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종가는 길

당신은 길이 아름답다는 것을 아는가? 누추하고 볼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길이라도 내가 지나가고 계절이 지나며 기억의 저 편으로 내려앉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거기에는 늘상 시간이 흐르고 다가올 새 곳을 예언한다.

방랑이란 잊혀진 단어처럼 생소하지만 뜨거운 냄새를 지닌다. 그 무의미한 열정과 지친 고독 속에는 인생이 가진 모든 것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남종은 도시의 한 쪽 구석에 사는 불행한 이들을 위하여 있는 길이다. 결코 떠나갈 수 없는 이들을 위하여 나그네가 다녀야 할 길모퉁이 한쪽을 찢어서 소시민의 책갈피에 꽂아둔 길이다.

휴일이면 새벽에 깨어나곤 한다. 그리고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까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식구들이 자는 모습을 보며, 밖으로 나가 차에 시동을 건다.

서울의 동쪽 모퉁이에 사는 나의 차는 7시쯤이면 팔당호로 물이 스미는 경인천을 건너 남종이란 표지가 가리키는 쪽으로 좌회전을 한다. 308번 지방도는 늘 한적하고 팔당호가 도로 너머까지 땅을 침범하고 있다. 도로의 옆으로 물풀들이 자라며, 때론 창 밖으로 아침 새가 낮은 소리로 울기도 했다. 차가 언덕을 굽이치면서 오르고 다시 내려가면 거기에 팔당호가 아침 안개에 휩쌓이고 또 다시 아침 해가 수면에 모자른 광선을 뿌렸다.

나는 그 지점에서 차를 세울 수 밖에 없었고 때론 해가 수면 위에 가득할 때까지 서성거리기도 하였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나며 두물머리가 갈라지는 곳을 지나 길은 남한강을 역류한다. 때론 활엽수의 넓은 잎새들로 길은 그림자 속으로 가라앉다가 남한강의 북안으로 그림처럼 놓인 집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좁은 이차선 위에서 엑세레이터를 엔진이 터지도록 밟아보기도 한다. 엔진소리와 함께 풍경들은 질주하는 차의 유리창에 부딪힌다. 그러면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하염없이 그 길을 달리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언제나 길에는 끝내야 할 지점이 있다. 그것은 떠나기 위해서가 아닌 돌아가야 하기 위해서 핸들을 꺾어야 하는 그 곳, 나는 거기에서 남종에 대한 이야기를 접어야 한다.

어느 카페에서 남종가는 길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러자 카페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모르는 시인의 詩이지만 남종에 대하여 중년의 눈으로 그윽하게 노래한다.

남종 가는 길           

– 진해령 –

햇살 쏟아진다
어린 벚나무들 바람이 불 때마다
가쁜 숨 몰아 쉰다 쉴 새 없이 팔락거리는
저들의 삶도 가쁘다 함께 구부러지고
함께 기울어지며 물과 길이 나란히 손잡고
남종 가는 길

멀리서 볼 땐 동판 같던 수면도
다가가 보면 물주름 투성이
끝없이 이어지는 저 굴곡을 잡아 다녀
마음의 남루라도 펴 볼 것인가

지난 것들은 터무니 없이 환하다
기억은 연필심 같아 흐리고 부러지기 쉬우니
마음에 적어둔 얼굴 조차 알아 볼 수 없으니
천천히 늙는 것 보다 잔인한 일은 산당화
꽃망울이 터지는 순간 일까 절개지 붉은
흙덩이들이 가끔씩 국도로 뛰어 내릴 뿐
짓다 만 집 들이 빛 속에서 낡아 간다

그러나 생이여
매 순간이 몰락이더라도 지금은 오월
천지엔 자욱한 아카시아 투성이
겨운 눈짓으로 손사래 치며 달겨드는
저 희디 흰 범람을 너인들
견딜 수 없으리라

이 계절에 돌아보는 지나간 계절

그 땐 희디 희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보는 그 때는
벽에 걸린 한 폭의 그림이다.
인생도 그와 같다
글은 지나간 시간을 표구화 한다.
벽에 걸어둔 추억의 그림을 보는듯한 詩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詩.
갑자기,
빛바랜 흑백 사진 한 장 손등에 올려 논 기분이다.

(여인 백: 작가의 글인지 카페에 글을 올린 자의 술회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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