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가는 아침

새벽에 비가 내렸다. 길은 젖었지만 출근 때에는 이미 날이 개였던 것 같아. 가지 밑이나 풀잎 위에 머무르던 안개는 동이 트자 엷게 뜰의 구석으로 밀려났다. 빗물에 젖은 나무와 잎새들은 수채화처럼 풍경 속으로 번져나갔고 그 속으로 햇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세상은 들끓는데, 아침은 고요하다. 황사도 내습을 멈췄는지 하늘이 맑다.

바람이 불자 낙엽이 진다. 잎만 지는 것이 아니라, 잎이 달린 줄기가 꺽여져 툭하고 땅에 떨어진다. 잎은 햇빛 아래에 뒹굴며 반짝인다. 새들이 묵묵히 북쪽으로 날아갔어.

햇빛은 사물의 겨드랑이 밑으로 낮게 스며든다. 빛이 잠잠한 탓에 사물의 그림자는 깊고 그윽하다. 낮은 햇살에 눈이 부셔서 실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면, 노란색 혹은 감색의 나뭇잎들이 건물들의 벽과 뜰에 덧칠되어 있고, 잎이 성근 나무는 검은 가지가 드러났다. 초록빛이 빠진 가을 뜰은 햇빛을 받아 한숨처럼 가벼웠어. 성근 가지에 고인 누렇고 붉은 잎들이 마지막으로 대지 위로 흘러내리면, 파랗게 언 하늘 아래, 빈 가지만 볕바라기를 하는 계절이 올 것이다.

뜰 한 구석에서 누군가 낙엽을 태우기를…… 그래서, 가을을 비망(備忘)하는 낙엽타는 냄새가 뜰에 가득하기를…… 또 누군가는 바라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This Post Has 2 Comments

  1. 위소보루

    사진의 평화로움과 글속에서 드러나는 현재의 침중한 현실이 무척이나 상반되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풍경의 묘사가 사실적일수록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무척이나 거짓되고 허황된 느낌입니다.

    1. 필부

      우리가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상징계 즉 언어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석되어집니다. 하지만 작금의 사태들은 실재계의 일들이 상징계로 틈입한 것입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실재계의 일들이 우리의 일상을 흔들고 굴절시키는 탓에 혼란스러운데… 기실 권력의 속성은 야만적이고 추악한 것 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목도한 것일 뿐 입니다

위소보루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