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뻬아트리체와 그 통속함에…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女子만을 가진 女子, 女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女子, 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 같은 女子, 病身 같은 女子, 詩集 같은 女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女子, 그래서 불행한 女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女子.

– 오규원의 시 ‘한 잎의 女子’ –

시인은 여자의 관념(Idea)를 사랑한 모양이다. 위와 같은 여자는 현실세계에는 없다. 단테에게 뻬아트리체가 그러했듯 ‘내’가 사랑하는 여자란 늘 비현실적이며 천국의 높은 곳에 있다. ‘남’들이 사랑하는 여자들은 흔해 빠진,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시장에서 깍아달라 때 쓰는 그냥 여자들일 뿐이다. 영혼이 있고 순결과 온통 여자 뿐인 여자를, 구정물이 흐르고 햇빛조차 들지않는 골목에서 나의 현실의 남루로 부딪힐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한 잎의 女子’는 영원히 가질 수 없고, 누구도 가질 수 없기에 불행하다. 하지만 단테가 뻬아트리체를 만들었듯 짝사랑함으로써 영원히 나 혼자 가질 수 있는 女子이다. 그러니까 ‘한 잎의 女子’란 짝사랑한 여자일 뿐이다.

    버드나무 같다고 했다 어탕국수집 그 여자, 아무 데나 푹 꽂아놓아도 사는 버드나무 같다고…… 노을강변에 솥을 걸고 어탕국수를 끓이는 여자를, 김이 올라와서 눈이 매워서 고개를 반쯤 뒤로 빼고 시래기를 휘젓는 여자를, 그릇그릇 매운탕을 퍼 담는 여자를, 애 하나를 들쳐업은 여자를, 머릿결이 치렁치렁한 여자를

    아무 데나 픽 꽂아놓아도 사는
    버드나무 같다고
    검은 승용차를 몰고 온 사내들은
    버드나무를 잘 알고 물고기를 잘 아는 단골처럼
    여기저기를 살피고 그 여자의 뒤태를 훔치고
    입 안에 든 민물고기 뼈 몇 점을
    상 모서리에 뱉어내곤 했다

    버드나무, 같다고 했다

– 유홍준의 시 ‘버드나무집 女子’ –

시인 유홍준은 통속의 감시자다. 그는 이 시대의 통속함에 대하여 고발한다. 그렇다고 통속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시인 오규원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고고하게만 살 수는 없다. 통속함이야말로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점, 이것이 사람을 통속하게 만드는 이유다.

버드나무집 그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내’가 아니라, 검은 승용차를 몰고 온 사내들의 것이다. 검은 승용차는 사회적 허울이다. 그들이 0.5초만에 꺼내는 명함에는 ‘사장’, ‘대표’ 등이 적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갑의 시선으로 세상을 굽어보아도 될 것처럼 행세를 하지만, 혼자서는 어디에 눈길을 주어야 할 지조차 모른다. 이들은 정력의 함수관계에 대해서 정통하고 당당한 숫컷처럼 행세하지만, 늘 자신이 없다. 그래서 뒤태를 훔치고 자신의 통속을 상 모서리에 뱉아낸다.

한 남자의 사랑이라는 것은 ‘한 잎의 女子’에서 ‘버드나무집 女子’ 그 사이 어디엔가 있는 女子와 이루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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