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이야기

Odalisque and Slave
1839
Oil on canvas
Fogg Art Museum, Cambridge, Massachusetts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오래 전 생각이 난다.

아버지와 나는 같은 학교를 다녔다. 아버지는 출근을 했고, 나는 등교를 했다.

나는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를 무서워했다. 다른 아이들은 나의 아버지가 자신의 담임이 된다는 것은 인생에서 1년이 사그라져 버리는 것이라면, 나에겐 인생이 없다고 할 정도로……

아마 그때는 아버지와 내가 휴전을 하고 있었던 때인 것 같다.

아버지는 자식들 중 유달리 나를 좋아하셨는 데도, 나의 고집과 우발적으로 저질러놓는 사건과 사고, 게으름과 운동에 대한 몰취미, 내가 가져다 주는 성적표(그것을 보여주면서 나는 가장 멍청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들이 아버지를 괴롭혔으며, 간혹 역정을 내시곤 했다.

이러한 시간이 오래되면서 아버지께서는 지치셨고, 나는 나의 잘못에 대해서 묵비권을 행사하곤 했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는 더 이상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고 나는 더 이상 아버지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버지께서 나를 좋아하시는 만큼 나 또한 아버지를 사랑했다.

오학년 때인가 방과 후 도서실을 들렀다가 집으로 가기 위하여 복도를 걷고 있는 데, 아버지의 교실에 아버지께서 홀로 계셨다.

다른 날이라면 아마 뒤로 도라~있 까! 했을 텐데, 나는 교실문을 열고,

아버지! 퇴근 안 하세요? 하고 묻고 있었다.

너! 하고 말씀하신 뒤, 한동안 지나서야 네가 웬일이냐? 내 교실에…… 하고 나를 반기셨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 날도 그냥요! 라고 말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내게 뭔가를 물었을 때나의 대답의 80%는 그냥이었으니까.

아버지는 잠시 하시던 일을 멈추고, 그러잖아도 잘 왔다. 너한테 보여주려고 준비해둔 것이 있다 하시며 교실의 서가에서 책을 한 권 꺼내왔다.

그 책은 외국에서 제작된 B4 사이즈 정도의 화보였다.

네가 그림 좋아한다는 것 알지만 사줄 수는 없었는 데… 우연히 학교에 이 화보가 들어왔다. 그래서 너 오면 보여주려고 빼앗아 교실에 보관하고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화보를 받아 펼쳐보기 시작했다.

그 후 많은 날들을 아버지의 교실로 가서 화보를 꺼내보았다. 외국에서 인쇄되어 간신히 작가 이름만 알 정도였지만 나는 한 장 한 장 시간을 들이며 화보들을 보았다. 내가 본 화보 중에는 렘브란트가 있었는 지 모르지만 고야, 앵그르, 다비드, 델라크로와, 로트렉, 마네와 모네, 모딜리아니, 파카소, 달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샤갈에서 마감을 했다.

나는 그동안 아버지가 계실 때면 침묵 속에서, 안 계실 때면 책상을 창가로 내놓고 60~70쪽에 불과한 화보를 거의 두 시간씩 할애하면서 보았다. 때론 그림 한 장에 오 분에서 십 분씩 할애해가며보곤 했다. 때론 며칠 전에 보았던 화보를 다시 보면서 때로 격정과 환희에 휩싸이거나, 두려움과 절망, 빛과 어둠의 저 깊은 곳으로 내려가 보기도 했다. 나는 그 그림들을 보면서 행복했다.

북창으로 난 아버지의 교실은 방과 후에는 오히려 빛이 남쪽보다 오래 남기는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코팅된 화보의 아트지 위로 저녁 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림은 어둠과 빛의 중간쯤에 침전되면서 그림의 밝은 부분은 석양의 빛 위로 부유하고 어두운 부분은 앙금으로 어둠 속에 가라앉았다.

앵그르의 그림이 장식적이고 정적인 관계 상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이 그림은 아마도 첫째 날 아니면 둘째 날 쯤 보았던 그림이라고 기억된다. 그것도 석양 빛에 그림이 들뜨기 시작하는 그 때 쯤. 이 그림을 보았고 미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도치의 문법이 지닌 강세적 관능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앵그르의 샘(Source)이 지닌 젊음의 역동성을 바탕으로 한 적나나함도 이 오달리스크(터어키의 궁녀)의 관능성을 능가하지 못한다. 오달리스크와 노예에서 감추어져 할 것(오달리스크의 속살)은 빛 밖으로 드러나 있으며, 드러나도 될 것(옷입은 노예)은 어둠 속에 희미하다. 또한 깊은 어둠 속에 남자 하인이 서 있다. 도치와 부적절한 대비 속에서 그림은 어둠에서 빛으로 내려가는 힘의 역삼각형 구도 속에서 관능성은 폭발하고 있다.

The Source
1856
canvas, oil paint
Musée d’Orsay, Paris, France

반면, 그의 그림 샘은 드러날 수 밖에 없는 나체 속에서 미성숙의 관능성 만 보이고 있어 장식적인 아름다움만이 있다. 그러니까 그림과 같은 조각상을 그림이 놓인 자리에 놓아두어도 예술적 값의 차이를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옷벗은 마야의 그림과 비교해 볼 때, 기술적 정교성은 앵그르, 예술성은 고야에게 주어지겠지만, 마야의 관능성은 마야가 관객을 응시하는 눈빛 때문에 변질된다. 그 눈빛은 고혹적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몸매에 대한 프라이드로 감추어야 할 것에 대한 드러냄의 의지가 엿보인다. 그래서 그림의 관능성은 보다 천박한 것이 되거나 흥미가 감쇄된다.

The Nude Maja
Museo del Prado

아마 그때는 이러한 것들을 이론화하지는 못했으리라. 델라크로와의 그림의 난폭성과 자신의 자식을 잡아먹음으로써 하늘의 왕권을 유지하려는 크로노스의 그림에서 구역질나는 고야의 광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광기의 공포는 후일 그리스신화를 읽음으로써 해방될 수는 있었지만…

나는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그 교실에서 아버지와 보낸 정적의 시간들을.

천천히 그리고 집요하게 화보를 응시하며 시간을 보내던 어린 자식을 보며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그러나 아버지에게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화가가 되기를 바랬다는 말씀이나,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반문하신다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두려움 때문에…

This Post Has 2 Comments

  1. 리얼리티

    시간이 흐르면 코팅된 화보의 아트지 위로 저녁 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 기억의 시간 속에 나열된 많은 장면들이 보이는 것 같아요.
    화보 속의 그림들은 보여지는 것과 상상되어지는 것과 함께 마음에 남았으며
    그 저녁의 아버지와의 말없는 가운데에서도 안정감 있었던 만남이 주는 의미가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간직할 수 있는 <기억>이라는 생각에
    읽으면서 그리움에 대해 생각하게 하네요…

    1. 旅인

      어렸을 적의 아버지는 무서웠지만,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께서 저에게 참 많은 것을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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