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지혜에 대한 말씀

【이 세상을 초월하는 지혜에 대한 말씀】

<이 글은 왕사성의 영취산에서 비구와 보살들과 함께 머무시던 어느 날, 부처님이 깊은 명상에 드셨을 때, 깨달음을 얻은 관자재(아발로키테스바라)보살과 장로 사리푸트라(사리자) 사이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觀自在菩薩行深般若波羅蜜多時照見五蘊皆空度一切苦厄

아발로키테스바라보살이 지혜의 길에 들어 자신의 존재와 의식 모두가 결국 수냐임을 깨닫고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에서 벗어났다.

Om Homage to the Perfection of Wisdom the Lovely, the Holy ! Avalokita, the Holy Lord and Bodhisattva, was moving in the deep course of the Wisdom which has gone beyond. He looked down from on high, He beheld but five heaps, and He saw that in their own-being they were empty.

舍利子色不異空空不異色

『사리푸트라여! 너는 아느냐? 이 세상을 뒤덮고 있는 다양한 현상들이 결코 수냐(空)와 다르지 아니하며, 수냐 또한 그 다양한 현상과 다른 것이 아니다.』

Here, O Sariputra, form is emptiness and the very emptiness is form ;

色卽是空空卽是色受想行識亦復如是

『삼라만상이 바로 수냐이며 수냐는 곧 자연인 것을…. 또한 너의 모든 생각이나 느낌, 심지어는 네가 너라고 인식하는 것마저 수냐의 숨결에 잇닿아 있음을….』

emptiness does not differ from form, form does not differ from emptiness, whatever is emptiness, that is form, the same is true of feelings, perceptions, impulses, and consciousness.

舍利子是諸法空相

『나의 사랑하는 사리푸트라여! 이것이 바로 삼라만상 속에 파동치는 수냐의 모습이다.』

Here, O Sariputra, all darmas are marked with emptiness ;

不生不滅不垢不淨不增不減

『수냐타 – 너희가 신이라고 혹은 절대존재라고 부르는 것은 시간(不生不滅)도 그 속에 존재의 흐름(不垢不淨)도 공간(不增不減)마저 없다.』

they are not produced or stopped, not defiled or immaculate, not deficient or complete.

是故空中無色無受想行識無眼耳鼻舌身意無色聲香味觸法無眼界乃至無意識界

『이런 까닭에 수냐의 세계에는 있음도, 의식의 모든 활동과 자의식, 모든 감각기관과 뇌수, 빛과 소리며 향기 – 이 모든 것을 이룰 현상세계의 변화가 없다. 보고 의식할 경계마저 무너져버렸다.』

Therefore, O Sariputra, in emptiness there is no form nor feeling, nor perception, nor impulse, nor consciousness ; No eye, ear, nose, tongue, body, mind ; No forms, sounds, smells, tastes, touchables or objects of mind ; No sight-organ element, and so forth, until we come to ;No mind-consciousness element ;

無無明亦無無明盡乃至無老死亦無老死盡無苦集滅道無智亦無得

『이러할 진데 깊은 어리석음과 그로부터 벗어남, 생사를 초월하고 괴로움과 번뇌를 제거하기 위한 수행과 깨달음 또한 있을 수 없다. 지혜도, 무엇을 얻는다는 것 역시 없다.』

There is no ignorance, no extinction of ignorance, and so forth, until we come to ; There is no decay and death, no extinction of decay and death. There is no suffering, no origination, no stopping, no path. There is no cognition, no attainment and no non-attainment.

以無所得故菩提薩陀依般若波羅蜜多故心無罣碍

『이렇듯 본래 얻을 바가 하나도 없는 까닭에 보살들은 지혜의 길에 들어 마음에 걸림이 없다.』

therefore, O Sariputra, it is because of his non-attainmentness that a Bodhisattva, through having relied on the Perfection of Wisdom, dwells without thought-coverings.

無罣碍故無有恐怖遠離顚倒夢想究竟涅槃

『마음에 걸림이 없으면 마음이 없는 것. 어찌 두려움이며 놀람이 있을 것인가. 단지 얽히고 뒤집혀진 거짓된 망상을 떠나 궁극의 세계, 니르바나에 이르를 뿐!』

In the absence of thought-coverings he has not been made to tremble, he has overcome what can upset, and in the end he attains to Nirvana.

三世諸佛依般若波羅蜜多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知般若波羅蜜多

『온갖 세월 속에 깨달음을 얻었고 얻을 위대한 성취자들 역시 이 가없는 지혜를 의지한 까닭에 끊임없이 일렁이는 수냐의 파동 속으로 흘러들고 드디어 지혜의 길에 돌아든다.』

All those who appear as Buddhas in the three periods of time fully awake to the utmost, right and perfect Enlightenment because they have relied on the Perfection of Wisdom.

是大神呪是大明呪是無上呪是無等等呪

『자! 이제 노래하려네. 이 노래는 신의 은총이 넘치고 빛으로 가득하리라. 이보다 더한 곡조도 비교될 노래도 없으리니….』

Therefore one should know the Prajnaparamita as the great spell, the spell of great knowledge, the utmost spell, the unequalled spell,

能除一切苦眞實不虛故說般若波羅蜜多呪卽說呪曰

『이 노래는 능히 괴로움을 여의게 하며, 그 에너지가 가득차 충만하여 프라즈나파라미타의 노래일래라.』

allayer of all suffering, in truth — for what could go wrong ? By the Prajnaparamita has this spell been delivered. It runs like this :

揭諦揭諦波羅揭諦波羅僧揭諦菩提沙婆訶

『가자. 자 이제 가자. 이 천차만별 현상세계를 넘어…. 그 니르바나로 온갖 것 다가고 말면, 오! 깨달음이여, 이루어지이다.』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Gone, gone, gone beyond, gone altogether beyond, O what an awakening, all-hail ! –) This completes the Heart of perfect Wisdom.

<이 노래가 끝나자 부처님께서 명상에서 깨어나셔서 관자재 보살의 말씀이 옳다 하시니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비구 장로 보살들이 함께 기뻐했다고 합니다.>

<THE HEART SUTRA: Translated by E. Conze>

내다봐(=旅인) 광역

(ver.20090407)

7 thoughts on “반야심경: 지혜에 대한 말씀”

  1. All those who appear as Buddhas in the three peiods of time fully awake to the utmost, right and perfect Enlightment because they have relied on the Perfection of Wisdom.

    영문 번역본을 읽고나서야 이말이
    성경의 ‘진리가 빛가운데 있다’는 말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와아~ ^^

    저는 enlightment라는 단어가 좋아요. en.light.ment.
    그런데 이것이 해석될때 깨달음이 아니라,
    (서구적) 계몽이 되어버리면 확! 돌아버리겠어요. ^^;

    1. 종교가 갈린다는 것은, 그 종교를 관통하는 진리의 차이라기 보다는 그 종교가 만들어진 풍토 속에서 사용하는 술어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글 중 空(Sunya)와 空性(Sunyata)를 神과 신성으로 대체하여 읽어도 의미상 차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무상정편지)를 enlightment로 번역할 수 밖에 없었던 Contz의 답답함이 이해됩니다.

  2. 오늘 불교에 관한 사이트들을 뒤적거리면서 가물거리던 자료들을 다시 되새겨 보기도 하고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 보았는데 여인님의 포스팅까지 건너오게 됐네요.
    반야심경 들으면서 여인님 글 읽는 지금 이 시간이 정말 즐겁네요. 🙂

    참고로 전 천주교예요. ^^;;

    그 둘간 교리는 아무리 달라도 그 사상의 핵심은 욕망으로 부터의 자유같습니다.
    불교는 그 욕망으로 부터 기인한 고를 삶의 연기성을 깨달음으로써 업을 정화 하고자 하는것이고 기독교나 천주교는 더 크고 절대적인 존재에 자신의 원죄와 고통을 의탁하는것이 아닐까 하네요.

    1. 이 글을 번역하면서 제일 신경을 썼던 점은 도식적인 불교용어로 부터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관세음보살에서부터 핵심단어인 공, 그리고 주문까지 실존적 느낌이 드는 고유명사로, 현대어로, 그리고 공과 같은 고착된 관념을 깨트리기 위하여 수냐라는 범어로 바꾸고 나름대로 수냐의 개념을 세우기 위하여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해석문의 ()부분이나 보살이라는 단어를 빼버리면 전혀 불교의 색채를 느낄 수 없게 번역(광역)했습니다.
      이 글에서 수냐를 神이라는 언어로 대체한다면, 기독교와 같이 현상계 밖에 존재하는 神과 같지는 않겠지만, 스피노자의 범신론 – 즉 실체(神)과 양태(사람, 식물, 동물, 빛, 자연 등등)- 과 동일합니다. 물론 불교가 무신교이지만 브라만교의 범신론적 종교관 속에서 태어난 종교(학설)이라는 점 때문일 것입니다.
      일체의 형이상학적 언설을 벗어나겠다고 불교가 시작되었지만, 결국 궁극적인 지점에서는 空이라는 형이상학적 문제에 봉착되고 마는 것은 종교가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근원을 추구하는 숙명 때문이겠지요.
      이런 점에서 만교가 회통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3. 旅인 09.04.07. 16:30
    전에 한번 말씀드린 바 있는 반야심경에 대한 광역입니다. 좀더 연구하고 완벽한 번역이 될 수 있게 하여야 하는데 역량 부족으로 이 수준에서 올립니다.

    그라시아 09.04.08. 08:52
    是大神呪是大明呪是無上呪是無等等呪 『자! 이제 노래하려네. 이 노래는 신의 은총이 넘치고 빛으로 가득하리라. 이보다 더한 곡조도 비교될 노래도 없으리니….』
    ┗ 旅인 09.04.08. 17:48
    이것이 광역이 지닌 번역의 묘용입니다.
    ┗ 다리우스 09.04.16. 23:20
    아, 반야 광역본, 공 근처에서 해석할 길이 멈추었었는데, 다시 잘 읽어 보겠습니다.^^
    ┗ 旅인 09.04.17. 13:09
    空病에 들면 고칠 약이 없다고 하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 다리우스 09.05.10. 16:54
    헉 공병? 아 그쿤요,,,근데 공이란게 뭐죠 대체? 사부님~
    ┗ 旅인 09.05.10. 18:12
    공이란 걸 알면 정말 사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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