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구경하기

그림 좋아하세요?

저도 좋아합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국전(대한민국 미술대전)을 시작하면 구경을 가곤 했습니다.

국전이 시작되면 전시회가 끝날 무렵까지 기다립니다.

국전 시작 초반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줄에 끼어서 흘러가다 보면 무엇을 보았는 지 조차 모를 정도이기 때문에, 관람자가 줄어든 막판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야 제대로 그림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때의 전시장은 경복궁에 있었고 관람 후 호젓한 궁궐을 거니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그림 감상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남들보다 오래 그림을 보면 뭔가 보일 것이고, 관록이 쌓일 것이라는 느낌 밖에 없었죠.

때론 어떤 그림에 매료되어 한동안 그림 앞에 입을 벌리고 서 있거나, 전람회장을 한 바퀴 돌고 와 다시 그 그림 앞에 서곤 했죠.

대학 2년 때인가 기억합니다.

가을이 왔고 미전(국전에서 미전으로 바뀜)이 열렸고 거의 끝나 갈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갈 여자친구가 없었습니다.

혼자라도 보러 가기 위하여 집을 나서는 데 공터에서 옆집 초등학생이 놀고 있었습니다. 녀석은 나에게 아저씨라는 말 대신 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날도 나에게 “안녕하세요, 형”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제 머리에 불쑥 저 녀석과 함께 구경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옆집에 아드님 미전 구경시켜준다고 하니까 고맙다는 말과 함께 미전 입장료 등등을 챙겨주데요.

무척 사양했지만 아이스크림이며 저녁 사 먹이고 하면 받은 금액을 충분히 벌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공터에서 놀던 녀석에게 그림 보러 가자 하니까, 녀석의 친구가 아저씨 저도 데려가요 하더라고요.

“오냐, 가자. 너희 집에 말씀 드려라” 했더니 오 분도 안되어 집에 갔다가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꼬마 두 녀석과 멍청한 대학생 한 명이 덕수궁의 현대미술관(당시에는 덕수궁 석조전이었음)을 들어섰습니다.

녀석들의 첫 마디가 이 집 끝내준다 였습니다.

너희들 그림 구경한 적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신만만하게 아니요 하더군요.

이 녀석들을 데리고 한 시간만 돌아다니면 분명히 형 집에 가자는 이야기가 나올 테고 한 시간이면 몇 작품 구경도 못할 것 같아서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초등학교 애들도 어른과 같은 미적 감각이 있는 가를 실험하기로 했습니다.

회화라는 장르가 생활예술의 클래식에 해당한다면 가장 복잡한 미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매체가 되고 거기에서 공통된 미적 경험이 가능하다면 아름다움도 인간 인식에 있어 보편성을 지닐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그림을 대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보편성을 지니며, 내가 체득하는 미적 아름다움은 전혀 인공적이지도, 고상한 척 하는 것이 아니리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래서 천진한 아이들의 통한 직감적인 방식의 익스페리먼트를 시도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홀에 들어서자 마자 그림을 한 바퀴 돌아다 봐라. 꼬리표 있는 그림을 제외하고서 제일 멋있다고 생각되는 그림을 골라라.”

홀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천천히 그림 하나를 골랐습니다.

녀석들은 그림 앞을 달리듯이 돌아다니더니 내게로 와서 저것이요 하고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두 녀석이 엇갈린 그림을 골랐습니다.

그러나 그 중 한 놈은 나와 같은 그림을 골랐습니다. 그래서 틀린 놈에게 두 그림을 비교해 보게 했습니다. 그 녀석은 한동안 비교를 하더니 그래도 자기가 고른 그림이 났다고 하더군요.

내가 보기에도 딱히 어떤 그림이 나은 지를 비교하기에는 애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녀석에게 물었더니 어떻게 보면 친구가 고른 그림이 괜찮은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꼬리표(대상 등의 꼬리표)가 달린 그림에 대해서 어떻게 보았느냐고 했더니, 확실히 그림이 자기들 눈에도 좋아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홀을 돌아다니면서 좋은 그림 찾기를 계속하였고 일치하는 확률은 60% 이상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그림 본다는 것에 대한 재미에 빠져들었고 그림에 대하여 하나씩 묻기 시작했습니다.

질문의 대부분은 그리는 테크닉 쪽에 치중되었고 나도 그 쪽은 잘 모르지만 성의를 다해서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녀석들은 화면에 반사되는 빛의 각도가 이상하면 그림에 다가가 붓으로 그렸는 지, 아니면 나이프로 그렸는 지를 파악했습니다. 캔버스 자체가 린넨 천으로 되었는 지, 아니면 화가가 자직한 화폭에 그렸는 지, 물감에 모래를 섞어 투박한 질감을 만들어 내는 지를 알게 되었고, 그림 자체가 단순한 화가의 기술에 의해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림 밑바탕에 과학적인 창조 작업과 작가 개인의 실험 정신이 깃들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화작품이 끝나고 수채화를 보게 되었을 때, 녀석들은 “우와” 하고 소리쳤습니다. 내가 “왜 그래?” 하고 묻자 시원하고 투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태까지 유화를 보면서 그림을 잘 그렸다고 생각했는 데 수채화를 보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답이었습니다. 어쩌면 자신들의 미술시간에 그리던 수채화 물감의 번짐으로 결국 더럽고 난잡해지고야 마는 그림과 판이하다는 것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다시 물었습니다. 너희들이 돈이 있어서 그림을 사다가 집에 걸어놓는다면 무엇을 사겠니? 녀석들은 한참 생각하더니 더듬거리며 유화를 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채화는 보기는 좋은 데 약한 것 같고 불안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녀석들은 이미 미적 소유개념 속에 시간관념과 견고성 자체가 함유되어 있음 또한 선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동양화실에 들어가서 보니 고등학교 은사님의 그림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서양화 전공으로 들어갔다가 집에 돈이 없어 동양화로 전공을 바꿨다고 하는 데 제가 알기로는 입선을 몇 번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그림보다 우리는 옆에 읍 정도의 마을을 조감도의 각도로 그린 그림에 눈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세선(細線)으로 그린 그림은 오뉴월의 햇빛에 싱그러우면서도 마을 전체가 이글거리며 타 들어가면서 변각구도로 아스라히 녹아 들고 있었습니다.

태양은 아마 관람자의 등 뒤에서 비치고 있었고 아이들도 하늘까지 잇닿는 둣한 골목길을 굴렁쇠라도 굴리며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나는 오후 네 시의 나른한 동네를 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잠에서 깬 듯한 느낌을 갖고 물었습니다.

“몇 시?”

아이들은 “네 시” 라고 말했습니다.

놈들은 이미 그림을 보는 데 달인의 경지에 이른 듯 했습니다. 먹의 퍼짐이 너무 멋있는 것 같다고 했고 장판지 위에 화선지를 올려 기포로 문양을 만든 것을 보고 저런 아이디어가 얼마나 멋진 작품을 만드느냐고 까지 말했습니다.

우리의 감상이 가속도가 붙으며 한 쌍의 연인이 우리를 따라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작품이 어떻다 저떻다 하면서 잔뜩 폼을 잡고 보았을 것 입니다.

그런데 멍청한 놈 하나와 애 둘이 나타났고, 이상한 방식으로 그림을 보는 것에 대해서 흥미를 갖고 따라다니다가 우리의 감상하는 방식이 가장 원초적이며 옳다는 느낌을 받았는 지 나중에는 드러내 놓고 따라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유화실로 들어섰습니다.

거기에는 정물화가 유난히 많았습니다. 정물화를 보면서 시간에 대한 형상화가 가능한 가를 알고 싶었습니다.

유화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있어 짧게는 이삼 일 길게는 수개월을 소모한다면 그림에 과연 한 시점이 맺힐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풍경화라면 시간을 측정하기가 용이합니다만 바깥 풍경이 차단된 가구 등의 정물화에서는 시간에 대한 정보는 제한되어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몇 월인 것 같니?”
“가을인 데 11월 같아요.”

내 느낌과 같았습니다.

“그러면 몇 시?”
“오후 두 시에서 세 시쯤…?”

두 아이들의 이야기는 시간대에서는 차이가 있었지만 오차는 한 두 시간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저와 녀석들 모두 정물화 속에서 시간을 밝혀낸다는 것에 대해서 마치 보물을 찾아낸 것 마냥 흥분했습니다.

“형! 이것은 요술이에요. 어떻게 화가는 시간까지 그려내지요?” 하고 감탄했습니다.

우리가 미전을 끝마칠 무렵에는 우리 뒤로 많은 사람들이 따라붙었고 아이들은 완전히 그림에 몰입하여 자신들 나름대로 그림을 평하고 붓의 터치며 매체 등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기에 나는 천천히 녀석들을 따라다니며 묻는 말에 답이나 하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따라다니는 사람이 많자 자신들도 챙피했는 지 자리를 피했으면 하는 눈치였습니다.

저는 녀석들을 데리고 매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커피를 마신 후 근대화를 보러 갔습니다. 그러나 세시간 여의 관람이 녀석들에게 무리였음을 알았고 대충 그림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녀석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 그림 그리기 좋아하니?”
“아니요.”
“앞으로는?”
“조금 재미있어질 것 같아요.”
“오늘 재미있었니?”
“네!”
“다음에 또 갈거니?”
“아니요.”
“왜?”
“피곤해요. 그리고 엄마 아빠가 안 간다고 할 거예요.”

제가 말했습니다.

“이 형도 그림은 잘못 그려. 그렇지만 그림은 많이 봤지. 그런데 화가들이 내가 못본 것을 자신의 그림에서 보여주지. 우람한 느릅나무의 그림자. 머나먼 지평선, 색깔들의 노래 등을…”

저는 아이들과 함께 전람회에 감으로써 그림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 지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여자친구와 함께 갔었다면 나도 잘 모르는 현대화의 사조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것이며, 왜 이 작품이 대상을 받았으며, 그림의 미적 하모니는 무엇이며, 내 자신도 알지 못하는 것을 잔뜩 늘어놓으면서 진짜로 작품과 맞대면을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후 여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왔고 함께 구경을 갔지만 녀석들과 함께 한 그런 재미있는 감상이 못되었고 덕수궁 벤치에 앉아 가을날의 시원한 바람을 즐기는 것이 훨씬 나았습니다.

오후의 벤치에 앉아 대한문 쪽으로 눈을 주면 건물과 나무들 모두에 오후의 누런 햇빛이 어른거릴 때 넓은 궁성의 안뜰에 사람들이 기나긴 그림자를 밟으며 가을 빛을 맞이하고 성공회의 붉은 첨탑과 시청의 녹슨 지붕 위로 흐르던 푸른 하늘이 백남빌딩과 플라자호텔에 부딪혀 을지로와 남산으로 날렵하게 빠져나가면 서울의 가을이란 참으로 볼 만한 것입니다.

This Post Has 8 Comments

  1. 쏘울

    백지처럼 새하얀 어린이의 눈으로 그림 감상법을 깨우치는 방법이군요.
    나이들면서 생겨나는 고정관념 또는 선입견, 나름대로의 자아 의식을 제외한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

    글을 쓰셨던 원래의 날짜를 눈 여겨 보지 않으면 안되는 시공을 넘나드는 포스팅이라 글을 읽을때 약간의 주의(??)를 기울여야겠네요. ^_^

    1. 旅인

      예전에 참여했다가 탈퇴했던 카페에 가서 다시 업어온 글들입니다. 그래서 날짜가 오래되었습니다.

  2. lamp; 은

    이 글 읽는내내 마음이 산뜻해지고 좋았어요. ^^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투명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음 얼마나 좋을까요? ^^

    1. 旅인

      요즘 어린애들은 힘든 것 같습니다. 딸내미가 초등학교 땐가 중학교 때 딸아이를 데리고 과천국립미술관에 간 적이 있는데, 아이들이 그림은 안보고 그림 밑에 달린 태그에 적힌 글을 베껴쓴다고 벽에 노우트를 대고 까맣게 쓰고 있더군요. 그러니 현장학습이나 체험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ㅊㅊ

  3. luna

    좋은 안내자를 만난 그 친구들이 마구마구 부럽군요. (저보다 한 서너살 많겠군요. ^^)
    그들이 평생 좋은 추억으로 간직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조금 재미있어질 것 같아요.”의 울림이 큽니다.

    1. 旅인

      아닙니다. 제가 그 날 아이들과 함께 낮은 눈으로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얻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아들놈이 나무 그림을 못그리겠다고 해서 “나무는 어떻게 자라니?”하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나무는 뿌리에서 자라요.” “그럼 뿌리에서 가지로 그려야지 가지에서 뿌리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고 하자. 그렇게 그려보더니 “이렇게 그리니까 쉬워요.”하더니 다음번 그림 숙제 때도 “또 어떻게 그리는지 모르겠어요.” 하더군요.

  4. 클리티에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저도 모르게 여인님과 아이들이 상상이 되어 미소를 짓게 됩니다.

    전 여인님처럼 그림은 잘 모르지만 어릴때부터 특이하게 누드그림을 좋아했어요.
    중학교 때인가.. 피카소가 그린 웅크리고 있는 여인의 누드가 내 맘을 끌어 액자에 넣어
    내 방에 한동안 두었었어요. 그 여인에게 사춘기의 내 마음이 투영된 것이었겠죠.

    1. 旅인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직까지 끝없는 감탄과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은 아래의 링크에 있는 토르소입니다.

      http://fs.textcube.com/blog/1/16129/attach/XSnvZWhGxz.jpg

      토르소가 아닌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면 이처럼 저를 매료시키지는 못했을 겁니다.

      돌로 회귀하는 과정에 놓여있으면서도, 그 예술적 열정과 양감이 돌을 마치 숨결이 깃든 생명체로 복귀시키는 듯한 저 작품에 저는 9살때부터 줄곧 매료되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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