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다 아니 관광하다

긴 여행을 했습니다. 아니 긴 관광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행이 거의 끝나버렸을 무렵, 누군가 물었습니다. 어디가 가장 좋았냐고 물었고, 저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곳이든, 다녀온 사람들이 좋았다고 하는 것과 보아야 한다는 것을 보았고, 그것을 소화할 시간이 없었던 저는 늘 쫓기듯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그늘 아래에 피곤하고 낡은 제 몸을 부려놓고, 아무 생각없이 한 십분이나 이십분 쯤 내 앞에 펼쳐지고 있는 풍경을 바라보거나, 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힐 수 있는 여유조차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무 곳도 좋지 않았습니다.

실수는 그렇게 하는 겁니다. 여행을 출발하기 전 고장난 카메라를 고치기 위해서 서비스센터에 들렀습니다. 서비스센터에서는 고치려면 점검을 해야 하는데 한 닷새 정도 걸린다고 했습니다. 삼일 후에 서비스센터에서 전화가 왔는데, 메인보드가 고장이 난 것 같으며, 고치려면 일본에 보내야 한다는 겁니다. 수리에 한달 정도가 걸리며, 비용은 최소 25만원에서 75만원이 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카메라는 이번 여행에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리를 하지 말라고 했더니 점검비용을 3만 5천원을 내라고 합니다. 저는 카메라 찾기를 포기하고 여행을 떠납니다. 하지만 공항의 한 매장에서 값싼 카메라 하나를 마련합니다. 그것이 제 실수입니다. 제 눈으로 풍경이나, 유적과 사물을 바라보는 대신, 카메라가 바라보고 기억할테니 저는 셔터만 누르면 되는 그런 여행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음에는 맨 손으로 여행을 하게 될까요?

홀로 여행을 했습니다. 그러면 경험의 폭이 넓어질까요? 혹시 자신의 아집에 빠져들거나 두려움 때문에 아무 것도 경험하지 못한 채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아무 것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야 하고 쇼핑에 빠져들 수도 있습니다. 이번 여행동안 제가 경험한 것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저절로 생각이 정리되고 지금보다 훨씬 좋은 여행이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생각으로는 우리나라 지방의 어느 절에서 3박 4일 정도 지냈던 것보다 못했습니다. 절에 갔을 때 저는 너무 큰 기대를 갖지 않았던 탓에 댓돌에 올라선 햇빛과 나뭇잎에 바람 결에 비벼지는 소리와 같은 것을 기지개를 켜는 심정으로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앙드레 지이드의 ‘지상의 양식’이 젊었던 저에게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저에게 필요한 물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 책은 젊은이에게 어울리는 것 입니다. 장 그르니에의 ‘섬’이 오히려 저에게 맞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의 ‘케르겔렌 군도’의 첫 머리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장 그르니에 또한 그럴 수 없었기에 수없이 꿈꾸어 본 상황이겠지만, 저 또한 겸허하게 한 도시의 외곽으로부터 남루한 골목으로 깃들기를 바랬는 지도 모릅니다.

또 그의 ‘행운의 섬’에 제가 접어둔 페이지에는 “어떤 친구가 편지하기를, 한 달 동안의 즐거운 여행 끝에 시에나에 당도하여 오후 두시에 자신에게 배정된 방 안으로 들어갔을 때 열린 덧문 사이로 나무들, 하늘, 포도밭, 성당 등이 소용돌이치는 저 거대한 공간이 — 그렇게 높은 곳에 위치한 시에나 시가 굽어보는 저 절묘한 들판이 — 보이자 그는 마치 어떤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어서(그의 방은 하나의 깜깜한 점에 불과했다) 그만 눈물이 쏟아져나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고 했다. 찬미의 눈물이 아니라 <무력함>의 눈물이었다. 그는 깨달았다(왜냐하면 그것은 마음의 동요라기보다는 정신의 동요였음이 분명하니까). 그는 자기가 절대로 이룰 수 없는 모든 것을, 하는 수 없이 감당하게 마련인 미천한 삶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는 일순간에 그의 염원들의, 그의 사상의, 그의 마음의 無를 깨달은 것이다. 모든 것이 거기에 주어져 있었지만 그는 어느 것 하나 가질 수 없었다. 그 한계점에서 그는 지금까지는 그저 감정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던 이별, 그러면서도 오직 그만이 원했던 그 이별이 결정적인 것임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의식했다고 말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저는 1980년대 이 책을 산 후로 이 글을 몇 번이나 읽었음에도 이 구절을 뚜렷하게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저도 어떤 풍경을 마주하고 무력함에 다리가 풀려 털썩 주저앉은 후, 그 풍경을 거머쥐기 위하여 손을 뻗치다가 하염없이 울 수 밖에 없는 제가 감당하기에는 속수무책인 여행을 늘 기대하였습니다. 만약에 저의 비천함이 저의 반성적 성찰에서 비롯하기보다 자전하는 세상의 그 거대함에 압도되어 드러나고, 복음서에 기록된 마음의 가난함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면, 어찌 그 미천함을 감당하며 눈물에 굴복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여행을 기대하기에는 구글 맵이 저를 인도하였고 디지털 카메라가 저 대신 풍경을 느꼈으며, 각종 예약과 일정에 따라 순차적으로 저는 여행을 해야만 했습니다.

“여행하다 아니 관광하다”에 대한 2개의 생각

  1. 그리 많은 곳을 여행해보진 않았지만 과연 어떤 풍경을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던가 생각해 보았는데 없었던 것 같아요.
    정신의 동요를 일으킬 만 한 곳은 아니지만 마음의 동요를 일으켰 던 곳은 한군데 기억나는 곳이 있습니다.
    멕시코의 어느 작은 탄광 마을에서 맞이 한 생일밤, 작은 식당의 옥상에서 달빛 아래 듣는 나만을 위한 마리아치의 연주.
    적어도 그날 저는 무척 행복했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때 저에겐 휴대폰도, 디지털 카메라도 없었던… 오래 전의 이야기네요.

    1. 여행이 참으로 흔해졌지만, 너무도 인스턴트로 변해버린 것 같아요. 저는 여행을 많이 해보진 못했지만 예정과 바램과 맞아떨어진 때보다 그냥 주어진 시간과 상황이 여행에 다채로운 풍경을 주곤 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도로와 교통사정이 좋지 못했을 때, 시외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어느 소읍에 당도했습니다. 다음 버스가 출발하기까지 3~4시간이 남았고, 정류장에서 할 수 없이 홀로 여름 비를 그어야 했을 때, 문득 그 소읍의 낯선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하면서 내 인생과 아무런 연고가 없던 그 곳이 새로운 여행지가 되기도 하지요. 비가 그치고 밤이 되면 어둠이 덮쳐 그 규모를 알 수 없는 소읍의 냄새를 맡으며 선술집과 같은 곳으로 가서 저녁과 반되의 막걸리를 마시고 돌아옵니다. 결국 그 소읍에서 맞이한 것이 단지 외로움이었지만, 아침이 되어 버스를 타고 떠날 때 보는 소읍의 남루함이 어쩌면 4장 짜리 여행의 3장 분량인지도 모릅니다.

      저의 첫 유럽여행은 본 것은 많았지만 참 재미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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