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저물 녘에

잠시 미명을 본 듯하다. 새벽 4시 30분. 나의 기척에 친구가 깨어난다. 어제 밤 피곤을 지우기 위하여 한 한잔 소주기운은 말끔히 가시고 정신이 투명할 정도로 맑다. 잠은 더 이상 올 것 같지 않다.

친구가 주왕산으로 가자 한다. 5시가 되자 둘은 길에 내려섰다. 새벽 닭소리, 소쩍새의 울음소리에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산 그림자가 일어서고 하늘 위로 아침이 소리치며 일어난다. 한 낯의 뜨거운 내음을 새벽 공기 속에서도 맡을 수 있다. 장마라는 데 하늘은 맑고, 새벽 골안개 위로 산들이 올라선다. 동해 일출의 붉은 기운이 하늘 언저리까지 밀려온다.

매표소를 지나고 상점들을 지나자 개울물이 소리 없이 활짝 바닥을 드러내 보인다. 명징!

드디어 제일폭포에 다다랐다. 19년 전인가 이 곳에 왔을 때도 입을 다물지 못했던 풍경 속으로 또 다시 들어선다. 다시없는 풍경이 짧다는 것이 안쓰럽지만 풍경이 좀더 길다면 그야말로 和光同塵, 빛 속에 먼지가 되어 사라지리라. 人牛俱忘, 풍경도 나도 없어져 버리고 다시는 저잣거리로 돌아갈 수 없는 세계로 가버릴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하여 아침 개울물에 발을 담근다. 차디찬 물살이 온 몸으로 번지면서 세포 하나 하나를 일깨운다. 무너져 내릴 듯한 단애 아래서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신다.

이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잠에서 깨어나리라.

아침을 해 먹고 다시 길을 떠난다. 가는 길에 옥계가 나타난다. 개울물과 꽃잎이 서린듯한 벼랑. 아침 열 시의 맑은 계곡 물에 사람들이 발을 물에 담그고 하늘을 쳐다본다.

영덕의 외항인 강구에 도착. 내가 기억하는 강구는 빗줄기 속에 음울한 하늘을 나는 갈매기 몇 마리였다. 그러나 7월 어느 날, 11시의 포구는 작열하는 태양과 선착장에서 올라오는 썩어가는 고기 살점들의 비린내음이 가득하다. 땀을 흘리며 등대까지 걸어간다.

바다가 거기 있다. 그리고 포구를 둘러 싼 산등성이에 들어선 하꼬방 집들이 햇빛과 해풍에 바래고 있다. 친구가 말했다. 저런 집들의 툇마루에 앉아 바다를 보며 사는 생활이 부럽다고. 과연 그럴까? 문을 열면 365일 보이는 바다, 심드렁한 수평선과 갈매기 몇 마리. 그리고 고달픈 일상. 저들은 절망으로 나날의 바다를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절망의 끝에서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퍼 올려야 한다. 그것이 생활이다. 그래서 그들은 육자배기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때로 절망보다 미치도록 강렬한 비린내를 맡을 것이며, 식어버린 열정과 잃어버린 자유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에 뜨거운 입 내음을 풍기며 자신의 지친 삶을 껴안는다.

차는 경주를 지나 통도사에 들어선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가자. 자 이제 가자. 이 천차만별 현상세계를 넘어…. 그 니르바나로 온갖 것 다가고 말면, 오! 깨달음이여, 이루어지이다) 이 노래의 뜻이 通度寺(몽땅 깨달음을 얻는 절)일 것이다.

누가 너의 마음 속에 있는 절이 어디냐고 물으면 바로 통도사이다. 그럼에도 이십 년이 넘도록 이 곳을 들르지 못했다.

삼보고찰 중 불보인 통도사. 예전에 왔을 때, 경봉스님이 통도사 옆의 암자에 계셨다. 그 때 해인사에는 성철스님이 조실을 하고 있었는 데 삼천배를 아니하면 만나주지 않아 내가 열 챘냐? 큰 스님이면 중생을 만나야지 등 꼿꼿이 세우고 할 자만 내지르면 되냐고 친구들과 술만 마셨던 것으로 생각한다. 통도사에 이르러 경봉스님을 만나러 가자 하여 그냥 가면 되느냐고 했더니 그 할아버지 아무나 만나. 만나면 좋은 덕담을 주시지. 하여 스님이 있는 암자에 이르러 조실 스님 방 앞에서 스님! 계십니까? 아무 말씀이 없자 댓돌에 스님 고무신을 찾는다. 고무신이 없자, 친구 놈이 장지문을 왈칵 열어본다. 스님의 방은 두 평 남짓, 건너편 문이 열려 있다. 맞은 편 뜰에는 보리수가 자라고 있었고 그 잎새 사이로 햇빛이 그윽하게 뜰로 내려 앉는다.

내 느낌에는 성철스님은 무시무시한 임제요. 경봉스님은 맘씨 좋은 조주 할아버지다. 당나라 말엽 120살을 살았다는 조주스님은 내 기억이 맞는다면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달마서래의: 원역은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은?)이라는 질문에 “차나 들고 가게”라고 답했으며, “깨달음은 얻고 나서 뭐가 달라졌느냐”는 질문에 “글씨 배고프면 밥 묵고 졸리면 자지” 라고 평상심을 이야기 하던 할아버지이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한문 번역을 가장 잘한 구절이 바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라고 생각한다. 달마가 가버리고 없는 가을 날 참나무 가지 사이로 뜨락에 내려앉는 양광. 만약 달마가 서쪽에서 와서 지금 여기에 있다. 그의 실존 하나 만으로 뜨락 위의 모든 아름다운 것은 그 의미를 상실한 채, 치열한 구도와 알 듯 모를 듯한 화두가 주어진다. 혜가가 면벽 중인 달마의 등 뒤에 선다. 달마는 돌아서지 않은 채 면벽 중이다. “스님 도를 듣고자 왔나이다.” “네 놈이 목을 내놓는다면 도를 알려주지.” 혜가는 그의 왼팔을 잘라바친다. “스님, 제 목을 드린다면 스님의 말씀을 듣지 못할까 제 팔을 바치나이다.” 달마가 구 년 면벽을 파하고 돌아선다. “무엇 때문에 왔는가?” “마음이 아파서 왔습니다.” “네가 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어디 한번 꺼내 보여라.” 혜가는 일순 주춤한다. “도시 마음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달마가 미소를 짖는다. 이미 혜가는 한 소식을 했다. “그럼 이제 내려가거라.” 그 치열한 스트레스, 그것이 달마서래의이다. 혜가가 득도를 하여 이조가 되며 그 후 소림사 스님들은 외팔이 스님 혜가를 기린다는 입장에서 한 팔로 합장을 하기에 이른다.

예전에 통도사에 이르기 위해서는 통도사 입구에 내려 주점과 목욕탕을 지나 십여분을 걸으면 무풍교가 있고 그 좌측의 언덕 위에 여의봉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풍교의 바로 앞에 문루가 세워져 있고 거기에서 입장료와 주차비를 받고 있다. 舞風橋(바람이 춤추는 다리). 여기에는 전설이 있다. 본시 통도사는 구룡지였다고 전해진다. 창건조사께서 흉악한 용 여덟 마리를 죽이고 한 마리는 눈을 찔러 봉사를 만든 후 연못에 가둬두었다고 한다. 그 한 마리가 여의주를 물면 비등승천할 수 있기에 여의봉을 향하여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데 바로 용의 입과 여의봉 사이에 무풍교가 놓여 있어 다리 위에는 항상 바람이 분다고 한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다리를 벗어나면 바람이 뚝 그친다. 다시 다리 위에 오르면 바람이 분다. 차창을 열고 다리를 지나니 여지없이 바람이 스친다.

통도사 본사 개울 건너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일주문을 지난다. 불이문을 지나면서 단청불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에 안심을 했다. 요즘 중건이니 개보수니 하면 그야말로 절을 망쳐버리는 데 손을 안댄 것에 감사한다.

통도사 본전의 이름은 3개이다. 적멸보궁, 금강계단, 대웅전. 그러나 본전불이 없다. 동쪽에 부처님 진신사리가 있기에 불상을 놓지 않았다. 금강계단을 올라 예를 올린다면 그야말로 반야부의 중심언어인 공(Sunyata)에 즉입하는 것이 될 진데, 신심이 없는 자가 어찌 법당 안의 적요함을 깨칠 것인가…

무량수전을 보고 난 후 조선조의 건물 중 특이하다는 丁 자형 지붕의 장방형의 통도사 본전을 보니 예전에는 참으로 멋있다고 생각했는 데 이제는 허술하다는 느낌이 감돈다. 그만큼 무량수전의 맛들어짐을 따라갈 수 없다는 양식 상의 후퇴가 아쉽다.

용을 가둬두었다는 본전 옆의 연못은 예전에는 연꽃 아래가 깊이 일쎈티도 들여다 보이지 않았는 데 이제는 바닥에 가라앉은 동전까지 다 헤아릴 수 있다.

전에 잠시 머물렀던 백련암에 들린다. 예전에는 암자 앞 논 뚝에서 내려다보면 연봉들이 발 아래 동해까지 쭈악 펼쳐졌었다. 그러나 이제 그 풍경들이 울창하게 자라난 수풀들로 가려져 사라져 버렸다.

이제 섬진강으로 가자는 친구의 득달에 다시 길을 달린다.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 삼량진으로 거슬러 오른다. 경전선이 스쳐 지나는 곳, 경전선을 타고 가면 낙동강 지류에 갈대가 자라고 그 사이로 창포가 강물 위로 잎새를 드리우는 곳. 그 곳을 지나다 보니 피로감이 엄습한다. 친구에게 핸들을 맡기고 옆에서 쉰다. 남해고속에 접어들고 하동에 내려선다. 이미 7시가 넘었다. 섬진강은 저물 녘이다. 전전날 내린 비로 강물이 불어있어 백사청죽의 섬진강의 모습이 지워져 있다. 길은 강물을 따라 거꾸로 흐른다. 드디어 악양을 지나 화개에 이른다.

왜 화개인 줄 아는가? 복사꽃 피던 4월의 어느 날, 섬진강을 보고 싶다던 친구와 함께 밤차를 타고 구례구에 내려 첫차를 집어 타고 전년 여름을 보냈던 쌍계사로 올랐다. 화개천 위로 바람에 벚꽃 잎들이 눈내리 듯 내려앉는 것을 보며, 산사에 올라 점심 공양을 받은 후 다시 화개장터로 내려와 하동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나는 그때 화개교 위로 걸어가 봄 날의 섬진강을 보았다. 오후 2시 햇빛이 진녹색의 강물 위로 조요하게 내린다. 나는 피로감에 잠시 깜빡한 것 같다. 그 때 강물 저 쪽으로 웃음같이 벚꽃 잎이 흘러간다. 나는 꽃잎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나는 화개교 아래까지 눈이 미쳤다. 화개천 끝은 온통 화사한 살색 꽃잎이다. 와글와글 몰려온 꽃잎들은 섬진강을 만나자 와하고 섬진강의 강심으로 활짝 핀다. 이미 저버린 꽃잎들의 부활, 두번의 삶으로 섬진강에서 꽃들이 다시 피다. 이름하여 花開.

벚나무가 터널을 만드는 쌍계사까지의 길을 따라 올라 절 앞에서 민박을 잡고 은어회와 함께 술을 한다. 어둠 속에 개울물 소리가 그득하다.

2002.07.24일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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