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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의 시간은 10:30PM, 서울은 11:30PM이다.

아침에 비행기에 오를 때, 좀 따분하지만, 적당한 여행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아는 사람들과 만날 기회도 적고 외로운 시간을 갖게 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나의 옆 자리에 30대 초반의 여자가 앉았다. 나와 전혀 상관은 없지만, 여자는 어느 정도 미모를 갖추고 있었기에 만족스런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아줌마나 못 생긴 여자는 통상 꺼리낌없이 말을 걸게 마련이고, 친절한 척하는 나는 잠을 희생해가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게 되고 결국 소란 속에 휩쓸리기 마련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용모를 가진 여인은 자존심 혹은 품위같은 것을 생각하며 집요한 침묵을 지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모에 빠져 말을 걸고 싶은 욕구가 일기는 해도 대부분 치한 수준의 대우를 받기가 십상이기에… 오랜 경험 상 침묵을 지키면서 책을 읽거나 잠을 자기로 한다.

‘칼의 노래’의 저자, 김훈의 에세이집 ‘자전거 여행’을 읽는다.

올 초봄 한계령의 아무도 없는 민박집에서 ‘칼의 노래’를 읽으면서 그의 언어 속에 깃든 살비린내와 메주냄새를 느끼며 개울물 소리와 교교한 달빛에 한 밤을 샌 후 서울로 올라온 적이 있다.

그는 ‘자전거 여행’에서 글쓰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가를 보여준다. 길과 산하에 얼마나 깊은 의미가 있고, 피곤한 우리의 실존에 얼마나 위안이 되는 지를 자전거 벨소리에 담아 들려준다.

그의 글에는 향기가 아닌 냄새가 있다. 아이들이 햇살에 발갛게 익는 냄새와 신작로의 먼지, 개암나무 둥치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이다.

3시간 40분의 여행 끝에 첵랍콕에 도착하고, 에어포트익스프레스로 홍콩역에 도착한다.

자딘 하우스에서 알렉산드라 하우스로 이어지는 고가에 올랐을 때, 미지근한 열기와 번철에 눌는 닭고기 냄새가 하오 한 시를 채우고 있었다. 드디어 홍콩에 왔다는 느낌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도시는 괄목할 만한 변화도 기존의 것 속에 스며들어 변화를 감지하기가 어렵다. 홍콩 최고층 IFC가 눈 앞에 들어서긴 했어도 거리에는 전차가 느릿하게 다닌다. 변화라는 것을 아주 사소한 것에서 느낄 뿐이다. 나인퀸스로드 갤러리아로 오르는 엘리베이터 옆에 있던 사진같은 것에서…… 출근하는 길에 속옷을 입은 젊은 서양여인이 고혹적인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여인의 허리에서 허벅지까지 흐르는 부드러우면서도 생기있는 선을 보면서 아침의 활기를 되찾곤 했다. 그러나 그 사진은 사라지고 말았다.

1시에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4년전의 비밀번호를 무의식적으로 눌렀고 문이 열렸다.

첫 일성은 아임 커밍! 이었다.

점심을 먹기 위하여 쎈트럴의 구석에 있는 란콰이퐁(蘭街坊)으로 가 점심을 즐기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 틈에서 타이식 쌀국수를 시켰다. 샹초이의 비릿한 냄새와 국간장의 짠 맛이 스민 국수는 이 거리의 냄새와 닮아 있었고 적당히 감미로왔다.

거래선 두군데를 방문한 후 저녁을 한 후 호텔로 들어가 커튼을 걷었다.

이미 저문 바다 위로 상환에서 구룡 동쪽까지 가로등과 아파트의 창에 점점히 박힌 빛들이 가물거리고 있었다.

11월24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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