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간

그때 만물은 몽롱한 채 규정되지 않았고 아무런 객관성도 없었다.

산 위에 올라 하늘을 보고 있으면 모든 시점들이 그 시각에 고정된 채 마모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풀 숲에 누우면 풀들이 눈 높이 이상 자라나 바람에 흔들리고 대지와 인간은 날카로운 의식으로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의 동류의식 속에서 호흡할 수 있었다.

아직도 사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하는 면에 의문이 있다.

높다란 언덕 위의 성당에 올라가 첨탑 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짙은 하늘이 철제 십자가에 찢기며 서서히 흘러가고 가을의 강렬한 태양이 사루비아의 꽃잎에 떨어지는 즈음에 종이 서서히 울린다면 과연 사물 속에서 정확하게 객관화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어린 시절 미술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에 특별한 규제사항이 있었다. 다름아닌 태양을 그릴 때 절대 빨간색을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왜 빨간색을 쓰지 말랬는 지는 잘 모르겠으나, 모종의 음모가 있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억압을 통한 복종이라는 권위체계를 형성하려는 의도이거나, 혹은 선생 자신이 붉은 색을 극도로 혐오했는 지……

그러나 내게 있어서 태양에 빨간색을 사용한다는 것은 당시의 나의 인식능력과 느낌 상 최적의 해였다. 그 강렬한 역동성에 빨간색이 배제(결여)된다는 것은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당위성을 포기하고 선생의 지시에 굴복하였을 때, 뚜렷이 하늘에 대한 결여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나의 그림에서는 태양이 사라졌다. 노란 태양 혹은 보랏빛 태양이라는 허위를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화지를 앞에 놓고 표현의 자유를 상실했으며,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가 제도권의 의식과 합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자기 만족보다는 타인의 눈을 의식하는 그리기 행위로 급속하게 전환되었으며, 색상과 색상들 사이에 번짐으로 그리고자 하는 대상이 모호해지고 보이는 대로의 색깔을 만들지 못할 경우 제대로 그리지 못하였다는 강박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니까 내가 사물에 대하여 반역하기 시작했다. 사물 속에 내가 뚜렷이 현전하기 시작했고 사물들은 나에게 거리를 두고 점차 객관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누가 먼저 결별선언을 했는지는 몰라도 사물들은 인간에 의하여 통제되고 의미에 의하여 분리되기 시작했다. 사물은 이미 쪼개지고 갈라져서는 인간과 가져왔던 친화성과 생명력을 잃고 무관심한 것으로 전락해버렸다.

사물과 인간 사이에 의식이 끼어들기 시작하면서 미술시간은 사물이 보여지는 각과 그 각에서 사물의 객관화에 얼마나 충실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특이한 고통을 경험하게 되었는 데 그것은 붓과 사물과의 표현관계 상 사물은 빛 속에서 견고한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으나, 붓은 물과 기름 위로 색상들이 흘러 다니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 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표류하는 색의 움직임을 혐오했고 색과 또 다른 색의 은밀한 밀애 끝에 탄생한 불순한 색조에 절망했다.

붓은 불행하게도 정물의 고체상을 정확하게 표현하기에 알맞은 도구는 아니었다. 만약 내가 사물과의 친밀성을 유지하고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 속에 인간이 가진 의지가 얼마나 미약한 가를 이해했다면……

또 광대한 무지 속에 한 점 지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색조와 빛의 자연스런 교호 속에 한 점 포인트에 치중하여 전체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조율의 예능을 조금이나마 알았더라면……

붓이 가진 그 특성으로도 사물 속으로 들어가 나의 의지와 색상의 흐름 속에서 아름다움을 부조해낼 수 있었으리라. 바다를 그릴 때, 그 푸른 색조 위로 하얀 물감을 퍼서 푸르름에 던져 올림으로써 파도의 포말을 표현할 수 있었으리라. 하나 파도를 그릴 때 그 하얀 포말의 뿌리에 놓인 바다의 근육과 그에 점착된 명암 그리고 율동성 등을 충분히 계산하고 표현하여야만 할 과학적인 그림을 추구하게 될 때, 붓은 당분간 나의 표현 도구로는 적당치가 못했다.

그 후 소묘(데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나, 데생에 손도 대어보지 못하고 미술수업은 끝났다.

이제 간혹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순교자의 언덕 너머로 낙조가 지고 저녁 속에 미루나무가 빛의 역광 속에 서 있으면 혼돈된 빛과 사물의 그림자 속에서 모든 것들이 불투명해지고 어린 시절에 사물과 가졌던 깊은 유대가 서서히 가슴 속에 번져오면 빨간색과 흑색으로 이 계절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후기: 본 글은 대학 2년, 가을에 쓴 것으로 보인다. 그 때 나는 합정동의 절두산 밑에 살고 있었고 집 가까운 곳에 순교자 묘지가 있었다. 양화대교는 당시에는 제이한강교였으며 지금과 같이 지하철이 없어 해질 녘 절두산 곁에 강가로 나가면 해가 행주산성 옆의 강으로 내려앉는 것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나는 합정동 일대를 서울에서 가장 빛이 풍성한 동네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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