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

그는 창을 통해 하늘을 보았다.

일어서서 창 밖을 보고자 했으나, 절망할 것이 두려워 앉아서 그냥 하늘을 보기로 했다.
아마 창 밖을 골백번 아니 수천 번을 내려다 봤으리라.
이제 좁다란 교도소의 뜰을 지나 하늘로 높이 쏫아 있는 시멘트 벽의 얼굴과 빛이 스치고 지나는 모습 모두를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철창을 통하여 벽을 보게 될 때 끊임없이 이어질 것 같던 기억은 거친 벽의 표면에 부딪혀 더 이상 움쩍거리지 못하게 될 때, 무기력한 절망감에 휩싸이곤 했다.

사실 자신이 어떠한 죄를 지은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죄책감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사람들이 자신에게 손가락질하며 사회의 악으로 단죄를 받아야 한다고 했을 때, 막연한 수치심 속에서 사람들에게 화가 나게 만들었다는 점에 대하여 뭔가 책임을 져야 된다는 느낌만 있었다.

그래서 처음 감방에 들어왔을 때 서글픔을 느끼지 않았으나, 창 밖으로 빛이 스치고 지나는 것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밤이 왔으며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이 괜찮다고 느꼈다.

며칠 후 변호사가 왔다.

다시 재판을 하자고 하였으나 그는 한사코 재판을 않겠다고 했다. 변호사는 이번에는 반드시 이기며 살 수가 있노라고 했다. 그는 변호사에게 더 이상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변호사는 흥분하여 욕설을 퍼붓더니 그의 눈을 한동안 들여다 보고 나서 침묵 속에 있다가 그냥 돌아갔다.

그는 돌아가는 변호사에게 재판을 안 한다고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변호사는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변호사의 눈에서 잠시 물기를 본 듯도 했다.

그 후로 늘 앉아서 멍하게 시간을 죽여가기 시작했다.
겨울이 지났으며 봄이 왔고 교수형을 당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독방에서 자신과 대화를 하거나 세상에서 만났던 사람과 대지에 흘러 다니던 갖가지 내음들을 기억 속에서 끌어내고 있을 때, 목사가 왔다. 그는 그에게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신의 보혈을 믿어야 될 것이라고 조용하고도 신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목사가 하는 말이 딱히 무슨 뜻인지는 몰랐으나 목사의 인상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가 조용히 있자 목사는 주저하는 듯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말했다.
그는 자신도 천국과 지옥 정도는 안다고 수줍은 듯 말했다.
목사는 예수를 믿음으로써 신의 품에 안길 것을 간청했다.

그는 신의 품에 안기는 것을 수락만 하면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지만, 거절하기도 뭣하여 목사의 간청을 수락하기로 했다. 그 후 목사는 이삼 일에 한번씩 들리곤 했는 데, 조용했던 그의 삶 속에 목사의 방문은 상당히 번거로운 것이었다.

목사는 들릴 때 마다 뭔가를 요구했으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통성기도를 부탁했으나, 무슨 죄를 지은 지 모르는 그로서는 난감하기 까지 했다.

목사는 부드럽기는 했으나 준엄한 태도로 그의 미온적인 회개에 대하여 꾸짖었으며, 이 죄 많은 탕자를 용서해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눈물을 흘리는 목사를 보며 신파극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으나 누군가 자신을 위하여 눈물을 흘려줄 수 있다는 점에 만족했고 고마웠다

목사가 오고 가고 교도관들의 태도가 온화해지면서 자신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 창 밖의 세상이 그립지 않았다.

자신의 살 냄새를 맡으면 불현듯 옛날이 떠오르곤 했다.

산동네의 김치국 끓이는 냄새 속에 어두운 판자집을 헤치고 들어가면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났다. 두툼한 솜요 위이긴 했으나 차디찬 방바닥 위에 누운 아버지의 주변에는 땀과 소주냄새가 범벅이었다. 아버지는 죽어가기 위해서 소주와 잠 속에 침몰하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를 그렇게 버려두고 또 일을 하러 시장으로 내려갔다.

달동네에서 저물어가는 도시를 바라보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향락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떠나자 말하기를 그쳤다.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시장거리에서 짐을 나르거나 하면서 그를 길렀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을 떠나는 것이 두려웠는지 학교도 안 보내고 자식과 거리를 배회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도시의 모든 것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들이 도시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산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의 침묵 속에 자신이 휩싸여 있고, 침묵 속에 아버지의 커다란 눈망울을 보며 자랐다. 아버지의 눈 속에서 그는 모든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외로움과 굶주림과 아버지를 스쳐 지난 세월. 추운 겨울 아버지의 품에 기어들어 하늘을 보며, 산다는 것의 처절함을 배웠다.

아버지는 침묵으로 껍질을 만들어 처절한 세월을 건너고 있는 지도 몰랐다. 점차 크면서 아버지에게 깃든 집요한 사랑과 세상에 대한 초연함을 배우기 시작했다.

자신이 커서 셋방을 얻고 생활이 안정되면서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아버지는 돈을 조금씩 모아갔고 그 돈으로 술을 샀다. 그리고 밤낮으로 술을 먹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도 침묵을 지켰다.

아버지 죽으려고 이래요?
아버지는 눈망울을 굴리며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식은 아버지의 눈을 보며 모든 것을 이해했다.

도시의 가장 밑바닥에 살면서도 끈질기게 살아온 것은 자식을 위해서이며, 그 집요함은 아버지와 자식을 멸망의 끝까지 몰아왔다.

항상 파멸의 가장자리를 보내온 그둘로써는 멸망이나 희망 등에 초연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침묵의 밑바닥에 절망이 있고, 아들인 자신이 절망이 침묵의 표면에 떠오르지 않도록 하는 버팀목임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먹을 것을 토해내면서도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아들이 아버지 더 이상 아프지 않도록 제가 죽여드릴까요 하고 물으면 아버지는 손을 저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의 고통을 알았고 언젠가는 편히 돌아가시도록 하겠다고 결심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무지와 침묵과 가난과 도시의 저 밑바닥에서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자신의 삶에 있어 어떤 줄거리를 가진 추억이라는 형태의 기억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창문을 통해서 벽을 응시했다.

아버지와 아들의 집요한 사랑 속에서 자신은 다만 아버지를 인생이라는 난잡한 것에서 끄집어 내어 죽음 속으로 보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인생과 자신의 삶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벽을 넘으면 거기에 생활이 있을 것이다. 김치찌개 냄새를 풍기는 생활. 사람들은 살 냄새와 웃음소리를 떠올리며 때론 잠깐의 슬픔과 절망을 맞이하리라.

그는 자신의 삶이 아닌 타인의 생활 같은 것에 아버지가 빠지도록 했어야 됐다고 생각했다.

생활이 그리웠다.

그런 생활로부터 격리되고 이제 곧 교수형 당할 것이며, 유예된 짧은 시간과 장소에서 생활을 그리워하게 된 것에 분노했다.

그 누구도 죽음을 정해놓고 죽음까지 생명의 시간을 재어볼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밤이 왔으며 창에는 별들이 걸리는 데 회오리 치듯 모든 것이 명료하게 회상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아무런 가치도 없었고 한 순간의 아름다움도 절정도 찬란함도 없었으며, 굶주림과 메마름 뿐임을 알았다.

그것이 생명의 본질이었다. 그는 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대지에 그를 내동댕이쳐 버렸으며 아무 의무도 지지 않았으나, 불쌍한 아버지가 자신을 품에 안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신을 용서하기로 했다.

광활한 허무 속에 생명의 의식이 잠시 반짝이다 사라지는 것일 뿐이다. 이제 곧 자신의 생명이 끝나면 신마저도 사멸해버릴 것이다.

그는 죽음에 대하여 가슴을 열었다. 엄청난 두려움으로 죽음을 맞이하자 죽음은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대지의 훈향 만도 못한 신을 용서할 수 있고 어머니도 용서할 수가 있으며 자신의 인생을 훑고 지나간 더러운 시간마저 용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소리와 냄새, 바람, 하늘을 수놓은 별빛에 자신의 모든 감각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유별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코 특별하지 않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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