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고 난 후

12시 30분이 좀 지나서였을거야. 아파트의 틈 사이로 햇빛이 내려왔어. 빛은 차곡차곡 쌓인 도시의 미세먼지 사이로, 낙옆이 떨어지는 속도로 천천히 내려앉았어. 빌어먹을 미세먼지에 대해서 저주를 하면서도, 빛이 타락한 공기를 밀쳐내며 밝음을 펼치려는 정경이 아름다웠어. 멸망하고 난 뒤, 세상의 잔해를 뒤덮은 먼지 사이로도 빛은 그렇게 깃들겠지.

그 때 그런 생각이 들었던거야. 몸이라는 것, 그것 없이, 정신이라든가 넋만 홀로 있다면 어떨까? 신체라는 물리적 한계가 없는 넋과 정신이 아픔이라든가 아름다움과 더러움, 더 나아가 쾌락을 느낄 수 있을까? 느낀다면 물리적 한계가 없겠지. 결국 끝이 없는 고통과 쾌락이 되고 말 것이라는, 그런 허접한 형이(形而)적인 생각들 말이야. 하지만 영혼이나 정신과 같은 형이상적인 것에 대해서 생각할 수도 없지만, 사유를 통해서 느끼기란 더욱 어렵지. 안다고 해봤자, 결국 내 몸은 밥에 굴복하고 말 것이라는 정도지.

그러니까 영원같은 것보다, 밥이라는 구체의 것에 굴복하다보니 살(肉)을 통제하기 어렵게 되었어.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 “이유같은 것은 없을꺼야. 이유가 있다면 자살을 한다거나 이런 고민같은 것 없이, 그 이유를 붙들고 살아가겠지.”

그리고 며칠 만 더 이 지상에 남아 있게 되기를 바라는 날이 다가올 것이야.

This Post Has 2 Comments

  1. 원영

    글이.. 무기력하게 늘어진 손으로 벼려낸 칼에 베인듯 느껴지네요.
    건강하시지요..?

    오랜만에 안부 여쭙고 갑니다.

    새해에도 더 건강하시길 빌겠습니다.

    1. 필부

      오신 흔적을 보고 혹시 하고 가 보니 새 포스트가 있더군요. 좋은 글을 읽으면서 참 오랜 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세상에 부딪힌 몸이 타박상을 입은 것처럼 요기조기가… 하지만 파스 한 장이면 그럭저럭 완쾌할 수 있는 정도라서 ^^ 이만한 무탈함은 또 없습니다.

      입춘에 길한 일이 많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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