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세상 속으로

환장할 일은 또 4시가 되자 눈이 떠졌다는 것이다. 친구 놈은 일어나지 않는다. 심산유곡인지라 아침 빛은 감돌지 않으나 달빛이 내려앉는다. 다섯 시까지 뒤척인다. 심심하여 친구를 깨운다. 그리고 개울 가로 내려가 라면을 끓인다. 그리고 일곱 시가 될 때까지 새벽바람 속에 댓 자로 누워 있는다. 이런 바람을 소슬한 바람이라고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하루쯤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으나, 마누라와 자식 놈들이 무섭다. 아니 그것보다는 여유를 찾겠다는 초조함 때문에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것 일지도 모른다. 횡단보도에 파란 등이 들어오면 남보다 황황히 먼저 건너가고 난 후 정작 바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소시민. 세월이 좀 먹느냐고 떵떵거리면서도 바쁘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집에 와서는 치~소리가 날 때까지 TV를 보는 이율배반이 내 생활인 것이다. 사실 인생에 와꾸를 치고 매일 새끼줄(Schedule)을 꼬는 삶이 잘 사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늦가을 점심 때, 사무실에서 교보문고로 책을 사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낙엽을 보았다. 전날의 가을비에 떨어진 낙엽은 빗물 속에 한 쪽 몸을 파묻고 찬 가을바람에 떨고 있었다. 세상의 사람들이 시청 앞 돌담길을 낙엽을 밟으며 황황히 겨울로 가고 있었다. 애절한 떨림을 보며 하늘을 보았다. 어찌 이런 감상이 다시 오는 것인가? 사무실로 돌아가기를 늦추고 망연히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무표정한 눈으로 또는 심각한 표정으로 아니면 웃음을 지으며 간다. 그들이 달려가는 곳은 바로 세상 속이며, 거기에 왜 가야 하는 지의 이유란 없다.

우리는 이빨을 닦고 면도를 하고 스킨로션까지 바르고 차에 올랐다. 대전 통영 간 고속도로로 서울로 가는 것이다. 가기 전에 함양을 들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함양 산청이라고 하면 두메산골의 대명사이다. 쌀 한말 지어 먹고 시집가면 동리에서는 갑부라는 곳. 이 곳은 육십령을 지나면 장계이고 운봉을 지나면 남원이다. 함양이 모두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의 고향인 백전(들말)이 그렇다. 호남과 영남이 혼재 되는 곳이며, 큰아버님이 인공에 떨어진 진주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국군과 숨어 지내다 돌아가 부역을 했다고 의심을 받던 곳. 함양지서에서 빨치산과 토벌대가 담판하던 곳. 아버지는 아홉에 큰아버지가 선생을 하던 진도로 가서 소학교를 마치고 전주사범을 나와 해방되던 해에 백전소학교에 열여덟 살 초임 선생님이 되었다. 아버지의 친구 분들은 아버지보다 보통 연치가 열이나 높으시고, 고향 땅에서 서른 살 아재비 뻘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는 가혹한 배고픔이 어리고, 할머니가 미끄러지는 짚신을 신고 삼판에서 일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한 푼에 목숨을 걸어야 했던 세월이 서글프기도 하다. 여차저차 세월이 흘러 내 나이 여섯이 되고 삼촌이 조카인 나를 끌고 고향으로 간다. 전라선을 타고 남원으로, 운봉이나 인월을 지나 함양에 들었을 것이고 하루 밤을 보낸 후 먼지 탈탈 나는 신작로를 버스를 타고 하염없이 지난다. 들 위로 노루들이 뛰어다닌다. 백전(들말)에 이르자 이빨 빠지고 땜통이 큰 청년이 때 국물 절은 한복 저고리를 입고서 쇠불알에 바람을 불어 넣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지지리 궁상맞은 것을 알았던 지 기억 속에 하얗게 남는다. 아버지의 고향은 백전초등교를 지나 물레방아 깐을 지나 개울을 넘어 바위 틈을 지나면 또 실개천이 흐르고 갈대밭을 지나면 인가가 네다섯 호에 당집이 있는 곳이었다. 어찌 이런 곳에 사람이 사랴 하는 곳에 할머니는 환갑이 넘었는 데도 새까만 머리를 하고서 방 안 저쪽 어둠 속에서 손자를 맞았다. “삼촌! 할머니 맞아?” 그래서 그 곳에서 몇 달을 할머니와 보내게 되었고 그것이 나의 시골 생활의 전부였다. 노루잡이 아저씨들이 동리에 들면 사람들이 슬슬 피하곤 했다. 후일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 데 그들은 빨치산 전향자들이었다. 이제는 백전면을 가로질러 88고속도로가 지나고 한식간여면 대전에 떨어진다.

본시 함양은 서안(장안)의 지근거리에 있는 전국시대의 진의 수도요. 진한지제를 연 진시황 정의 아방궁이 있는 곳이다. 그 어름에서 서주시대가 열리고 渭水에서 태공망 강자아가 낙시를 드리웠다. 함양에도 渭川이 흐른다. 위천은 산청에서 경호강이 되고 진주에 이르러 남강이 되었다가 낙동강에 합류하여 남해로 간다.

고속도로를 올랐다가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로 올라선다. 차들은 지리산을 벗어나 덕유산, 대둔산 등의 산골짜기를 시속 120킬로로 달린다. 골 사이를 스쳐 지나는 바람에 차가 미끄러지는 아슬함을 즐기며 서울로,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2002.07.26일 여정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