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기041119

11시10분은 사실 상 공허한 시간이기도 하다.
담배를 피우러 건물 밖으로 나갔던 나는 어떻게 된 셈인지 앞 문으로 로비에 들어선다.
그 때 로비의 데스크에 앉아 있던 리셉션 아가씨가 고개를 비스듬히 바닥으로 떨군 채 얼굴에 미소를 띄고 있다. 그녀의 프로필이 코 끝에서 흑색의 대리석 벽으로 스미면서 흐트러지는 것을 본다. 그리고 나서야 그녀가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어 왔다는 것을 불현듯 안다.
그녀는 친구 아니면 애인과 핸드폰으로 전화 중이다.

그녀가 데스크를 오랫동안 지켜왔음에도 나는 왜 그녀를 인식하지 못했을까?

사실 아침에 회사의 로비로 들어선다는 것이 그다지 유쾌하지는 못했다. 특히 날이 맑을수록 로비의 끝에 보이는 엘리베이터로 걸어들어가 눈을 45도 상향의 디지털 계기판에 고정시키고 아무 생각없이 6층, 7층, 8층….하고 읽고 있는 것은 정말 재미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뒷문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바닥을 쳐다보면서 은밀하게 내 자리로 잠입하곤 했다.

그러면 점심시간에는 왜 보지 못했지?

회사의 로비에는 예술작품이 있다. 상당히 유명한 포스트모던 작가의 작품이다.
항상 그 작품을 보면서, 왜 그것이 거기에 있는가에 대하여 의문을 갖곤 했다. 상당히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기에 일단 미적 가치는 있다고 칠 때, 그 미적 가치를 현시해줄 공간인가 하고 눈을 찌푸리곤 했다. 작품이 놓여 있는 장소를 헤아려볼 때, 거기는 어떠한 작품을 갖다 놓아도 고철로 산화될 공간이었다.

분명 예술작품보다는 공간에 대한 이해의 결여다.

공간은 비어있음으로써 존재를 환기시키고 존재가 있음으로써 공간이 외연 확장할 수가 있다. 그러나 지금의 공간이란 이차원의 부동산에 수직 상하로 점유권이 인정되는 환가될 수 있는 그 무엇이다. 어느 특정 공간은 대단히 비싸고 어떤 공간은 값이 싸다. 따라서 건물의 로비라는 공간 위에는 그 장소에 상응한 고가의 예술 작품이 놓여야 하며, 경제성의 원칙에 따라 최소한의 면적을 소모하면서도 로비를 거니는 사람들의 동선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결국 작품을 여유롭게 보기 위한 거리의 문제는 계산 상에서 빠져야 한다. 그래서 작품은 감상자를 상실함으로써 예술적 가치마저 상실하고 환금적 가치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X새끼 지X같이 작품이란 걸 만들어 갔구설랑, 이딴 곳에 쳐 박어두는 지 모르겠어’라고 중얼거리곤 했다.

이러한 쓸데없는 생각 속에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딱딱하게 앉아 있던 그녀를 인식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그녀의 인위적인 미소 또한 무가치한 작품 정도로 치부했을 지도 모른다.

나는 로비의 넓은 유리창으로 스며드는 빛 속에서 자연스럽게 미소를 머금고 전화를 받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11시 10분의 생동하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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