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와 그에 대한 추억

그건 그렇다 치고, 기억이 맞는다면 그녀와 7월에 헤어진 후 다음 해 2월에 다시 만났다.

편지는 다시 만난 지 한달 쯤 지난 싯점에 이 편지는 쓰여졌다.

그 때는 침울해 보이던 때였다.

담담한 내 인생 자체가 말할 거리가 없었다. 그래서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단지 그녀와 헤어지기 전만 해도 여자를 만난다는 것에 흥분하고 치졸해져 있었기에 짐짓 명랑하고 말이 많은 척 했을 뿐이다.

그녀가 “너에게 환멸을 느꼈어”하고 떠난 후, 나는 예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다시 그녀를 만났을 때, 본연의 성향과 약간의 심술, 그리고 그녀의 나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점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침묵이라는 무게로 표출되었다.

나의 침묵에 대해 그녀는 일말의 자책감을 느꼈던 것 같았고, 아무 말없이 앉아 있는 내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나는 조용히 듣거나 물끄러미 그녀를 쳐다보곤 했다. 그녀는 육칠 개월 동안의 적조함을 뚫고 나타난 나의 변신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고 약간의 치기가 있다고 보았던 내가 음울해진 것에 대해서 자신이 매몰차게 걷어참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렇지만 평범한 내 생활에 있어 실연이나 약간의 고통은 오히려 성숙을 위한 훌륭한 자양분이었다.

타인이 나를 사랑하기 보다 타인을 사랑하기를 빌었다. 사랑함으로써 행복해지는 것이 사랑이라고 절실하게 믿었다. 아니 그저 사랑하기를 바랐다. 신이 사랑할 수 있도록 자아의 껍질을 내리치고 벌거숭이로 세상에 보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고, 영화와 같은 절실한 사랑은 육신과 정신을 불태울 정도로 강렬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그래서 명멸하는 사랑이기 보다 영원하기 위하여 얼음과 같이 차디차고 순결한 사랑이 필요하다고 뇌까렸다.

추잡, 음란, 성애, 기타 등등의 요소를 다 빼내버린 사랑은 결국 아가페의 함정에 빠져버리고 결국 인간의 사랑이 아님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완전한 사랑을 갈구했다. 사랑해야 할 지점에 서서 어떻게 사랑해야 하느냐와 사랑을 관념적으로 생각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사랑했다. 아니 그때는 사랑이라는 말의 중압감 탓에 너를 좋아한다고 수줍게 말하곤 했다.

시간이 지나자 나의 침묵이 음울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도 서로를 사랑할 수 있고 마음이 서로 통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우리의 사랑은 조용했다. 열차를 타고 당일거리에 있는 유원지를 가거나, 박물관이나 영화관 등을 배회했다. 서로 말은 없었지만 강물을 보거나 해가 지는 모습을 함께 보았고, 세상의 모든 풍경이 의미가 있음을 알았다.

세상은 찬란하기 보다 조용한 음률과 광채들로 뒤 덮여 있었고, 언제나 광막한 세상 위에 우리 둘 만이 서 있었다. 둘만의 고독, 그래서 서로 포옹할 수 밖에 없는 외로움을 즐겼다. 아름다운 세상 속으로 나가 벙어리의 가슴으로 아!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풍경에 도취한 몸으로 도시로 돌아왔고, 담담한 미소로 잘 자라고 한 후 헤어지곤 했다.

마당에 서서 스치는 가을 바람 속에서도 그녀의 라벤더향 스킨 냄새를 환기할 수 있었다. 늦은 밤 침대에 누워 전화를 걸어 재잘거리다가 하품을 하는 그 목소리를 기억할 수 있었다. 그녀의 부재 속에서도 그녀를 느낄 수 있었고, 침묵 속에서 많은 시간을 같이 한 만큼 서로의 향기와 모습 그리고 무한하게 펼쳐져 있던 풍경과 커피 향과 음악들이 어우러졌고 그녀의 모든 것이 안개처럼 나를 휩싸고 돌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순결로 빛나며 서로에 대한 갈증을 함초롬히 간직한 그녀가 나의 신부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나 또한 그렇게 순결할 수 있기를 기원했다.

나는 많은 편지를 썼고, 그녀는 편지 읽기를 즐겨 했을 지도 모른다.

삼 년간이나 만났지만 우리는 조용히 헤어졌다. 그녀를 위해 해줄 것이 없다는 것이 미안했고, 나를 위하여 기다려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리움과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나눌 사람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아쉬워 하면서도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고, 다시 복학을 했다.

학교에 돌아와 마지막 남은 한 학년 동안 처절한 침묵 속에 휩싸여 있었다.

알고 지내던 친구들은 아직도 군에 있거나 사회에 진출했고, 게다가 나는 타 학과의 수업이나 들었기에 아는 사람과 조우할 기회가 없었다. 때론 누군가와 말을 하고 싶어 종로에 나가 막연히 누군가를 만날 것이라는 기다림으로 배회하다가 어두운 극장에 들어가 타인의 이야기를 보는 것으로 날을 보내기도 했다.

80년의 폭풍우가 스쳐 지난 대학가는 내가 알던 고전적인 세상이 아니었다. 타율에 의한 질풍 노도의 시기를 지나 다소 퇴폐적이기도 하고 격정적인 시기였다.

친구들은 외로움에 떨고 있는 나에게 여자들을 소개시켜 주었지만, 그녀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매력적인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데다 음울해 보였고 그다지 말도 없는 나를 좋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나 또한 그녀들의 생각이나 행동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면 만나는 여인들을 그녀와 비교했기에 그랬을 지도 모른다.

나는 늘 외로웠다. 아무나 붙들고 말을 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자 고독과 침묵이 나의 본질인 것처럼 되었다. 그리고 나는 세상의 한 쪽 모서리로 밀려났다.

친구와 그의 애인들은 세상에서 약간 멀어져 있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자신들의 여행에 끼워주거나 자신들의 밀어의 한 쪽 구석에 자리를 내주곤 했다. 나의 무덤덤함은 그들 사이에 내가 끼어도 될 충분한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그들의 사랑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사랑이란 것이 별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만남의 짜릿함도 이별의 고통도 옆에서 볼 때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미완의 사랑을 안타까워 하면서 그들의 사랑과 밀어가 결실을 이루기를 빌었다. 온갖 세상의 사랑이 환희로 찬란하게 빛나기를 빌었다. 그것이 바로 詩이고 음악이고 인간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의미임을 알았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가 그녀를 길거리에서 만났다. 가슴이 복받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를 스쳐 지나며 서로는 애절한 가슴을 안고 그렇게 희미해져 가는 것이라고 자위를 했다.

며칠 뒤 전화가 왔고 그녀를 만났다.

그녀를 다시 만나고 헤어져 있던 수년 동안 인생에 대한 시니컬한 태도를 벗어 던질 수가 있었고, 낙엽이나 꽃 잎의 움직임에 더욱 민감해질 수 있었으며, 인간들이 만들어 낸 온갖 가치들에 대하여 문을 열어 놓을 수가 있었다.

정말로 눈물을 흘릴 수가 있었고, 이제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이란 사랑 만 하면 되는 것이란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더 이상 큰 그릇이 되거나 아름다운 그릇이 되기 위하여 노력할 필요가 없음을 알았고, 낮은 자리에서 풍성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리라는 천진난만함 속에 빠져들었다.

반포의 뉴코아 빌딩의 어딘가 번잡스러운 칵테일 집에서 만난 것으로 기억되는 데… 그녀가 나와 다시 만나기 위하여 나를 부른 것으로 오해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녀를 천천히 보았다. 그녀는 전에 알았던 소녀가 아니었다. 이미 여인으로 성숙해 있었고, 나는 미숙한 청년일 뿐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침묵 속에 지내왔기에 어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어려웠지만,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더듬더듬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듣는 그녀의 얼굴에 때론 애처로운 표정이 떠돌기도 했고, 망연히 창 밖을 본다거나 했다.

나도 예전에 그녀가 알았던 그 사람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그 동안 나는 외로움 속에서 많이 찌들어 있었던 반면, 그녀는 멋진 남자와 시간을 함께 하며 나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보잘 것 없음을 명백히 인식했을 지도 몰랐다.

이야기가 조율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나 또한 침묵 속으로 잦아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한동안 다 빨아먹은 쥬스 잔 속을 들여다 보기만 했다.

비록 힘겨운 시간이었지만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가슴 속까지 흠뻑 빨아들이고 싶었다.

그녀가 나가자고 했고, 무참한 기분으로 그녀를 따라 나섰다.

그녀는 조그마한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길거리에는 황사바람이 불고 있었고 아직 추웠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그녀와 함께 멀리 걷고 싶었다. 아니 기차를 타고 멀리 가고 싶었다. 그러면 지난 세월의 하찮은 것에서 부터 나의 사랑까지를 다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녀는 버스정류장 앞에서 섰고, 나에게 몇 번 버스를 타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쇼핑백을 내게 주었다. 쇼핑백을 받아 들면서 나는 무엇이 그 속에 들어있는지 아주 명료하게 이해했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그 쇼핑백을 내려다 보았다. 모든 때에는 적절한 사랑이 있으며, 뜨거운 정열로 다가가야 함을 알았다. 다시는 이런 사랑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너무도 오랜 세월 동안 천천히 그녀를 사랑해왔음을 알았다.

집에 돌아와 쇼핑백 안에 든 상자를 꺼내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었다. 그 속에는 삼 년 동안 그녀에게 보냈던 편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편지봉투에서 편지를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몇 통을 읽고 난 후 더 이상 읽기를 멈추었다.

편지들은 분명 잘못 반송된 것이었다. 그녀가 처분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도 어리석게도 그것을 받아온 것이다.

젊은 날이 간다는 것을 알았다. 편지 속에 쓰여진 모든 낱말들이 허위이며, 간직할 하등의 가치가 없는 것들임을 알았다. 백 통의 편지가 단 한번의 포옹의 값에 미치지 못함을 어찌 모를까.

사랑하기보다 너무 사랑에 대해서 생각한 것이다.

마당으로 나가 편지를 태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일기 책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번제를 들임으로써 죄 사함을 받았던 고대인마냥 편지와 일기를 불길 속에 집어 던지며 내 젊음을 태우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나는 생애의 지침을 세우지 못했다. 그러나 더 이상 허위와 진실 사이를 방황하지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사랑하였고 또 쉽게 헤어졌다. 그리고 직장을 다니면서 자신의 자리에 연연하면서, 남들과 경쟁을 하면서도 남들이 말하기를 천성적으로 착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가장 평범한 사람이 되었고 소시민의 세계 속에 깃들게 되었다. 모든 것을 잊고 나날의 삶을 힘겨워 하거나 때론 기쁨에 들뜨거나 했다.

어리석었던 것이다. 젊은 날에는 그냥 스쳐 지날 것을 붙들고 허위니 진실이니 하며, 자신의 아집을 세우고 너희들은 허위로 가득 찬 세상을 알지 못하리라고, 너희들이 몽유병자처럼 길거리를 거닐 때, 나만 홀로 허위를 직시하며 불면의 밤을 보내고, 사랑에 탐닉하지도 못했노라고 절규했던 것이다.

25년의 세월이 지난 단 한 통의 편지, 그것도 부치지 못한 편지를 보면서 내 젊은 날의 단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어리석은 것인지, 애틋한 것인지 아니면 젊은 날들은 흘러가면 기억으로 허무하게 지워져 가는 지를 모르겠다.

<2003.03.11일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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