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짐에 대하여

내일에 기대를 갖지 않게 된 저녁은 헐겁다. 5층 깊이보다 더 까마득한 지하로 내려가 지하철을 타고 서울을 반바퀴 돌아 집으로 돌아온다. TV를 켜고 저녁을 먹는다. 앞으로 더 이상 나아질 것이 없는 현실. 조금씩 나빠질 것이다, 어느 하루, 어느 일주일 또는 어느 한달로는 눈치챌 수 없을 만큼, 아주 조금씩.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체념하듯 나빠진 상태를 받아들이게 된다.

쉰내나는 몸을 더 이상 거부하지 않는다. 삶의 일각이 무너진 채 햇볕에 바랜다. 마음의 빈 방이 또 늘어난다. 앞 날에 희망을 갖는 일은 이제 그만, 안녕! 지하철 계단은 아득하고, 친구를 새로 사귀는 일 따위는 없다. 조금씩 나는 희미해진다.

은행이 익는 노란 냄새가 나더니, 단풍이 들었다. 16번 입구에서 만초천(蔓草川)과 나란히 놓인 가로(街路) 위로 가을이 왔다. 아침 햇살이 들면, 나뭇잎들은 새벽의 안개와 습기를 말리며 더욱 붉어지거나 노랗다. 그런 아침을 맞이하면, 가난해진 나의 하루도 나쁠 것 없다는 생각이 든다. 호주머니가 비면 빌수록, 욕심 또한 비워야 한다. 누추한 마음은 차라리 편하다. 나눌 것이 줄어든 만큼 만남도 줄여야 한다. 무료한 저녁은 TV와 함께 보내야 하지만, 보기 싫은 놈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초로의 저녁도 괜찮다. 뉴스를 끄고, 잠자리에 누워 내일을 기다리는 것이 반장짜리 하루의 전말이다.

헐떡이는 염통에 절여지는 나날의 치욕과 노여움을 어쩔 수가 없다. 그런 아픔의 기억들을 뒤집어 보다보면, 산다는 것이 미친 짓이란 자명한 진실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내가 살아온 것이 아니라 그 놈의 빌어먹을 인생이란 것이 나를 살아온 것일 뿐이라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된다. 그 놈의 인생에게 나란 얼마나 지랄같은 것이었을까? 그러니 나 또한 인생에 대해 시비를 붙지 않기로 한다.

그런데 말이야, 때로 커다란 풍경을 마주하고 서 있으면 정말 외롭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것보다 문제는 아직도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거지. 느껴야 할 것을 생각한 탓에, 또 생각해야 할 것을 느끼려고 한 탓에 늘 실수를 해 왔다. 늘 실수를 하지만 고치려 하지 않았고, 잡고 싶었지만 놓아주었고, 껴안았어야 했지만 팔장을 끼고 있었다.

그러니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세상을 비난할 수는 없다.

비난할 수 없는 것은 그 탓 만이 아니다. ‘나 역시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지점에 이르면 나에게 지워진 형벌의 이유는 읽어볼 필요조차 없다.

찬비가 내렸다. 바람도 불어서 낙엽과 함께 가지마저 뚝뚝 떨어져 내렸다. 도로에서 떨어져내린 플라타너스 잎들이 인도 위로 범람했다. 늦은 저녁이 되자 차가운 기운이 내습한 거리에는 가로등도 저물고, 교차로에선 집으로 가는 차량들이 대가리를 들이밀고 옆구리로 배째라며 얽혔지만, 헤드라이트의 불빛은 물기 먹은 낙옆이 구겨지는 소리로 어둑했다.

그러니까 외로울 자격조차 없다.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사랑하지 못했다’가 맞는지도 모른다.

‘못했다’는 죄가 아니다. 불구(不具)일 뿐이다.

나의 외로움이란 값싸고 터무니없는 것이다. 그 탓에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로움조차 모르는 이 외로움이 이제는 슬프다.

서글픔과 외로움, 고통이 아니라면, 인생이란 기쁨과 영광, 축제 따위로 버무려진 종합선물세트같은 것이 될 것이다. 그따위를 인생이라고 말해도 될까? 벽에 걸린 색이 바래고 먼지투성이에, 찌든 냄새로 축늘어진 낡은 옷과 인생은 닮았을 것 같다. 터진 솔기 사이를 들여다보면 가난한 생애가 왈칵 쏟아져 내릴테니까.

비가 갠 새벽 길 저편에서 사람이 나타나 나를 스쳐 지난다. 일요일 새벽, 은행잎이 노랗다 못해 하얗게 바래기 시작했다. 은행잎에 젖은 길 위로 해가 나기 시작한다. 도로가 단풍 든 가로수를 따라 노랗게 소실한다.

여기에 왜 와 있으며, 밤을 보내고 또 새벽을 맞이하고 있는 것인가? 나의 의지도 욕구도 아니다. 이미 잿빛으로 그려져 있던 세상 속으로 인생이 나를 불렀고, 그래서 여기에 이렇게 와 있다. 나의 의지와 욕구와 무관하다. 헤아릴 수 없는 인연이 만들어 놓은 이 광활한 세상 속에서 단지 졸립고, 춥고, 배고프며 외로울 뿐이다. 그러니 사랑이란 뭐 말라 비틀어진 것이란 말인가?

더 이상 잡을 힘이 없어서 추락하고, 바닥에 붙을 수 없어 뒹구를 수 밖에 없는 풍경을 스산하다고 한다면, 이 새벽이 그렇다. 플라타너스 잎은 빗물과 바람에 쌓이고 또 쌓여 도로는 지워졌다. 떨어진 노란 은행잎이 사이로 검은 십자가 모양으로 아스팔트가 드러나 있다. 교차로인지, 그 위에 신호등이 있었다. 빨간 불빛 아래로 차가 하품을 하며 지나 갔고, 도로와 낙엽 위 50Cm까지 안개가 내려왔다. 파란 신호등이 켜졌고, 빗물에 젖은 타이어로 낙엽을 밟고 나는 세상의 저쪽으로 좌회전했다. 백미러로 본 하루의 시작은 안개와 새벽과 침묵이 서로 마주 노려보는 것에서 부터 였다.

오늘 낮에는 맑을까?

미세먼지가 낀다고 했어.

“우린 자기가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면서,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을 아무 단어나 가져다 이거다 저거다 함부로 재단한단 말이지”

아마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 될 것이다. 붙잡았고 놓치지 않기 위하여 꽉 쥐었던 것들이 아무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 채, 손을 놓아버리게 될 것이다. 마침내 존재했다는 흔적조차 잊혀진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문득 뒤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혹시 너는 그려볼 수 있니?

문득 돌아본 그 풍경을…

돌아본 그 누군가도, 그 누군가가 돌아본 쪽 얼굴과 눈, 기억, 그 어느 것도 없을 터인데…

5 thoughts on “사라짐에 대하여

  1. 여인님.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나요?
    오랜만에 들른 참에 저 또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는 글을 쓰셨네요.
    저도 가끔씩 느껴보는 감정들, 상념들, 사색들이 곳곳에 글에 묻어 있으니 읽으면서 마음 한 켠이 좀 아리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저도 제 몸의 아픔과 사투중이고, 저를 떠나버린 것과 제가 떠나온 것을 그리워 하며,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사는 게 뭐 별 건가 하지만, 혼자이고 보면 별 게 아닌 게 정말 별 것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모쪼록 여인님도 추운 겨울날에 몸과 마음을 따스하게 보내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연히 들렀다 문득 예전에 나누었던 마음들이 그리워져 몇 자 끼적였습니다.
    좋은 밤 보내시길..

    1. 아직은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 가을의 색은 참 고왔습니다. 가을은 어쩔 수 없이 서글픈 데 그 기분에 한동안 젖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뭔가를 꿈꾸고 욕망하기에는 늦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지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이번 가을이 저한테 속삭이기 시작했던 때문에 쓸쓸했던 것 같습니다.

      오랫만에 들러주셔서 반가웠습니다. 네이버로 이사가신 모양이네요. 한번 가서 뵙겠습니다.

  2. 댓글쓰는데가 어디인지 한참 방황하느라고 여인님 글읽고 마음이 동한 감흥이 날라가뿟네요 아쉬워라 ㅎㅎ 오래전 사귄 친구는 종종 기억하고 찾아오곤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혼자 보기 아까운 글들. 그냥 건강하셨으면 좋겠고 또 봄에 푸릇푸릇 꽃들보며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바람해보고 갑니다.

    1. 봄에 꽃 피는 것을 보면 낙엽지는 것보다 더 슬픈데…
      그것이 행복같아요.

    2. 링크가 달려있지 않아 선수님께 가보고 싶어도 갈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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