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

法性偈

法性圓融無二相  諸法不動本來寂
無名無相絶一切  證智所知非餘境
眞性甚深極微妙  不守自性隨緣成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九世十世互相卽  仍不雜亂隔別成
初發心時便正覺  生死涅槃常共和
理事冥然無分別  十佛普賢大人境
能仁海印三昧中  繁出如意不思議

雨寶益生滿虛空  衆生隨器得利益
是故行者還本際  叵息妄想必不得
無緣善巧捉如意  歸家隨分得資糧
以陀羅尼無盡寶  莊嚴法界寬寶殿
窮坐實際中道床  舊來不動名爲佛

법성게는 이 卍曲에 따라 화엄일승법계도에 圖詩의 형태로 배치되어 있으며, 7言 30句의 게송으로 법계연기사상의 요체를 서술하였는데, 중앙에서부터 시작하여 54번 굴절시킨 후 다시 중앙에서 끝나는 의도된 비대칭의 도형이 되도록 하였다.

우주 만사의 본질에 대한 노래 (法性偈)

수냐는 모든 것을 포괄하나니 천차만별 현상세계 또한 고요일 뿐
개념과 형태가 없으니 경험할 수 있어도 나(我)로서 다가갈 수 없어라
아얄라의 바다는 깊고 고요하여 모든 오고 감을 다 비추이다
인드라의 그물에 빛이 떨어지니 한 구슬에 모든 구슬의 빛이 어리고
티끌 하나가 온 우주를 담았고 우주의 모든 것에 또 우주가 포개지다.

끝없는 세월이 이 마음이며 다시 가 없는 시간이 되노니
무수한 세상이 영원으로 포개져도 본질은 물들지 아니하고
마음이 열리자 곧 큰 지혜며, 삶과 죽음이 니르바나의 바다에서 춤추니
진리와 현상이 아득하여 나뉘어지지 않고 모든 선지자들이 그에 들어
그윽한 삼매의 바다 가운데 온갖 차별이 무너지고 끝없는 자유가 오다.

말씀은 우주에 가득하나니 크고 작은 그릇에 은혜는 넘쳐나도다
나그네여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그릇된 생각에서 떠나가야 하리라.
그 손길은 자재로워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적은 그릇에 만족케 하나니
말씀 속의 다함없는 보배로 온 우주와 그 殿을 위대하게 하여
생성과 소멸이 사라진 그 곳에 앉았으니 처음부터 부처였어라.

<旅인 狂譯>

狂譯에 즈음하여…

나의 번역은 본시 狂譯이다. 왕필이 득의망상(得意忘象)이라고 하여 본 뜻을 얻으면 그 상을 여읜다라고 참 뜻을 얻었기에 광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 글자도 알지 못하겠기에 미친 놈 주절거리듯 하다 하여 광역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본의는 커녕 그 형태조차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본의를 안다면 여래와 조사가 나와 같다는 이야기가 될 터인즉 만고의 스승을 모독하는 그런 참람함을 차마 범할 수는 없다.

그러나 광역이라는 번역의 방법을 견지하고 싶다. 알지도 못하는 번역을 가지고 전전긍긍하느니 보다 그럴 듯해 보이는 것도 괜찮고 죽어있는 번역보다 그나마 피라도 통할 것 같은 어리석은 글이 나을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광역은 반야심경의 번역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이번이 두번째이며, 포스트에 게시된 이 글은 세월이 가면서 부단히 갈고 닦여 어느 때인가는 좀더 나은 번역이 되리라는 기대를 해 본다.

나는 본시 불자가 아니어서 해석에 있어 불교의 틀을 벗어날 수도 있는 바, 불자들이라면 해량해주실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광역에 붙은 주절거림은 주절거림으로 받아주시기를…

위의 법계도는 의상이 중국에 유학하여 중국 화엄종 조사 지엄(智儼)에게 수학할 때인 668년에 창작되었는데, 화엄의 진리에 대하여 서술한 책을 불사른 후 타지 않고 남은 210개의 글자를 가지고 게송을 짓고 법계도를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大方廣佛華嚴經>을 풀이하면 ‘부처님이 꽃으로 장엄하고 크고, 넓고, 평등한 것을 깨우치는 경’ 또는 ‘크고 광대하게 부처님이 꽃으로 장엄하는 경’이 되며, 범어 이름은 붓다바탐사카 나마 마하바이풀랴 수트라(Buddha vatamsaka-nama- maha vaipulya-sutra)이다.

20050525 04:00

참고 : 또 다른 해석들

둥글고 묘한 법, 참 진리의 모습이여 고요할 뿐 동작없는 삼라의 바탕이여
이름도 꼴도 없고 萬 일체가 다 없으니 아는 이가 성인이고 한 범부는 왜 모르나
묘하고 깊고 깊은 그 묘한 진성이여 제 자리에서 벗어난 듯 온 세계를 나툼이여
그 하나에 모두 있고 많은 데 하나 있어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개체이니
한낱티끌 작은 속에 온 세계를 머금었고 낱낱티의 티끌마다 온 우주가 다 들었네

한도없는 긴 시간이 한 생각의 일념이고 일 찰라의 한 생각이 무량한 듯 긴 겁이니
삼세와 구세십세 엉킨듯이 한덩인듯 그러하나 따로따로 뚜렷한 萬相이여
첫 발심했을 때가 부처님을 이룰 때고 生死苦와 열반경계 본 바탕이 한 몸이니
있는 듯이 理事 분별 흔연히도 없는 그 곳 노사나불 보현대원 부처님의 경계로세
부처님이 해인삼매 그 속에서 나투며 쏟아진듯 여의진주 그 안속의 부사의여

滿 허공을 메워오는 정법진언 거룩했네 제 나름의 중생들도 온갖 願을 얻게 하네
한 행자가 고향으로 깨달아서 돌아가면 번뇌망상 안쉴려도 안쉴 길이 가이 없네
무공연의 방편으로 如意寶를 찾았으니 자기들의 생각대로 법제상이 풍족하네
끝도 없이 쓰고쓰는 다라니의 無盡寶로 불국토의 법왕궁을 여실히도 꾸미소서
中道의 해탈좌에 편안히도 앉았으니 옛날부터 動함없이 그 이름이 부처일세

한글해석 영인스님

법성은 원융하여 두 가지 모습이 없고, 모든 법은 움직이지 않아 본래 고요하며,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어 일체를 끊어버렸으니, 증득한 지혜로 알 바이며 나머지의 경계가 아니다.
참된 성품은 심히 깊고 미묘하여, 스스로의 성품을 지키지 않고 인연에 따라 이루나니,
하나 가운데 일체가 있고 여럿 가운데 하나가 있으며, 하나가 곧 일체이고 여럿이 곧 하나이다.
하나의 작은 띠끌이 시방세계를 머금었고, 모든 띠끌 가운데도 또한 이와 같으며,

한량없는 먼 겁(시간)이 곧 한 생각이고, 한 생각하는 그때가 바로 한량없는 겁(시간)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시간 속의 세상이 서로 함께 있으나, 서로 섞이지 않고 각기 독자성을 갖는다.
처음 발심했을 때가 바로 정각을 이루는 순간이고, 생사와 열반이 항상 하나처럼 화합한다.
이치와 현상이 모호하여 분별할 수 없으니, 모든 부처님과 보현보살 같은 대인의 경지이다.
부처님(能仁)은 해인삼매 중에서, 뜻과 같이 불가사의한 경지에 드나들면서

보배로운 비로 허공을 가득 채워 중생을 이롭게 하니, 중생은 근기에 따라 이익을 얻는다.
이 까닭에 수행자가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면, 망상을 쉬지 않고는 반드시 불가능할 것이다.
인연에 걸림이 없는 신묘한 방편을 뜻대로 잡아, 분수에 따라 귀가할 때 쓸 재물과 양식으로 삼는다.
진리의 언어인 다라니의 다함없는 보배로써, 법계라는 실다운 보배궁전을 장엄하고,
마침내 참다운 고향의 중도라는 평상에 앉고보니,예로부터 움직인 적이 없었기에 부처님이라고 이름 한다.

한글해석 세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