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i-xmmxix 1st 로마로

아침에 일어나 어제 보아두었던 아내의 백을 사기 위하여 베키오 다리를 건너 피티궁전 근처에 있는 가게에 갔더니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베키오 다리 위의 아직 열지 않은 상점의 문들.

돌아오는 길에 베키오 다리 위의 상전들이 장농이나 돈궤 문짝같은 상점문을 열고 있다. 문들은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자물쇠들조차 골동품 수준이었다.

아침 햇살이 극명하게 밝다. 베키오 다리도 아침 햇살 속에 제 색을 내고 있는 것 같다.

아침 햇살 속의 베키오 다리

베키오 다리에 오기 전에 단테1Durante degli Alighieri(1265~1321), 두란테 델리의 약칭 단테로 불리웠으며, 피렌체의 알리기에리 가문 출신이라고 한다.의 집을 들렀다. 단테의 집에서 다리까지는 불과 5~10분이다. 내가 베아트리체에 대해 아는 것은 단테가 9살 때 베키오 다리에서 단 한번을 보았고, 알지 못하고 다시는 만날 수도 없었던 그녀에게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평생을 사모했다고 알았다. 하지만 베아트리체는 실존했던 모양이다. 폴코 포르티나리의 딸이며, 단테와 동갑내기라고 한다. 처음으로 멀리서 보고 애정을 느끼게 된 단테의 일생을 베아트리체는 뒤흔들게 된다. 사모하는 여자가 있지만, 단테는 12살에 젬마 도나티와 약혼을 하고 26살(1291년)에 결혼하게 된다. 그 사이 베아트리체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고, 24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내가 알던 것보다, 이 기사의 신빙성이 훨씬 높다. 폐쇄적인 중세시대에 좁아터진 피렌체에서 누대에 걸쳐 살아오는 형편에, 한 두사람만 수소문해도 찾아낼 수 있는 소녀 하나 찾아내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단테가 살던 집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 (짝)사랑은 단테에게 ‘신곡(La divina commedia)’과 연애시를 쓰도록 했다. 만약 베아트리체와 함께 살았다면 ‘신곡’과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까? 반면 단테의 아내가 신곡이나 그의 연애시를 읽었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러니까 아내 젬마는 고전문학적으로 소박당했던 셈이다.

단테를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리는 인물이라고 하는데, 그의 ‘신곡’을 읽다 보면 무엇이 르네상스적인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중세문학이라는 것을 경험해 보지 않는 한, 신곡과 중세문학의 차이를 알 수 없다. 나는 중세문학을 읽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단테의 ‘신곡’이 중세 신학의 호교론적인 문학처럼 느껴진다.

신곡에서 나오는 연옥2煉獄(Purgatorium) : 煉獄이라는 한자어는 ‘불의 단련’과 그 장소로서의 ‘감옥’을 뜻한다. 그러나 ‘연옥’의 원어인 라틴어 ‘Purgatorium’은 ‘purgare’, 즉 ‘정화하다’라는 동사에서 나왔다. 따라서 ‘purgatorium’은 본디 ‘정화하는 일’로 번역해야 한다. 그러나 흔히 ‘정화의 불’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표현들로 번역하며 ‘정화의 장소’로 이해된다. 은 1160~1180년 사이에 발명된 것이라고 한다. 성경에는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단지 연옥을 증명하기 위하여 성경 구절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구약시대에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내세관이 없었다. (신약시대 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시올(She’ol : 陰府)을 이야기했는데, 시올은 이른바 무덤이나 마찬가지다. 죽은 자들의 사후 거처로 그냥 땅 속, 즉 어둠 속 일 뿐이다. 구약 욥기에서 욥이 병에 걸려 고통스럽게 되자 시올로 내려가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장면이 있다. 거기에는 선과 악 그리고 그에 따른 형벌이나 복된 사후세상도 없다. 그리고 무덤 속의 죽은 자에게는 시간의 흐름도 없다. 단지 ‘그 날(The Day)에 전능하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거기로부터) 이 땅에 와서 산 자는 산 자대로, 시올에 있는 죽은 자들은 “나자로야, 나오너라”하고 불러 세워 심판할 뿐이다.

하지만 바빌론 유수(幽囚)로 부터 유대인을 풀어 준 페르시아의 왕, 자신들이 메시아(기름부은 자)라고 부른 고레스(키루스 2세)은 조로아스터교를 믿었다. 그를 칭송하며 아베스타 등의 배화교 경전을 갖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유대인들은 이를 바탕으로 그들 나름의 내세관을 세워 고대종교의 체제를 갖추게 된다. (참고 : 아베스타)

기독교(신약)에서 말하는 천국도 죽어서 가는 하늘에 있는 나라가 아니라, 사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되, 하느님의 나라다. 복음서 저자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저 세상이 아니라, 미래적이면서 현세적인 하느님의 다스림을 뜻한다. 파루시아3παρουσία : 고대 그리스어로 출현, 도착, 공시적인 방문을 뜻하나,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재림으로 이해했다., 즉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여 세상을 다스림, 신국(神國)을 의미한다. 하지만 기다려도 기다려도 파루시아가 오지 않자, 기독교인들은 현세의 ‘하느님의 나라'(신국)를 내세의 ‘하늘나라'(천국)로 바꿔버린다.

하늘나라가 만들어지면, 선악 이원론에 따라 지옥 또한 만들어져야 한다. 악인 또는 불신자와 이교도가 가야 할 형벌의 장소를 ‘불못’, ‘유황으로 타는 호수’ 등으로 표현했다. 그들은 ‘게헨나’를 떠올렸는데, 게헨나는 예루살렘의 서남쪽을 둘러싼 ‘힌놈(Hinnom) 골짜기’이며, 이곳에서 탐무즈(Tammuz)와 몰록(Moloch) 신들에게 아이들을 불살라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유다왕 요시아가 이를 막기 위해, 성안의 모든 쓰레기로 골짜기를 메웠고, 죄인이나 짐승의 시체를 태우는 곳으로 만들었다. 그러기에 게헨나는 ‘지옥’ 혹은 ‘죽음’으로 불리었다.

연옥은 마지막으로 만들어지고 수세기에 걸쳐 신학자들은 연옥에 대한 교리를 발전시켜 왔으며, 1~2차 리옹 공의회(1245, 1274)와 피렌체 공의회(1438 ~ 1445), 트리엔트 공의회(1545 ~ 1563) 등에서 공식 교리로 정착된다. 그리고 이 연옥은 십자군 전쟁 당시 부터 있었던 면죄부 판매에 적극 활용된다. 연옥에서 죄를 정화하는데 면죄부가 도움이 된다는 것이며, 교황 레오 10세(재위: 1513~1521, 본명 Giovanni di Lorenzo de’ Medici)는 성 베드로 대성전의 건축 기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면죄부’ 판매를 승인했으며, 이로 인하여 마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함으로써 종교개혁(1517년)이 촉발되었다. 

이 연옥 개념 또한 게헨나에서 왔는데, 유대교의 전통에 따르면 대부분의 죄인들이 면제를 받기까지 최대 한 해 동안 걸린다고 하는 연옥의 장소 게헨나의 존재를 믿는다고 한다.

숙소에서 짐을 챙겨 로마로 간다.

11:37분 피렌체 중앙역을 출발.

열차가 지나는 곳이 어딘지 모르지만, 고대의 로마다운 분위기를 보여준다. 고대의 풍경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뜰에 그 나무, 그리고 그러한 구릉에 파스텔톤의 아이보리색 집들.

ROMA

열차는 13:15분 종착역인 테르미니역(Stazione Termini)에 도착한다.

테르미니역은 ‘제니퍼 존스’와 ‘몽고메리 크리프트’가 나왔던 영화 종착역(Stazione Termini)과 많이 달랐다. 1953년에 나온 영화니까 물경 66년 전의 모습이다. 테르미니역에 사랑하는 남자를 남겨두고 남편과 딸아이에게 돌아가야만 하는 유부녀의 이야기이다. 제니퍼 존스야말로 20세기 은막의 스타 가운데 가장 뛰어난 내슝과 교태를 가진 스타라는 것을 모정에 이어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피렌체의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사랑이 남자인 준세이에게 어울렸다면, 로마의 ‘종착역’에서는 사랑이란 역시 남자보다 여자에게 잘 어울린다.

201910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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