 여인님이 글로 풀어내시면 정말 아찔할정도로 상상이 되어버리니

      저는 여인님이 이렇게 솔직하실수 있는것이 되게 멋진것 같습니다. 저는 나이 마흔이 지나서 구라만 더 늘어나면 큰일입니다.

  2. 두달전인가 한 인터넷 뉴스를 봤었는데요.
    한국인 자살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하더군요..

    대가족문화, 대기업문화, 군문화 속에서 개인의 개성이 말살되는 속에서
    체제순응형이 많아서 그렇다네요…

    그 기사를 보고 눈물이 났었습니다..

    1. 한 사람을 우울하게 하는 사회 속을 돌파하기란 참으로 힘든 것 같습니다.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예전의 신분사회가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등 속에서 너무도 많은 것이 한 사람에게 요구되고, 늘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기에 좌절하고 불행하며, 게다가 약육강식의 살벌함, 결과지향의 그릇된 도덕관. 이 모든 것들이 조금씩 사람의 가슴을 침식하고 결국 한없는 우울에 빠져드는 기괴한 사회에 우리가 서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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