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제국

영원한 제국이라는 소설은 정조시대 선비들의 관념론적인 사고를 유추할 수 있도록 하는 돌쩌귀 구실을 하고 있다. 현대 한국인에 있어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불과 1-2백년 전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세상을 보았는 지를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현대의 해석학(특히 하이데거)이 말하듯 개개인은 세계 내 존재로 자신 만의 경험의 역사 속에서 세계를 인식할 수 밖에 없음은 타당하며 이에 따라 현대인은 주역과 성리학 그리고 육경과 사서를 알지 못하고(읽기는 하여도 그의 응용과 실천을 모름) 조선조의 선비와 백성은 과학적이라는 낱말의 일편조차 얻어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관념과 세계 인식에 공통점을 찾을 수가 없다.

영원한 제국은 이러한 해석학적인 관점에서 조선조 사대부층과 왕가의 관념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이해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영원한 제국은 주나라로 돌아가고자 하는 정조의 의지를 뜻한다. 그 영원한 제국은 예악이 바르고 군신 간의 의리가 명백한 제국을 말한다.

정조는 서경(상서)의 주서 홍범편에 나오는 毋偏毋黨 王道蕩蕩 毋偏毋黨 王道平平의 이념을 실현함으로써 강력한 왕권을 회복하고 가렴주구를 일삼는 관료들을 장악함으로써 치국의 묘를 살려 태평성세를 이루려 하였다.

반면 崇漿山林 勿失國婚(지방의 유생의 여론을 업고 외척세력을 구축)의 권력유지방책을 갖고 장기간 집권해 온 노론벽파는 그 이념적 근거를 율곡의 이기일원론에 두고 있다.

노론의 사종인 율곡의 이기일원론에 입각한 치도의 입장은 理와 氣가 분리되지 아니한 것인 바, 王權(이)이 臣權(기)을 능가하지 않는다는 논리와 일치한다. 반면 남인의 사종이 되는 퇴계의 이원론은 이가 주요, 기가 종인만큼 정치철학 자체가 철저한 왕권(이)중심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사실 상 현대적인 민주주의의 맥락에서 볼 때, 율곡의 이기일원론적인 관점이 훨씬 타당성이 있으나, 조선조의 정치체제가 군주제라는 관점에서 볼 때, 엄밀한 왕도정치가 아닌 정치체제에는 문제가 있다는 점, 그리고 조선의 멸망이 결국 왕이 절대권력을 갖지 못하여 권문세도가의 농간에 놀아났기 때문이라는 결론, 이것은 타당한 것이다. 퇴계학을 흡수한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라는 강력한 천황중심의 절대왕권 체제를 확립함으로써 근대화의 길을 걸을 수 있었지만 조선에는 왕에 의한 유신이 없었다는 점, 이것이 권문세도가의 가렴주구로 왕국의 쇠멸을 재촉했던 것이다.

본 소설은 남인의 입장에서 정조가 살아있었고 유신에 성공했더라면, 왜국으로 부터의 병탄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자율적인 근대화의 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었기에 결국 박정희 군사 정권에 의한 유신이라는 비극은 없었다는 과거 역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을 감추고 있다.

하루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이 소설은 권력투쟁의 깊은 내막을 추리소설의 형식으로 전개하면서 저자의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털어놓고 있다. 특히 본 소설을 1차 읽고 그 후 한참을 지나 소설 목민심서를 읽은 연후, 본 소설을 다시 읽다 보니 소설 목민심서와 역사적 배경, 인물, 그 시대적인 사고 등이 묘하게 접목되면서 저자의 고증학적인 역사 인식 또한 날카로운 점을 접할 수 있는 것 또한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하게 된다.

특히 사서(노론)와 육경(왕)의 논쟁에 있어 남인들은 시, 서, 역 등 3경은 옛 성왕의 어진 정치를 이야기하는 바 이가 주라고 하나, 노론벽파에서는 사서는 아성인 주자가 집주라는 방식으로 보편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이와 기에 대한 논리를 전개하였다 하며 군자의 개념을 사대부까지 낮춤으로써 왕권의 절대성을 부인하고 있음은 그 시대의 이론적 헤게모니 쟁탈의 한 전형을 보여 주고 있는 것 같다.

소설은 영조의 유조인 금등지사를 들어 친위쿠테타(維新)를 도모하고 있는 정조가 시경천견록이라는 위서를 만들어 노론세력의 눈을 속이는 만천과해의 수법을 펼치나, 결국 노론세력이 막판에 이를 눈치채고 금등지사를 찾아냄으로써 왕에 의한 유신은 실패하고 결국 노론에 의해 정조가 독살된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으며, 소설의 논리전개가 서구식의 논리에 의하기 보다는 오히려 동양적인 논리구조로 펼쳐지고 있다는 점, 이 소설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왕권의 중요성이 火水未濟와 水火旣濟의 주역의 논리로, 건축방위의 문제로 왕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점 등이 저자가 소설을 씀에 있어 상당히 당시의 식자층의 사고를 반영코자 노력한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1998.07.28일 작성

참고> 영원한 제국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다리우스 08.11.02. 00:07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 이류 08.11.02. 09:30
    참 잘 써진 소설입니다.

    러시아황녀 08.11.09. 09:56
    이 작가의 “내가 누구라고 말 할수 있는자는…” 도 있습니다.. 준비는 3~5년 쯤 하고 쓰기는 두 달만에 쓴다고 하더군요..
    ┗ 旅인 08.11.09. 20:17
    이인화 씨의 이 책이 나왔을 때,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라는 책이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이 책과 에코의 책을 비교하곤 했지요, 움베르토 에코도 3~4년동안 세월을 소모했다고 하더군요. 에코의 책은 사백년전의 추리소설이고 이 책은 이백년전의 추리소설이라는 점도 공통정이지요.
    ┗ 러시아황녀 09.01.02. 21:47
    96년이던가 이인화선생이 막 이화여대에 전임이 되었을 무렵 함께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안동의 어느 문인 종가에서 일박을 하고 드문드문 하던 말 끝에 꼭 소설을 쓰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역사속에 어떤 인물에게 빠지면 몇년 동안은 아주 함께 산다고 하더군요.. 에코 역시 처음부터 소설을 목표로 한 작업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우연히 펼쳐든 고서나 영인본 신문의 기사가 소설이 될 수도 있은 것이니까요.어느 소설가 한분이 청계천에서1950년대 미군정 때신문 영인본을 만나 언젠가는 볼 일이 있으리라고 들고 왔다가 40년 후 어느 신문사로부터 연재 청탁을 받았는데, 그 때의 영인본 을 통해 글을 쓰고 있는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旅인 08.11.10. 04:21
    이 책이 나온 시점이 96년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당시 주역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것을 해석해야 할지 잘 모르고 있었지요. 이인화씨의 이 소설은 그런 갈증을 조금은 풀어준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인물이나 어떤 기사가 엄청난 작품을 만들어 줄 수도 있지요. 듀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도 어느 신문기사에서 모티브를 잡았다고 그러더군요.
    ┗ 러시아황녀 08.11.10. 13:05
    동양사상에 관심을 갖다 보면 주자학을 건너 뛸 수는 없지요. 저도 한 때는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있는데, 우리 할아버지가 한학자이시라 주자학에 깊으셔서 당신이 돌아가실 날을 미리 잡고 며느리에게 술을 담그고 콩나물을 길르라고..어느 자식이 부모님 상을 위해 술을 담겠습니까 그랬더니 호통을 치시더라고..먼곳에사는 막내고모가 애기를 업고 달려오니 “**아 네가 아버지 살아서 얼굴 한번 더 보고자 왔느냐 너 때문에 사흘을 더 미루어야겠다” 이외수씨의 벽오금학도 같은 이야기지만 사실입니다. 제 사주에 물이 귀하다고 이름에 삼수변을 보태어 지어주셨지요..하지만 제 결론은 “백상이 불여일심”입니다.
    ┗ 러시아황녀 08.11.17. 10:13
    백가지 좋은 상을 가져도 한 번의 마음씀만 못하다는 것은 올바른 심상이 우주를 움직이는 최소 단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재물과 사람을 탐하는 뜻에도 선한 이유가 배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불가에서 말하는 시절인연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역사와 정치 정치와 역사 두루 어려운 문제입니다..
    ┗ 旅인 08.11.10. 16:59
    관상이 골상을 넘지 못하고 골상이 심상을 넘지 못한다는… 아무튼 덕이 크신 할아버지 슬하에서 좋은 것을 많이 배우셨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요즘에서야 천자문을 들여다 보고 논어를 읽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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