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x-xmmxix 루브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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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의 입구인 유리 피라미드 내부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 규모에 놀랄 수 밖에 없다.

루브르 궁은 12세기 후반 필립 2세의 명으로 착공된 요새다. 그 후 궁전으로 쓰여지며, 여러 차례의 확장공사가 있었지만, 1672년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에 거주하기로 하면서 루브르는 왕실 수집품을 전시하기 위한 장소가 된다.

1692년 루브르에 왕립아카데미가 들어서고, 1699년에 첫번째 살롱전이 개최되었다. 아카데미는 100년동안 남아 있었다.

프랑스대혁명 당시 국민회의는 루브르가 박물관으로서 국가의 걸작을 전시해야 한다고 선포한다.

박물관 루브르는 1793.08.10일 537점이 회화를 전시하며 첫문을 열었다. 대부분 몰락한 귀족과 교회에서 징발된 수집품들이었다. 그 후 건물 내부의 구조적 문제로 1796~1801년 사이에 문을 닫는다.

사모트라케의 니케 1승리의 여신으로 기원전 190년경 로도스섬의 주민들이 에게 해에서 일어난 해전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사모트라키 섬에 세운 것이라고 함

나폴레옹이 통치하던 시절, 소장품의 규모가 대폭 늘어나고 이름도 뮈제 나폴레옹으로 바뀐다. 위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패배하자 루브르의 많은 작품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루이 18세(재위: 1814~1824), 샤를 10세(재위 1824~1830) 재위기간 중 더 큰 규모로 수장품이 늘어났고, 제 2제국(나폴레옹 3세 통치기간 : 대통령 1848~1852, 황제 1852~1870) 중 2만여점의 수집품이 들어왔다. 물론 그 후로도 수장품은 계속 늘어난다.

나폴레옹 이전에 왕실 수집품 전시라든가, 왕립아카데미가 자리잡지 않았다면, 나폴레옹의 미술품이나 유물에 대한 관심도 낮았을 것이다. 그만큼 정복 시에 다른 나라 문화재나 미술품에 대한 약탈도 적었을 것이고, 루브르 박물관에 방대한 전시품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 루브르 내부를 보면, 프랑스 작품은 대단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루이 다비드∙외젠 들라크루아∙도미니크 앵그르∙까미유 코로의 그림 외에는 대부분 다른 나라 작품들이다.

모나리자, 내 취향은 아님

프랑스가 방대한 영토를 갖게 된 것은 필리프 2세(1165~, 재위1180~1223)가 강력한 왕권과 국가체제를 정비함에 따른 것이다. 이전의 프랑스 군주들은 프랑크인의 왕(Rex Francorum)이라는 칭호를 썼다. 1190년 1월 필리프 2세는 자신을 프랑스 국왕(Roi de Franc)라고 칭한다. ‘영주들의 왕’이라는 봉건적 개념에서 벗어난다. 전프랑스를 통치하는 왕, 즉 자신의 영토를 왕의 직할 영지라는 좁은 개념에서 프랑스 전역으로 넓힌다. 이런 선제적인 아이디어에 따라 프랑스는 어느 나라들보다 강력하고 집중된 영토국가를 구축한다.

루브르 또한 작품 전시와 왕립아카데미가 들어서면서 미술에 대한 애호와 취미를 불러일으키며 프랑스를 미술의 나라로 만들었을 것이다. 물론 루이 13세 때 프랑스 근대회화의 시조인 니콜라 푸생이 있긴 했지만,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루이 14세를 위한 갤러리를 본 귀족들, 로코코 시대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 루이 15세의 공첩이자, 백과전서파의 후원자인 마담 퐁파두르의 살롱적인 분위기에서 태동된 예술에 대한 애호와 후원에 따라 조금씩 화가가 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바로크를 대표할 프랑스 화가는 없다. 로코코는 프랑스에서 나타난 형식이지만, 그림이 연분홍색, 너무 동화적이다.

그 후 신고전주의∙낭만주의∙고전주의∙사실주의∙인상주의 등 다양한 미술양식이 나타나고 프랑스는 미술의 본 고장처럼 알려진다. 하지만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미술에서 주도권을 쥐었을 뿐, 그 이전에는 미술의 불모지가 바로 프랑스였다.

밀로의 비너스 2옆에서 보면 흘러내리는 옷자락을 잡으려고 하는 듯 약간 몸을 기울이고 있다. 높이가 203cm라는데 그보다 훨씬 더 커 보이는 것은 남신상이 아니라 여신상인 탓일께다.

루브르에서 한 4시간을 보낸 후, 밖으로 나와 보니 파리는 넓다. 런던은 도로도 좁고 모든 면에서 850만명의 시민을 수용하기에 작았다. 좁은 도로 사이로 버스가 20~30Km로 천천히 가고 그 사이로 자전거들이 달렸다. 그럼에도 경적소리 한번 들은 적이 없다. 루브르에서 개선문까지 걸으면서 엄청난 궁전과 공원들이 있고 도로는 넓었지만, 도시는 시끄럽고 차량들은 이유없이 정체되고 있다.

나는 인터넷 검색을 하면 다 나올 작품들의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201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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