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들에게 대한…

시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시 쓰는 것은 쉽다고 여겼던 적이 있다. 그리고 국어선생님을 좋아했던 반면, 대충 시인들을 싫어했다.

그래서 어느 시인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아무리 이야기를 잘해준다고 해도 그들에겐 폄하에 불과하다. 결핍된 이해의 폭으로 좋다한들 그들의 서정에 범접하지 못하거니와, 외람된 추켜세움으로 끝난다면 이 또한 그들에게 잘못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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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산호수님의 시를 읽었을 때, 나는 그가 열여덟 정도의 소녀인 줄 알았다. 블로그라는 익명의 공간에서는 갖가지 억측과 오해가 난무할 수 밖에 없기에 오히려 편견없는 즉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소크라테스적인 자명함이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의 블로그를 대하면서 사람의 변모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열여덟이기에는 시상의 폭이 감당하기에는 벅차도록 광막해져 왔던 것이다. 특히 그의 시는 라벨의 볼레로의 종장에 허물어져 내리는 박진감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담겨 있던 자신의 시와 타인의 덧글까지 지워가면서 허물을 벗고 거듭나고자 하는 특징이 있다. 지워져 버린 그의 시가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구감을 느낀다.

최근에 그는 거제도에 살면서도 도시적이고 사이버적인 엘레지를 노래하고 있다. 우리는 고독과 공허의 마지막에서 잃어버린 젊음과 속된 나이듬의 미학 사이에서 방황하는 중년의 메시지를 읽을 수가 있다. 그만큼 그의 언어는 차분해졌다. 그는 열여덟의 나이로 블로그에 들어와서 관능적인 몸매로 밤바다를 방황하고 돌아와, 가을 오후 햇살을 받으며 무심하게 낡은 통기타 소리를 듣고 있다.

나는 아직도 그의 사라져 버린 시가 그립다.

보내지 못할 편지

낯선 이름 앞으로
긴- 편지를 쓴적이 있는가
갈빗대가 아프도록
자기와의 싸움에서 철저히 패한날
낯선이에게
긴- 편지를 썼었다

꽃피는 이야기도
비내리는 이야기도 없이
온통 넋두리로
너댓장을 가득 채워 놓고
편지봉투를 들었다

발신인은 나인데
수신인을 모르겠다

mail을 연다
대여섯개의 익숙한 주소가 열리고
거기에도
편지를 읽어줄 낯선이는 없다

나무와 사람들

양철 지붕을
겨울의 짧은 햇살이 뚫고 들어와
동그랗게 멈춰섰고
투박한 걸상에
잠시 걸쳐놓은 피로가
긴 그림자를 만든다

조금은 퇴폐적인 주인 남자가
통기타 소리에 실어
앓는 가슴속을 쏟아내는 순간
햇살은
멈추었던 자리에서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늦은 저녁
알콜 기운으로 달래는 가슴에도
노랗게 변해가는 햇살이
천천히 들어와 자리하기 시작했다.

* 시인의 후기

나무와 사람들은 이곳에 있는 음식점이라기에는 좀 그런곳의 이름이다.
저녁시간이면 쉰쯤 되어보이는 주인장이 통기타 라이브를 하는곳으로 차와 술이 어울리는 그런 곳이다.
이른 저녁의 식사도 그런대로 괜찮다.
유명 그룹의 멤버였다는 주인을 보며 한세대가 흘러가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낀다

종이배를 띄우자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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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단점은 잘 표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직장에서 회식이 있어서 수십명과 술자리를 같이 하여도 소주병을 들고 이 쪽 저 쪽 떠돌아 다니지 않고 한 자리에서 죽친다. 결국 나는 내 자리에서 거만스럽게 잔을 받은 후에야 상대방에게 잔을 걸치는 그런 스타일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타인의 블로그에 방문을 잘 않는 편이다. 즉 나는 블로그의 세계에서는 예의가 없는 놈이다.

또 천성적으로 혼자서도 잘 논다. 그래서 다른 블로거의 작품에 경탄을 하면서도 잘 퍼오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파와서 내 것으로 소화하는 것은 선호한다. 그러면서 블로그를 만든다.

관솔(호라 생각하고 님짜를 빼겠음)의 시는 자작시로서 블로그에서 보기에 흔한 시가 아니다. 이른 바 명품이라면 관솔의 시가 명품에 속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에 매달린 덧글이 그토록 많음에도 덧글짓을 못하게 만들고 감탄사만 늘어놓고 줄행랑을 치도록 만든다. 사실 나도 덧글을 달 수 없어 그의 시를 파와서 여기서 몰래 덧글을 달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산호수님의 시는 그 떨림이 외부세계로 번져나간다면, 관솔의 시는 내면으로 응축되는 맛이 있다. 그는 망원경과 현미경을 시야에 함께 구비하고 있다. 그래서 광활한 외면세계를 내면으로 이끌어 들여 관조를 하고 결국 달관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그래서 그의 시는 다소 늙어보인다. 그러지만 그의 망원경은 세상의 곳곳(가막조개, 계단 등)에 걸려있고, 그의 시는 9시 뉴스처럼 우주를 보도해 준다.

그러나 그의 시가 충실한 메시지로 인하여 다소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가막조개………

내 탓이 아닌
모질게
질긴 목숨으로 오다 보니
몸 검게 둥글고
손 발은 없네

굼 뜬 몸으로
평생을 누워 살라는 건
하늘 하나만 사랑하다
속 태워 죽어도
슬퍼하는 이 없는 세상

손이 없어
사랑하는 이의
슬픈 눈물을 닦아 줄 수 없고
발이 없어
세모랫집 고향을 등 지지 못해

강 속에 살면서
어쩌다 머리 위로 오가는
숭어들 바깥 얘기를
귀동냥 소리로만 듣네

………6번 출구………

사각 턱을 벌리고
땅 속 길로 달려 온 사람들을
구역질로 뱉어 버리고

길거리 담배갑을 밟으며
걸어 온 사람들을
입 속으로 구겨 넣는다.

돌계단이
서른 아홉으로 누워
통치마 처녀 아랫도리를
깊이 올려다 보며

드센 바람이 가져다 준
광고지 날개죽지를
한 쪽 어금니로 씹고 있었다.

관솔 신재경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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