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황토구미로 가는 길

울릉도 일주도로를 마무리할 마지막 터널은 금년에 뚫렸다. 터널 내부공사 등을 끝낸 내년(2018년)부터 통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1962년에 기본계획을 세우고 1976년 공사에 들어갔으니 조그만 섬에 일주도로 하나 세우는데, 거의 일갑자에 가까운 공력을 들인 셈이다.

2011년 여름, 지방 소도시의 지점장으로 발령이 난, 고등학교(1학년 2반은 아님)와 대학의 같은 과 동기인 친구를 찾아갔다. 저녁을 먹고 관사로 돌아가자, 친구는 울릉도 태하 것이라며 오징어를 꺼내왔다.

“작년에 고등학교 동창들이 울릉도에 갔잖아?”
“으응, 동규가 ‘의형제’ 흥행에 성공한 기념으로 동창들 데리고 갔던 그 여행…?”

친구는 그때 태하의 덕장에서 먹었던 오징어의 맛에 반해서 그 후로 태하의 오징어를 주문해서 먹는다고 했고, 동규과 함께 갔던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내가 갔던 1983년 여름, 태하에는 오징어 덕장은 없었다.

“예전에 내가 갔을 땐 오징어 말리는 것을 볼 수 없었는데…?”
“울릉군청소재지가 본래는 태하였는데, 왜 도동으로 옮겨갔는지 알아?”
“왜 옮겼는데?”
“손바닥 만 하지만 농사지을 땅도 있고, 뭍에서도 가까와 군청소재지로 최적이지만, 그 쪽 바다는 바람이 심하데. 농사 만으로는 입에 풀칠을 할 수 없고, 고기를 잡아야 하는데, 태하에서는 바람 때문에 안됐던 것이지. 그래서 바람이 잔잔한 도동과 저동으로 이주했고, 밤이면 집어등을 켜고 오징어나마 잡을 수 있었지. 니가 갔을 때는 태하까지 도로가 없었으니 오징어 말리기 좋은 바람이 있어도 덕장을 낼 수가 없었을 테지.”

술에 취했는지 나는 동규와 함께 보냈던 고등학교 시절과 큰황토구미에서 있었던 그 전설같은 이야기를 지껄이고 있었고, 녀석에게 울릉도에서 동창들과 함께 했었던 이야기를 묻고 또 물었다. 친구의 이야기 또한 술에 취해서 횡설수설로 변했다.

그 날밤도 태하등대는 등질 섬백광으로 25초에 1섬광을 주변 50Km 바다 위에 뿌려댐으로 지나가는 선박들에게 항로를 표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울릉도 기점 90Km 거리에 있는 독도까지 닿기에는 아득하여, 빛은 마침내 어둠 속으로 스몄고, 결국 나도 친구도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말이야… 울릉도에선 재미있었어?

20171217 추가함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truth 09.01.02. 03:18
    아..결국엔 그날수만큼은 채웟어야햇던거군요..그녀와였건 도동에 묶였건요..^^ 잘 읽었습니다.
    ┗ 旅인 09.01.03. 04:50
    ….. 포항으로 가는 배가 얼마나 지겨웠던지…. 포항에서 청송 주왕산으로 갔다가 또 폭우가 내려서 대구로 가는 길이 유실되어 가는 것을 보며, 서울로 올라갈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기도 했습니다.

    유리알 유희 09.01.02. 23:32
    어차피 기항지는 없군요. 배회할 거라면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던져 봅니다. 이런 배회라면 해 볼 만하다고, 닻을 들고 싶어집니다. 과거의 경험을 들려 주는 듯, 자연스러운 흐름속에서 메세지를 던져 주는 소설, 즐감입니다.
    ┗ 旅인 09.01.03. 04:48
    이제 저 태하라는 곳도 도동과 저동으로 길이 뚫려 이제는 저렇게 고립된 곳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어짜피 인간에게는 지금이 있던지 아니면 과거와 미래 밖에 없으니까, 어디론가 가야겠죠?

    다리우스 09.01.02. 10:10
    잘 읽을게요 여인님^^
    ┗ 旅인 09.01.03. 04:45
    예~

    자유인 09.01.02. 23:37
    우리는 잠시 방황하지만,마지막 살고자 하는 삶의 모습에 조금씩 다가가는..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이키루”주인공이 된듯 읽습니다.^^
    ┗ 旅인 09.01.03. 04:45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시나 보네요? 이키루라는 작품을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니면 보았으면서도 기억못할 수도…

    라비에벨 09.01.03. 09:50
    지금 삶의 공간이 태하와 흡사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인님은 혼자서도 잘해요 짝짝^^
    ┗ 旅인 09.01.03. 21:54
    여행이요?
    ┗ 라비에벨 09.01.05. 16:32
    네^^여행… 뿐만 아니라 무슨일이든 혼자서 주도면밀하게 잘 하실듯요^^
    ┗ 旅인 09.01.05. 19:32
    혼자 노는 것은 잘합니다. 한데 불행하게도 함께 노는 것 잘못합니다.ㅜㅜ

    산골아이 09.01.12. 06:13
    주인공이 어디로 여행을 떠날지 궁금하지만… 에고, 눈꺼풀이 자꾸 감겨서 자고 일어나서 읽어야겠네요.
    ┗ 산골아이 09.01.12. 20:57
    간절한 여자의 눈길을 뿌리치고 오른 길목에서 발이 묶이셨군요.
    ┗ 旅인 09.01.12. 22:47
    그러게 말입니다. 그 좁은 도통 바닥을 며칠동안 할 일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정말 답답하더군요.

    엘프 09.06.20. 17:02
    나는 여자를 사랑하게 될 것임을 직감했다. 에서 왠지 웃음이 푹~ 터졌습니다.^^
    ┗ 旅인 09.06.23. 14:29
    그땐 그랬습니다. 사랑하는게 뭐 죈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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