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千尋の神隱し,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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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아이는 이웃집 토토로를 수십번을 보았다. 그리고 볼 때마다 딸아이의 얼굴에 행복과 기쁨이 지나는 것을 본다. 그래서 센과 치히로가 들어오자 마자 한 번 보여준다고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하여 딸아이의 손을 잡고 어제 극장으로 갔다.

센(千)과 치히로(千尋)의 행방불명(神隱)은 미야자키의 여타 작품에 비하여 그다지 훌륭한 작품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과 어린이 모두에게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것에는 인색하지 않았다.

화면 가득한 풍경(정말 아름답습니다)과 어린 아이의 우울(슬픔)과 의지, 그리고 고독…

미야자키의 만화나 구로자와의 영화를 볼 때, 일본의 문화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결국 죽음의 깊이가 삶의 폭을 넓히고, 전설과 신화가 문화를 축조해 나갈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 귀신이나 도깨비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것은 비극이다.

예전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명계여행)를 읽은 적이 있는 데, 이와 같은 싸구려 잡담이 어떻게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는가를 자문해 본 적이 있다. 그것은 한국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인식의 빈곤 때문이며, 정신의 무게는 삶으로 잴 수 있지만 영혼의 무게는 삶으로 잴 수 없다는 씁쓸한 감상에 빠졌던 적이 있다.

동양의 정신을 부르짖으면서도 그런데 양놈에 비하여 뛰어나다는 정신이 무엇이관데?하고 물으면 정작 답이 없는 빈곤감. 결국 우리는 문명세계 속에서 행방불명 상태인 것이며, 타인들의 신화에 기대어 살 수 밖에 없다는 절망감. 결국 불모의 영혼 위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퍼붓고 성경책을 읽음으로써 스스로 무화되고 완벽하게 서구화되는 바나나의 상태를 보는 것이다.

미야자키의 만화에서는 한국인이 거부하고 싶은 양면, 일본을 감싸고 도는 문화의 총체인 각종의 모노카타리(物語)와 공산주의자로서의 인간의 소외에 대한 미야자키 그 자신의 독특한 휴매니즘적인 시각이 수채화처럼 번져나가는 것을 읽을 수 있다.

20040601 14:42 작성

어른들은 자신의 이름을 잃어가면서 모르는 사이에 탐욕에 빠져든다. 그 탐욕이란 대상도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을 욕망하는지 조차 모르면서 하염없이 그저 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욕구는 없으면서도 남들이 가진 것, 남들이 바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그저 갈구한다. 돈, 황금, 멋진 옷, 지식, 멋진 차 등의 모습으로 다가오긴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공허하다. 자신의 가슴 속에 끊임없는 차오르는 욕망의 실체를 사람들은 찾지 못한다. 하염없이 소비하되,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더 이상 배고프지 않고, 차를 갖고 있으며, TV와 냉장고 그리고 수많은 것들을 갖고 있다. 그래도 끊임없이 뭔가를 사는 이유는 물건보다, 거기에 채워질 욕망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유바바와 계약을 맺은 치히로(千尋)는 자신의 이름에서 글자를 떼어내고 센(千)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하쿠는 치히로에게 자신의 진짜 이름을 잊지 말라고 한다. 이름을 잊지 않아야 유바바의 마법으로 부터 풀려날 수 있다고 한다.

어른이 되면,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리게 된다. 대리, 과장 등의 직함이나, 아버지, 어머니, 선생님 등의 사회가 만들어 준 이름으로 살아가게 되고, 조직과 사회 속에 매몰되어 자신이 누구인지, 뭘 바라는지를 까맣게 잊은 채 사회와 조직이 욕망하는대로 살아간다. 무엇을 좋아하고 사랑하는지를 잊고 단지 탐욕할 뿐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자신을 잃고 탐욕하는 존재는 바로 유바바다. 치히로는 행방불명에서 풀려날 수 있다지만, 유바바는 아직도 행방불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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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개봉 : 2001년, 한국에서는 2002.06.28일 개봉
각본, 감독 : 미야자키 하야오(宮崎 駿)
제작 : 스튜디오 지브리
배경 : 불가사의한 마을(不思議の町)
인물 : 치히로 혹은 센, 하쿠 외

참고> 千と千尋の神隱し

This Post Has 4 Comments

  1. lamp; 은

    아! 센과 치히로가 나온게 2001년이었네요.
    벌써.. 그렇게 되었던가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원령공주가
    마지막 작품이라고 알고 있다가
    다시만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얼마나 반가웠던지. ^^
    .
    .
    무엇보다도 그게 벌써 8년전이라는 게
    중요해지려는 순간입니다.

    1. 여인

      벼랑 위의 포뇨를 보지 못했네요.
      나우시카, 라퓨타,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붉은 돼지, 온 유어 마크(16분),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 하울, 게드전기, 귀를 기울이면, 추억은 방울방울, 이웃집 야마다군, 너구리 폰포네, 고양이의 보은(하야오씨 것이라고 볼수 있나?) 등 우와 무지하게 많이도 봤다.

      베스트 3를 고르라면 토토로, 붉은돼지, 나우시카 입니다.

      센과 치히로, 마녀 키키, 붉은 돼지의 감상평은 달아놓았고, 언제 한번 하야오 특집으로 감상을 올려야 되겠네요.

    2. lamp; 은

      저는 토토로, 나우시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요..^^

  2. 善水

    넘들처럼 아불라아불라 떠들지 않았다는것? 음.. 부실한 결론.. 저는 전래동화를 무지 좋아하며 자랐는데요, 뭐랄까 이솝우화나 안델센동화 따위가 근접할수 없는 아우라가 있는것 같아요 그 오묘한 지혜의…
    저도 나우시카 되게 좋아해요^^ 하야오 특집 기대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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