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라는 터무니 없는

일이라는 것은, 특히 화이트 컬러에게 있어서, 일 자체보다 오히려 일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감당하는 일이다.

새벽같이 출근하고, 퇴근 때가 되어서야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가까스로 숨을 쉬게 된다. 그 긴 시간동안 자리에 묶여 상사의 눈치를 보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동료들에게 미소를 짓거나 때로는 굽신거리고, 혹은 상사로서 소리를 질러대야 한다. 심지어는 점심식사를 가서까지 자신이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을 강요당한다. 맛없는 식사보다, 점심시간 조차 꼴보기 싫은 작자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비위를 상하게 하는 것이다. 주어진 일이란 것도 갖가지 정신분열 1보고서나 품의서 작성은 결재라인 상에 있는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가진 상사들의 분열된 욕구와 욕망이라는 것을 충족시키거나 봉합시켜나가는 정신과적인 치료과정이다 을 봉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각종 전설과 신화 그리고 다양한 미신들 2어떠한 회사 조직이라도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회장 또는 사장이 어떤 말을 좋아하며, 예전에 누가 어떤 식으로 보고서를 만든 바람에 그만 사직서를 썼다, ‘할 계획이다’보다 ‘위계임’이라는 표현을 회장은 좋아한다 등의 전설과 터부들 로 가득하다.

특히 품의서란 것은 대체로 높은 사람이 하기 싫은 것을 하자고 하는 것이고, 보고서는 내가 잘못한 것을 그다지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높은 사람에게 설명하는 일이다.

이런 주변적이고 일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것들을 제거해 버리면 ‘일’은 더 이상 일이 아니게 된다. 그것은 ‘놀이’다. 심심하면 회사에 나가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혼자 고독하게 자신의 입 맛에 맞는 음식을 즐기고,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품의서나 보고서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절대 ‘일’이 아니다. 그것은 회사의 오너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일이란 것이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이란 이런 주변적이고 지저분한 것,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고 진행을 더디게 하는 잡다한 것들이 엉켜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일이란 지겨운 것이고, 이른바 페이퍼 워크라는 것이 쓸데없어 보이는 이유다.

하지만 일을 둘러싼 이와 같은 갈등들이 제거된다면 일도 사라지고 만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의 본질이란 것은 본래 없다. 상사들의 다양한 욕망, 사무실이라는 현장, 하루의 자유를 희생하고 멍청하게 책상에 앉아 있는 행위들이 얽히고 섥히면서 일이라는 것을 직조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산성이란 단지 열심히 하는 것으로 향상되지 않는다. 조직원들의 다양한 욕망의 방향을 가지런히 하고 조직 내의 갈등의 수위를 조절하는 것, 일 주변을 감싸고 도는 정치적인 알력들을 낮추어 일의 무게를 줄여나가는 것이 방향이다.

※ 일의 사전적 정의는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 또는 그 활동의 대상’이다.

2 thoughts on “일이라는 터무니 없는

  1. 적절한 대가를 받기위해 일정시간동안 몸이나 머리를 쓰는 활동….
    제가 일을 하는게 맞긴 맞나보네요
    하루 여덟시간 돈과 바꾸는 시간
    그 이상 의미 찾기에 손을 놓고있어요 ㅠㅠ
    슬프고도 아까운 시간인지
    그냥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것인지 모르겠습니다

    1. 이제야 읽습니다. 오랜 여행을 하다가 어제 돌아왔습니다. 지쳐서 어제는 아무 일도 못하고, 이제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익숙했던 것에 아직 서투른 것 같은 느낌도 있습니다.

      저도 선수님과 같은 생각을 직장생활 첫 삼년동안 내내 했습니다. 이 회사가 내 능력을 사겠다고 뽑아놓고 이따위 일이나 시키나? 삼년이 지나고 어느 날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품팔이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다가 십년이 지나고 이십년이 지나면서 목을 짤라버리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영혼마저 팔아먹지는 말자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삼십년이 지난 어떤 날, 사람에게 영혼같은 것이 있는가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혼마저 팔아먹은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생이란 정말로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이 계시던지 않계시던지, 인생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개의 삶에 의미가 있다면, 인간의 삶에도 의미가 있겠지만 말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어릴 때와 학교를 다닐 때까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몽상에 가까운 어떤 생각도 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의 세계에 살고 있었던 탓입니다. 직장에 들어가자 자유도 없고, 제 생각같은 것은 선배나 상사에게는 귀찮고 짜증나는 것일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타인의 생각에 제 생각을 맞춰야 했고, 인간 관계도 인위적이고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이런 것이 정말 제 삶이 되어버리더군요.

      그러는 과정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갖게 되고, 아이가 커서 학교도 가고 어른이 되어 회사에 다니고 합니다. 나의 삶이라는 것이 혹시 저들의 삶이 아니었을까 하는 반문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이라는 것은 재미가 없지만, 늘 일이 없는 나날들도 재미가 없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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