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xmmxix 박물관에서

대영박물관의 파사드

숙소에서 걸어서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까지 갔다. 대영박물관이라는 데, 좁은 골목 안에 있다. 박물관이 커서 도로가 골목처럼 보였는지, 골목이 좁아서 박물관이 작아보였는지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워털루 다리를 건너고, 스트랜드가를 지나 트라팔가 광장에서, 오후에 오페라의 유령을 볼 ‘여왕폐하 극장'(Her Majesty’s Theatre) 쪽으로 돌아 피카딜리 서커스와 차이나 타운을 지나 박물관까지 이르는 도로는, 넓어야 왕복 사차선, 좁고 구불구불했다.

어쩐지 불문법(不文法)의 나라답다. 전통과 관습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고치고 살을 붙여가는 식 말이다. 그래서 차들이 속력을 낼 수는 없지만, 꾸준히 20~30킬로의 속도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광복 후 수차례 뜯어 고쳤지만, 늘 맞지 않는 것 같은 맞춤법을 어쩔 수 없이 문교부(교과부)가 뜯어고치는 불행은, 셰익스피어나 워즈워드, 브론테 자매, 문인과 그들이 만든 연극과 시와 소설 그리고 에세이 따위의 본보기가 없는 탓이다. 말과 글은 문교부에서 공문서나 만지작거리는 사람이 다룰 일이 아니다. 셰익스피어가 쓴 글이 곧 맞춤법이자 글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말과 글의 규범은 성문화(成文化)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위대한 웅변가의 목소리와 저자거리의 외침과 혁명의 노래가 섞이고, 아름다운 시와 흥미로운 이야기가 비벼지는 가운데 만들어지는 것이다. 말과 글이 쌓이고, 우리다운 글이 생기고 시를 읊다 보면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저절로 만들어진다. 말과 글은 시대에 따르고, 서민 속에서 자연스러워진다. 문교부 따위가 바르게 한다고 해서는 안된다.

문교부 따위가 말과 글에 끼어드니까, 한문으로 된 낱말을 무슨 뜻인지 ‘아이 돈 케어’ 무조건 한글로 써 놓고 마는 경우가 생긴다.

요즘 건축관련서적을 읽고 있는데, ‘시공연도’라는 낱말이 있다. 건축을 시작한 해가 아니라 ‘施工軟度’, 즉 시공할 때 재료(시멘트)의 찰기의 부드러운 정도다. 한글로 표현된 저 시공연도는 발음기호일 뿐,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시공연도’ 옆에 괄호를 치고 한자로 ‘施工軟度’라고 써준다면 “아, 그 뜻이구나” 하고 알 수 있다. 또 절건비중, 재하, 재령 따위의 뜻을 발음기호인 한글로만 어떻게 알 것인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한자를 써야 한다. 그런데 한자는 병기하지 않으면서 영어로 병기는 잘한다. 국한문 혼용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서 기술용어나 개념술어 따위는 괄호 안에 한자로 병기해 주어야 한다. 어떤 번역가가 원문에 있는 신조어 ‘sinthome’를 ‘증환’이라는 단어로 번역했다. 자신은 무슨 뜻인가 어렴풋이 나마 이해한 탓에 그렇게 번역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사전에도 없고, 인터넷에는 ‘증환’이라는 단어만 줄창 나왔지 해당하는 한문은 없었다. 처음에는 症患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증상이라고 하면 될 것을 증환이라고 한다면 증환의 患은 군더더기일 뿐이었다. 한참 생각한 후(이틀 쯤 지났을 것이다)에야 증상과 환상을 축약한 ‘症幻’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저자의 뜻보다 번역자의 뜻을 헤아리다니 이 얼마나 허무하고 소모적인 짓거리인지?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한글을 발음기호로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뜻을 실어펴길 바라신 만큼, 소리만 실어펴지 않기를 바란다.

박물관은 우리 국립중앙박물관보다 커 보이지는 않지만, 소장품이 8백만점으로 우리 박물관의 40만점에 비하면 20배 규모다.

박물관 안의 문화재들이란, 폭군과 가혹한 점령자들, 그리고 한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으면서 자신의 치적을 만들어내기에 혈안이었던 무능함이 만든 위대함이 무엇인지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나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저런 허구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1층에서 로제타스톤, 아시리아의 유물, 그리스 조각을 보고 마지막으로 1번방으로 들어갔다.

‘Enlightenment Gallery’이다. 원래는 ‘왕의 서재’였다고 하는데, 계몽시대의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있는 방식을 보여줄 수 있도록 갖가지 물건들을 배치해 놓았다.

Enlightenment Gallery

계몽주의는 18세기 후반부터 프랑스에서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간 사조로 백과전서파가 선구 역할을 한다. 백과전서파가 만든 것이 백과사전이며, 백과사전이 박물지(博物誌, Natural History)인 셈이다.

박물지를 구현한 공간이 뮤즈들의 신전인 뮤지엄(박물관)이다.

같은 도자기라도 박물관에 전시되는 것은 미술관에 전시되는 것은 사뭇 다르다. 미술관은 공예적인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추지만, 박물관에서는 제작기법, 자기, 석기, 도기와 다른 점, 유약의 변천과정, 도자기의 용도, 더 나아가 그릇의 재질에 따라 굽는 온도와 가마의 얼개는 어떠했으며, 민요와 관요는 어떻게 운영되었는가 하는 다양한 지식을 담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이른바 격물(格物)이다. 박물관을 다녀오면 치지(致知)에 닿아야 한다.

이러한 박물관의 전형은 스투디올로(studiolo)에서 찾을 수 있다.

르네상스의 인문학적 사고가 무르익을 무렵, 이탈리아 우르비노 궁전에서는 ‘스투디올로’, 피렌체의 메디치가는 ‘호기심의 방’이라는 것을 마련한다. 세상의 진귀한 수집품과 서책을 모아 놓고 지인들에게 과시할 목적이었다. 그런 진귀한 수집품을 모으고 그 가치와 용도를 감식하기 위해서는 폼나는 지식이 요구되며, 수집품의 얼개와 제작과정을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격물)가 지적 활동을 활발하게(치지) 하는 법이다. 지도층의 사물에 대한 호기심, 이것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했다. ‘왕의 서재’에서 ‘박물관’이라는 대중의 호기심으로 옮아 가며 나라는 더욱 부강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스투디올로의 형태를 볼 수 있는 것은 책가도다.

잠시 한국관에 가 본다. 볼만한 것이 없었다. 영국에서 약탈해 간 문화재가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는 파리 외방전교회의 선교사가 들어왔고 그에 뒤따른 프랑스의 약탈이 문제였다.

오페라의 유령을 공연한 여왕폐하 극장

‘오페라의 유령’을 보았다. 보았다고 할 수 없다. 너무 잤다. 옆의 관객들에게 미안하다. 배우들이 3층의 관객석에서 퍼져 자고 있는 나를 볼 수 있었다면 몹시 실망했을 것이다. 어제의 피로와 숙소에서 대영박물관까지의 거리, 박물관 내에서 관람을 위한 배회, 그리고 허기를 때우기 위한 점심, 그리고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로 된 연극을 보면서도 자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하다. 

낡은 극장의 낡은 무대 그리고 오랜 공연에 따라 묵은 무대장식들. 모든 것이 시간 속에 어울어지는 것 같다. 기회가 있다면 졸지 않고 제대로 보고 싶다.

몹시 추운 하루였다. 기온은 5℃에서 15℃ 사이에 흐리다. 서울은 20℃ 정도. 해가 지고 저녁이 되자 을씬년스럽게 바람이 불었다.

2019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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