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에 대한 생각

문제는 짧은 글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못쓸 것은 없지만 어떤 강박증이 있을 지도 모른다.

예전에 어떤 회의의 녹취록을 받아 회의록을 쓰는 작업을 했다.

어느 날엔가 나에게 던져진 녹취는 단 두줄이었다. 나는 그것을 A4용지로 한 장인가의 회의록을 만들었다. 선배는 두 줄을 한장으로 만든 나에게 그것을 열줄로 줄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더 이상 줄이지는 못했다.

나는 선배에게 나는 글을 늘릴 수는 있어도 줄일 수는 없다고 했다.

선배는 회의에 관계된 사람들과 통화를 한 후 내가 풀어 쓴 내용에 대해서 물었다, “어떻게 단 두줄로 한 장이나 되는 사안들을 정확하게 유추할 수 있느냐?” 나는 말을 했다. “그 회의에서는 고도의 정치적인 언어가 사용되며, 그 내용들은 뻔하기 때문이죠.”

그 후 내 글은 수정보다 반장 쯤 삭제된 채 회의록에 게재되었다.

한 때 무의미한 글을 쓰던 때가 있었다.
문장과 내용은 있지만, 무엇을 위하여 그 글을 쓴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찾을 수도 알 수도 없는 그런 글을 썼던 적이 있다.
그 글들은 지리하게 길고 문사적인 수식과 나도 잘 모르는 단어에 갇혀있으면서도, 우울과 고독과 같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가미되어 있었고 결국은 공허했다.

날이 밝으면 두툼한 봉투를 우체통에 밀어넣었다.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글귀는 너를 사랑해 라는 것을 깨닫곤 했다.

유예된 단어와 밀려나간 내용들이 공허하게 표류하는 것에 대해서 “가슴에 묻어둔 말”이라고들 한다. 가슴에 묻어둔 것이 과연 부활로 결실을 맺을 것인가? 그것들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98% 쯤 용기의 부족으로 비열하거나 천박한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너를 사랑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내 속에 있으며 그만큼의 가치를 지니는가이다. 사랑이나 우정이나 미에 대한 의식이나 선한 것에 대한 열정 등은 존재론적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것을 이야기하기에는 산문이 부적절하며, 더군다나 논리적인 사고란 어울리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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