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16부에 달하는 마더를 이틀동안에 다 보았다. 보면서 슬프고 행복했다. 다 본 후 집 밖으로 나오니 오후는 구름으로 가득했고, 바람부는 역 앞에선 비둘기들이 날아올랐다.

마더를 보면, 기쁨이나 사랑, 행복이 슬픔과 고통으로 만들어 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드라마의 결말은 행복이다. 하지만 장면 하나하나는 슬픔을 고통으로 엮은 것 같다. 드라마가 끝나고 미움과 원망, 오해가 씻김을 받고 풀이가 되자, 슬픔들은 새벽 햇살을 맞이한 이슬처럼 맑게 반짝인다. 그리고 내 가슴은 고요해졌다.

어린 혜나가 가정폭력으로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남자가 알았다면, 해결방식은 단기적이고 폭력적일 것이다. 하지만 여자인 수진은 혜나를 품에 안고 멀리 떠나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길은 멀고 위태롭지만 그 순례의 길은 수진과 윤복(혜나의 새로운 이름)이 엄마와 딸이 되는 숭고함으로 꽉차 있다.

한상복, 박현찬은 그들의 책 ‘휘메일 리스크’에서 “피부에 돋는 트러블의 이질감도 견디기 어려워했던 여성이 뱃속에 다른 생명을 잉태하면 그 이질감을 모성이라는 숙명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러면서 “남성들은 여성들이 열달동안 겪는 이중적 감정(자기 몸에 대한 박탈감 및 새 생명에 대한 일체감)이 어떤 것인지 곁에서 지켜보면서도 짐작하기 어렵다”고 한다.

여성이 몸으로 다른 생명을 받아들이면서 느끼게되는 감정, 모성이라는 것을, 마더에서는 혈육이 아닌 아이를 품고 멀리 도망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정신적 고통을 이겨냄으로써 갖게 되는 과정을 풀어내고 있다.

남자라면 그 순례의 길에서 수진처럼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아빠가 될 수 있어도 엄마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아빠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이 드라마에서 혜나를 학대하던 엄마나 삼촌이 응당한 처벌을 받고, 법적으로는 납치범인 수진이 정상참작이 되어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결국 수진과 윤복이 법적(De Jure)으로 엄마와 딸이 되는 것은 작은 해피엔딩이다. 순례의 과정에서 수진은 자신을 버린 생모를 찾게 될 뿐 아니라, 왜 자신을 버려야 만 했으며, 양모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길러왔는가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수진의 두 동생들도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들이 진실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껴안는 과정을 보면서,

신데렐라나 백설공주의 동화가 끝나고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보다 그들이 더 이상 더 큰 불행을 마주하거나 서로 죽도록 증오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윤복이 말도 안듣고 자꾸 수진의 속을 썩이겠지만, 큰소리를 치고 안아주기도 하면서 엄마와 딸의 관계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그런 믿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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