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나무

물상에 대하여 접하지도 못한 채, 배우고 외워가면서 지식을 쌓아가는 데 익숙했던 나에게 목련나무 하나는 귀중한 체험일 수 있다. 식물에 대해서는 나무, 꽃, 풀이라는 변별력을 상실한 통칭으로 대부분을 이해한다. 그것은 무지이다.

그러나 집 앞의 목련은 꽃과 잎과 겨울눈 때문에 숱한 나무와 차이를 갖고 저는 목련이라오 하고 나에게 소리치기 때문에 알 수 있다.

나는 벌써 두 해동안 그 옆에서 담배를 피워왔고, 목련은 내가 자신의 곁에 다가오는 것을 몹시 싫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 해동안 생명을 연장해나가는 그의 방식을 볼 수 있었다.

사실 목련은 흉측한 나무이기도 하다.

일찍 피는 꽃은 잎이 없어 하얗게 피어오를 때면 애절하고 아직 차디찬 바람에 고단해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나무에 잎이 나면 꽃은 허무할 정도로 커지고 노랗게 타다 빨지 않은 걸레처럼 땅으로 떨어진다, 꽃이 진 자리에서 잎이 나고 그 잎이 점점 커지면서 여름이 간다. 가을이 가면 잎은 떨어지지만 은행처럼 찬란하지는 않다. 잎이 지는 모양은 무척 고단하고 지리하다. 그 잎들은 자발적으로 낙옆이 되기 보다는 젖니를 영구치가 밀어내듯 겨울눈이 자라나면서 밀려 떨어진다. 결코 팔랑거리며 떨어지지 않는다. 목련잎이 지는 소리는 털썩 소리가 날 정도이다.

잎이 진 자리에 겨울눈이 자란다. 겨울눈은 열매처럼 크고 그 솜털은 강인해 보이며, 가지의 결절마다 집요하게 자리를 잡고 와글거린다. 그 모습은 차라리 처참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겨울눈들의 고집스런 와글거림 속에서 감자에 싹이 나고 잎이 나서 묵찌빠라는 생생불식의 전 과정을 맞이하는 것이다.

강인한 겨울눈을 보면서 나는 저들이 더 강인해지고 풍성한 꽃을 피우기를 빌면서 첫눈이 내리고 가지와 겨울눈이 자리를 튼 곳에 눈꽃이 피기를 빌어본다.

이제 단풍조차 다 져버렸다. 나는 집 앞의 초라한 화단에 있는 나무들을 둘러본다. 일부는 가지만 남았고 일부는 잎에 그림자가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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