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시 삼십분에…

어제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은행잎이 아우성치며 아스팔트 위로 내려앉는다,
이유없는 조락처럼……

아침 햇살이 이토록 찬란하기에, 바람이 이렇게 스산하기에
차라리 오늘 아침이야말로 낙엽이 되기로 결심한 듯,
그렇게 떨어져 내린다.

은행잎을 짓밟으며 속력을 내는 차들에게,
나는 소리치고 싶었다, 이 아침을 보라고.

아홉시 이십오분 홍대입구에서 지하철을 내렸다.
그리고 약속시간에 너무 앞서 나왔다는 것에 만족했다.

대학생인 듯 청년들이 좁은 골목길로 걸어간다.
그들은 찬란한 태양도 아직 그림자에 잠긴 쇼윈도우에도
아무런 관심없이 학교 쪽으로 간다.

나는 아무도 가지 않는 옆 길로 두발자국 쯤 갔다.
그러자 광장과 같은 길이 나오고,
나 홀로 서 있는 것을

로트렉풍의 그림이 그려진 닭과 6펜스를 지나고,
우동집을 지나고……
불현듯 아홉시삼십분은 그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은 시간임을 알았다.

그리고 쩡쩡 울릴듯한 쐬 냄새나는 공기가
만추의 하늘과 땅을 매우고 있었다.

아침 햇살에 묻어나는 냉기와 백색으로 바래는 은행 잎과
풍성한 이 쪽 골목과는 달리
남루한 건너편 골목을 보면서

더 이상의 가을 아침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값싼 구두가 놓인 진열장 위에 걸린 명품스런 브랜드를 보고,
열두자짜리의 술집이름 옆에 놓인 네자짜리
○○주점이라는 불협화음을 보면서,

세상에는 과연 앙꼬가 있을까라고 어설피 씨부려본다.

커피를 마시고 싶어 스타벅스로 가서 창가에 앉는다.
그리고 창 밖을 내다본다.

열시로 향하는 창 밖에는
비가 오듯 은행잎이 휘날리고
사람과 차들은 총총히 어디론가 간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주어지지 않은 시간이 끝났을 뿐이다.

11월 삼일, 이홉시삼십분을 잊을 수 없어서……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