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재;現存在;Da-sein;세계-내-존재

Da-sein

dasein거기 혹은 그때존재=現存在

◎ 나와 세계 : 나와 세계는 두부모 자르듯 구분할 수 없음.(잘라버린 나의 머리카락은 나인가?)

    → 하이데거는 <그래서> 인간을 세계-내-존재(In-der-welt-sein)이라고 함.

◎ 실증주의 : 주관과 객관의 분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이 전제에서 모든 것을 논의

    → 후설의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존재론 : 주관과 객관은 구분할 수 없이 연결됨

◎ 현존재라는 까다로운 이름은…

실증주의적이고 생물학주의적인 실체로서의 인간 개념(혹은 자아)을 거부하려는 의도임.

인간은 사물과 달리 의식 활동을 하며, 인간은 무엇을 의식하기 위한 존재이지, 무엇에 의해 의식되는 존재가 아님. 따라서 인간의 존재방식은 사물의 그것과 다름.

◎ 현존재의 존재방식

현존재는 존재하면서 존재를 문제삼는 유일한 존재임. 인간은 세계 속에 존재하면서도 세계를 대상화시켜 바라볼 수 있는 특수한 존재임. 세계 속에 존재하는 한 인간은 객체이며, 세계를 마주대하고 있는 한 주체임. 즉 인간은 주체이면서 동시에 객체임.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면서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함.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자신이 왜 사는가를 물음.

세계의 일부면서 세계의 주인이기도 한 존재방식, 이를 가르켜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이중적 존재방식이라고 함.

◎ 현존재나 세계-내-존재라는 개념을 만든 이유

하이데거는 인식론에 치우친 기존의 형이상학으로는 존재론을 다룰 수 없다고 보았고, 주관과 객관을 분리하는데 익숙한 형이상학의 언어는 개별존재자를 말할 수 있어도 존재일반을 말할 수는 없다고 봄.

그래서 그는 존재를 기술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를 詩에서 찾음. 그에게 현존재란 일종의 철학적 시어에 해당됨.

<개념어 사전>

※ 참고: 존재와 시간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가 의도한 것은 존재자의 존재 또는 존재 일반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존재자가 구체적인 사물로서 주관에 의해서 포착되는 것임에 반해 존재는 자신을 은폐하고 있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존재자는 존재를 통해서 있게 되는 것이므로 존재자에 대한 탐구로부터 존재에 대한 단서를 가질 수 있다. 세계에는 무수한 존재자가 있다. 이중에서 존재에 대한 물음을 갖는 존재자는 오직 현존재(인간)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존재에 대한 물음은 현존재의 분석으로부터 그 대답을 얻을 수 있다. 하이데거는 존재자인 현존재의 분석이 현존재의 존재론적 분석이며 그것이 곧 기초존재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현존재와 존재의 관계맺음의 방식으로부터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하이데거는 해석학적 현상학을 방법론으로 사용한다.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본질이 실존에 있다는 사실로부터 현존재를 이미 세계 안에 던져진 존재로서 파악한다. 사물로서의 존재자나 도구적 존재자가 아닌 현존재는 세계 안의 다른 존재자들과 관계맺음을 통해 존재 양식을 갖는다. 그러나 여기서 현존재의 고유성은 타인들의 존재 양식 속으로 해체되어 버린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계기의 일상성과 군중의 관습성, 평균성 등이 그 예이다. 현존재는 이러한 비본래적인 존재 양식으로부터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현존재의 본래적인 존재 방식을 갖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근원적으로 이해하고 스스로 본래적인 자기로 존재할 것을 결단해야 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현존재의 본래적인 존재 방식이 실존이다. 실존은 시간성 안에 놓여 있다. 이때 밝혀지는 현존재의 본질은 죽음을 향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존재는 지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죽음을 자신과 무관한 것으로 여기려 한다. 이것은 또 다른 비본래적인 존재 양식이다. 본래적인 존재 방식을 위해서 현존재는 죽음이라는 실존적 본질에 대해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이러한 현존재의 본래성을 증명하는 현상이 바로 양심이다. 하이데거는 양심에 의해 본래적인 존재 방식이 선택되는 것을 결의성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결의성으로부터 현존재는 본래적 자기로서 존재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기투한다. 세계 안에 이미 놓여 있으면서 동시에 죽음을 향하며 또한 본래적 존재 양식을 위해 기투하는 현존재의 존재 구조는 시간성 안에 놓여 있다. 즉 현존재의 존재는 시간성에서 현시된다. 하이데거는 이것을 과거, 현재, 미래라는 단절된 시간 계기가 아니라 통일적 현상으로서 역사에서 지속하는 생기로 바라본다.

참고> 실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