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과 하루

오늘 하루는 흡족한 하루였다.

직원의 결혼식에 참석한 후 시내로 나갔다. 그리스의 거장 테오 앙겔로폴로스 감독의 영원과 하루(Eternity and a day)를 볼 수 있을까 해서였다. 인터넷에서 예매를 하려고 했으나 24시간 이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는 점과 이 영화를 개봉하고 있는 곳이 시네큐브 광화문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극장에서 표를 살 수 밖에 없었다.

결혼식의 피로연이 끝나고 극장에 도착했을 때는 1시였고 영화의 시작은 4시였다.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교보문고로 가서 책을 사고 극장 건너편의 성곡미술관에 갔다. 그림이나 보려고 했으나 전시되는 미술작가가 마음에 안들어 결국 골목 안에 있는 찻집에서 맥주를 하면서 앙겔로폴로스의 영화에 대한 안내서를 읽었다.

사실 그 안내서가 영화보다는 흥미로왔다는 이율배반 속에서 영화를 보았다.

영화의 무대는 안개 낀 도시 데살로니키(그 유명한 데살로니카)이다. 병들어 죽음을 앞에 둔 노시인 알렉산더는 병원에 입원하기를 포기하고 불멸의 시어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그의 여행은 거리를 떠도는 소년에 의해서 저지된다. 죽음을 앞에 둔 자가 살아가야 할 세계를 향해 던지는 연민과 같이 여행을 중단하고 그는 난민소년의 주위를 배회한다.

소년은 알바니아에서 월경을 하여 데살로니키로 왔고, 시인은 아이를 고향으로 데려다 주려 한다. 백년전 시인 솔로모스가 이탈리아에서 고향을 찾아와 잃어버린 시어를 찾듯이, 또 자신도 해외를 전전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미완성의 솔로모스의 시를 찾지 못한 시어로 채우려 하듯이 소년 또한 고향과 할머니를 그리워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알바니아 국경의 철조망에 감전되어 매달린 난민들 앞에서 소년은 할머니와 집은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서글픈 눈빛으로 말한다.

그들의 여행은 떠나고자 했던 도시, 데살로니키로 역행한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진실된 시어 속으로 점차 접근한다.

노시인 알렉산더는 저 멀리로 가고자 했기에 진실한 시어를 잃어버린 시인일지도 몰랐다. 그의 아내의 편지는 시인인 그의 시보다 절실했다.

사랑하는 알렉산더

오직 책에만 묻혀 사는 당신!
나는 당신을 거기에서 빼내오고 싶었어요.
나에게로…
그러나 당신은,
이내 당신 세계로 숨어버리겠죠.

우리는 언제부터야 함께 있게 되나요?
어떻게 해야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붙잡아 둘 수 있는 거죠?

난 끝없이 끝없이 편지를 씁니다
당신에게로…
다행히도 당신이 오늘을 기억하신다면
난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떨리는 마음으로 당신이 오시길 기다리겠어요.

내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당신과 나, 우리가 함께 할 그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 1966년 여름, 우리 아기 까떼리나의 첫 생일에 당신의 사랑 안나가 –

노시인과 소년은 역행하는 길에 돈을 주고 시어를 샀다는 솔로모스를 이야기한다.

솔로모스는 터어키에 의해 침탈되는 고국에 대한 강개의 심정으로 배를 타고 귀향한다.

알렉산더는 소년에게 말한다.

다음날 그는 배를 빌려타고 조국인 그리스로 돌아갔어.
비로소 자기동포를 만난거지. 그는 그 기쁨을, 시로 표현하고 싶어했어.
그러나 그 곳 말을 몰랐어.
그는 자기 조국의 말을 배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받아적었어
모르는 말은 돈을 주면서까지.
그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어.
그때부터 시인에게 언어를 팔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지었지, 남녀노소없이

그러나 타인의 시어로 영혼이 깃든 시가 될 수 있는 지는 의문이다.

결국 우리의 숱한 시도 흉내내기에 불과한 것이지 자신의 시어로 읊어지는 불멸의 시는 얼마나 될 것인가?

국경이나 도시의 풍경이나 불멸의 시어를 던져주기에는 부족하였다. 눈이 녹아내린 국경의 길과 낙후된 그리스의 도시의 뒷골목, 그리고 도시에 미만한 안개와 소음, 그 화면을 뒤로 하면서 엘레니 카라인드로우의 음악이 울린다.

노시인은 소년을 밀항하는 배에 태워 떠나보내고, 자신은 옛집으로 돌아간다.

회상 속에서 죽은 아내, 안나에게 묻는다.

내일이란 무엇이지?
영원 그리고 하루(Eternity and a Day)

참고> Eternity and a Day

This Post Has 2 Comments

  1. ree얼리티

    영원같은 하루, 하루같은 영원…

    노인과 소년의 모습이 보이면서
    사람의 모습이 여러 모습으로 함께 할 수 있음을 봅니다.
    노인일수도, 소년일수도, 안나일수도…
    어떤 한 모습이 내 모습이 아니라 내가 보고자 하는 마음의 모습이 나 임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네요.
    내일이란 뭐지?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주어진 기회 아닐까요?

    1. 旅인

      제목이 ‘영원과 하루’가 맞는지 ‘영원 그리고 하루’가 맞는지 생각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볼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영화는 하루의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테오 앙겔로풀루스의 작품치고는 비교적 덜 비극적인 영화이지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모호한 영화였습니다. 알렉산더나 솔로모스나 시인이기는 하지만, 한 사람은 가슴이 없이 시를 쓰고 다른 한 사람은 모국어를 모른 채 시를 썼던 시인이라는 비극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내일이란 희망이기도 하지만, 오늘을 어지럽히는 절망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얼마전에 이 영화에 대해서 다시 한번 글을 썼지만 역시 변죽만 울린 것 같습니다. https://yeeryu.com2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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