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i-xmmxix 2nd 포로 로마노

테르미니역 근처의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콜로세움으로 가기 위하여 지하철역으로 간다. 역에서 로마패스를 찾고 콜로세움으로 간다.

콜로세움, 플라비우스의 원형경기장

줄을 섰고, 시간예약을 해야 한다고 해서 시간을 예약하고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콘스탄틴의 개선문을 보다가 15:15분 콜로세움에 들어간다. 콜로세움의 건축에 대한 지식은 몹시 가난하다. 기둥을 중심으로 하는 날렵한 그리스 건축양식이 아닌, 시멘트와 석재로 견고하게 쌓아올린 내력벽과 아치를 이용한 벽체건물이라는 점, 그래서 앞으로도 천년 정도는 거뜬히 버텨낼 것 같다. 원래 명칭는 플라비우스의 원형경기장1네로를 몰아낸 플라비안 왕조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지었다.이다. 당시 39.6m에 달하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혹자는 네로의 동상이라기도 함)의 거대한 금박동상이 경기장의 옆에 있었는데, 그 때문에 지역 일대가 콜로세움이 되었다가 그냥 경기장 이름으로 고착된다. 콜로세움은 거대하다(Colossus)에서 유래한다.

저 북벽 공사는 언제쯤 끝이 날까

경기장 안에서 본 북쪽 벽은 무너질 듯 높다. 높이가 50m이다. 가로로는 200m, 바닥 면적은 6에이커(24,281㎡, 약7,400평)2잠실주경기장의 바닥면적은 75,469㎡, 약 23천평이다. 경기장 자체의 크기는 길이 83m, 너비 48m로 생각보다 작다. 관람석은 4개 층으로 되어있다. 제일 위층은 나무로 지었다고 하며, 햇빛을 가리기 위하여 현수막을 단 소나무 기둥으로 마무리를 했다고 한다. 이 입석만 있는 위층은 아무런 지위가 없던 여성들이 자리했다고 한다. 경기가 잘보이는 연단에는 한쪽은 황제와 베스타의 처녀들 그 뒤로는 기사계급이 앉았으며, 반대편 원로원 의원, 로마를 방문한 사신, 기타 유명인사들이 앉았다. 그 외에 임뭄(immum)에는 부유한 시민과 그들이 초대한 손님이, 숨뭄(summum)에는 가난한 시민이 자리했다고 한다.

그라운드

서울에서도 경기장을 별로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현대의 경기장의 구조와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아니 그보다는 현대의 경기장이 콜로세움을 모델로 지어진 것 같다. (현대의 경기장도 그렇듯이) 관람석에서 빠져 나오면 넓은 복도가 있는데, 이 복도를 보미토리아(Vomitoria)라 불리는데, 관람객들을 토해낸다(vomit)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여러 차례 파괴가 있었지만 무려 이천년동안 이토록 튼튼하게 남아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때의 장비와 건축기술, 수학적(역학적) 지식으로 이토록 장대한 건물을 구축했다는 것은 놀라울 따름이다. 로마 나름의 벽체건설 기술과 아치구조 그리고 로마시대의 콘크리트 제조기술3로마인들은 콘크리트를 만들 때 화산재와 생석회, 그리고 화산암 덩어리를 썼는데, 이 콘크리트는 바닷물과 접촉하면서 오히려 더 단단해질 뿐 아니라, 세월이 지날수록 더 단단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부두와 방파제, 항구 곳곳에 로마시대 때 지은 콘크리트 건축물이 멀쩡하게 남아 있어서 현대학자들도 로마의 콘크리트 성분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과 원가를 고려하지 않고 양질의 재료를 아낌없이 쏟아부어 지은 탓일 것이다. 현대의 건설기술은 건물의 내구년수를 고려하여 원가를 산정하고 투입할 건축부재의 질과 량을 산출해낼 것이다. 그러니 현대의 기술로 지은 건물이 천년 이천년을 견딜 수 있겠는가.

콜로세움을 사진으로 찍으면 전체 모습을 제대로 잡을 수 없을 정도다.

콜로세움을 나와 팔라티노 언덕과 포로 로마노로 간다. 포로 로마노(Foro Romano, 라틴어 : Forum Romanum) 쪽에서 줄이 길다고, 팔라티노 쪽으로 가면 금새 들어갈 수 있다고 하여 팔라티노 쪽으로 들어간다. 사람은 없었지만, 잘된 선택이지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영광이 마치는 지점, 폐허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폐허가 지닌 침묵과 그 곳을 스치는 바람과 햇빛의 무심함, 그리고 그 지점에서 소실하는 역사의 시간들, 그 지점의 바로 옆 나무그늘 아래에서 바라보기를 좋아한다. 무엇 때문에 좋아하는 지는 모르나, 무의미해져 가는 그런 풍경을 마주하면, 적절한 감상을 토해낼 수 있는 시인이라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팔라티노 언덕 위에서

해가 떠오르는 최초의 시각에 완벽히 혼자인 채, 팔라티노 언덕에 올라 부서진 기둥들 사이를 거닐어보라. 그러면 런던의 북적거리는 피커딜리 광장에 있을 때나, 가장 커다란 도시의 가장 번화한 길 위에서보다 더 많은 것에 둘러싸여 있음을 느낄 수 있다.4장 그르니에의 ‘지중해의 영감’ 72쪽

하지만 팔라티노의 도무스 세베리아나 위에서 평야에 가득한 늦은 오후를 보았다. 광활한 오후. 열기에 지친 바람 속에 깃든 외로움이 피부를 뚫고 모세혈관을 따라 번져가는 것을 느꼈다. 팔을 활짝 펴고 소리치고 싶었다. 라티움 평야의 모든 모습을 보고자 아치의 끝으로 비틀거리며 다가가자, 자신들의 은밀한 구역을 침범한 나를 보며 다른 곳으로 떠난다.

도무스 세르비아나의 위로 추측됨

피렌체의 도로에 깔린 미끄러운 포석 위를 걸어다니다 보니 발바닥에 무리가 갔고, 오늘의 여졍이 겹쳐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시간은 이미 오후다섯시, 석양이 지기 시작했고 다 보지 못할까봐 마음이 급했다.

키르쿠스 막시무스 5이렇게 위가 아닌 아래에서 보면 약간 구릉이 있고 움푹파인 땅으로 보일 뿐, 대전차경기장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도미티아누스의 경기장, 대전차경기장(키르쿠스 막사무스)을 보고 포로 로마노로 넘어갔을 때, 나는 거의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오후 다섯시 반의 뉘엿한 햇빛이 언덕 위에서 포로 로마노의 낮은 곳으로 나른하게 내려섰고, 로물루스의 사원과 안토니우스와 파우스티나 신전의 대리석 열주에 부딪혀 발광할 때, 오후의 엷은 그림자는 사물들 속에 퇴적되고, 캄피톨리오 언덕 위에 세워진 건물들과 멀리로 보이는 돔과 성전들, 그것들은 다채로운 색과 시대의 지층을 이루었고, 포룸 바닥에서 언덕 너머로 하늘까지 이어지는 풍경 속으로 몰려오는 땅거미를 막으려는 듯 늦은 오후의 하늘은 오히려 더욱 투명하고 빛으로 꽉차 있었다.

안토니우스 황제와 부인 파우스티나를 위한 신전 6멀리 캄피톨리오 언덕과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 보인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눅 4:5~6)는 광야에서의 유혹이 떠올렸다. 예수는 높은 곳에서 보았지만, 나는 낮은 곳에서 보면서도 천하만국의 권세와 영광을 떠올렸던 것은, 낮고 어두운 폐허로부터, 캄피돌리오 언덕 위로 르네상스의 건물이 들어서고 그 너머로 흰색 대리석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은 이 세상의 풍경이 아닌 것 같았다. 오래 된 과거 속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시절을 지나 현재를 미래처럼 맞이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날개를 펴는 시간 속에 들어서고 있는 것 같다.

포로 로마노의 전경을 보기 위하여 도무스 티베리아나의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마귀가 예수를 이끌고 올라 갔던 곳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AD30년경 이 곳에서 포로 로마노를 내려다보았다면 어떠했을까?

도무스 티베리아나에서 내려다 본 포로 로마노.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다

하지만 폐허들, 지나간 영광이 침묵 속에 정적 안으로 말려들어가는 곳, 로마 위로 해가 지고 있었다.

일몰시간은 오후 6시 37분이었기에 노을이 지기를 기다렸으나, 6시 15분이 되자 경비들이 나가달라고 독촉을 해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201910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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