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날(김훈)

그의 글에는 삼엄함이 있다. 범접할 수 없는 그의 글을 몇차례 만나기는 했어도 남한산성에서 보여 준 그 살벌함은 무엇일까? 바로 파랗게 벼려진 날 그것이다.

살길과 죽을 길은 포개져 있다.

<남한산성 기행 중에서>

주전파의 말은 실천 불가능한 정의였고, 주화파의 말은 실천 가능한 치욕이었다.

…전략> 남한산성 서문의 치욕과 고통을 성찰하는 일은,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세상에서 그러나 죽을 수 없는 삶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마도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과 치욕이란 없는 모양이다. 모든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은 결국은 받아들여진다. 삶으로부터 치욕을 제거할 수는 없다. 삶과 죽음이 서로를 겨누며 목통을 조일 때 삶이 치욕이고 죽음이 광휘인 것도 아니고 그 반대도 아니다. <후략…

김훈 그의 글에는 문인의 나약함이 없다. 단지 무인의 단호함. 운문보다 산문을 즐기는 나에게 그의 서리발같은 글은 처연하고도 신명나는 유혹이다.

마지막으로 용렬한 쿠테타로 집권한 인조에게 보낸 청태종의 글은 다음과 같다.

너희가 살고 싶으면 성문을 열고 나와 투항하여 황제의 명을 받으라.
너희가 죽고 싶거든 성문을 열고 나와 나와 결전을 벌여 황천의 명을 받으라.

<김훈의 자전거 여행 2의 181쪽과 191쪽에서>

참고> 자전거 여행 & 자전거 여행 2

This Post Has 3 Comments

  1. Inuit

    남한산성 모티브를 작가가 꽤 오래전에 생각해 놓았던 이야기로군요. ^^

    1. 여인

      칼의 노래가 적이 다가오는 바다를 바라보며, 우리나라의 武가 文에 비하여 얼마나 나약한 것인가를 그렸다면, 남한산성은 옹벽에 갇힌 말(言)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김훈씨는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남한산성을 읽으며, 이 시대에 난무하는 말들이 헛 것이라는 것. 김훈씨가 칸을 빌어 한 말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말을 접고, 구기고, 웅얼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답답함에 젖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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