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간間에…

오랫동안 글을 읽지 못하고 있다. 수술 이후 글을 읽으면 눈이 뒤집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책이나 신문같은 유인물은 읽지 못하고 수평으로 멀리에서 읽을 수 있는 PC의 글만 간신히 읽을 수가 있다. 그러나 그것조차 여간 힘에 겨운 것이 아니다.

회복 후에는 돋보기 신세를 져야 할 것 같다.(사실 그동안 누진 다촛점 렌즈를 써오긴 했다)

안경을 벗어버리자 외면적으로 더 젊어지고(안경을 꼈을 때도 삼십대 중반으로 인식했음) 편안해졌음에도, 한 오년은 늙어버린 느낌이다. 그것은 멀리 봄의 여유보다는 가까운 것을 볼 수 없다는 서글픔이 찾아온 때문이다.

안경을 벗고 사물을 보면서 느낀 감상은 저절로 물상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안경을 쓴 후 무엇을 보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했던가?

사실 눈이나 오관은 보는 혹은 느끼는 기관으로 정의되어 왔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신체 각 부위를 자아(이성)가 있는 뇌수의 종속적인 기관으로 보려는 서구적인 사고방식에 기인하고 있다.

그러나 안경을 벗고 물상을 보면서, 눈은 (나라는 주체가) 보는 능동적 기관이 아니라, 내가 보려고 하지 않아도 외계의 물상들이 그냥 보이는, 전혀 이성과는 무관하고 독립적인 기관이라는 것을 느꼈다. 귀는 또한 들리는 기관이며, 혀는 맛을 그냥 받아들이는 피동적 기관일 뿐이다.

보는 기관이라고 정의되었기에 보려고 하는 노력이 결국 눈을 해치고, 귀는 더욱 시끄러운 소리를 들어야 하며, 혀는 진귀한 맛을 탐하게 되는 것이다.

눈, 귀, 입, 코, 피부는 그냥 외계와 나를 연결해주는 순수한 통로일 뿐 나의 의지에 따라 조절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우리는 너무도 이 오감을 괴롭혀 왔던 것이다.

여태까지 모든 것을 보려고 기울여 왔던 노력이, 이제부터 먼 것은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고, 가까와 안 보이는 것은 안경을 쓰고 보는 두 행위로 갈리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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