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골목

언제였던가…… 저런 곳에 쪽방을 얻어 살던 생애의 언저리가 있었어. 오후가 익어가면 철길을 따라 열차가 지나갔어. 어느 작가는 여기를 ‘국도의 끝’이라고 했지. 그렇지만 끝은 무토막 자른듯하지 못해서 끝을 찾지 못했어. 아니 그보다는 찾지 않고 그 끝에 잠시 머물기로 한 것 같아. 노을빛이 철길을 건너 온 그 날, 끓는 다싯물에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를 잘라 넣으며, 사는 게 재미없지만, 간혹, 이유없이, 아름답다는 것 때문에, 이 놈의 인생이라는 것을 조금 용서해주기로 했지. 골목의 집들은 하나씩 비었어. 불빛들이 사라지고 창의 유리창이 깨지더니 벽에 이끼가 끼고 균열이 생겼지. 사람을 위하여 만든 것들이 마침내 사람이 사라져버리면, 얼마나 착찹한 풍경이 되는지…… 밤이면 보이지도, 알 수도 없는 것들이 빈집 사이를 배회했어. 없는 것들이 내는 외로운 소리들이 골목을 채웠지. 귀신이라고 말하지만, 혹시 그것은 그리움이거나, 아쉬움이거나, 아무리 해도 기억나지 않는 추억들, 그래서 결국은 그 안이 텅비어 바깥마저 사라져버린 것들은 아니었을까? 한낮에 깨진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면, 어스레한 빛이 먼지와 뒤섞여 방 구석에 앉아 있다가, 인기척에 놀라 어질러진 마당의 햇빛 속으로 후다닥 사라지기도 했어. 그렇게 멸망해 가는 흔적과 그 사이에서 서식하는 영혼이 외롭고 두려움에 젖어있는 것을 보았어. 삭아내리는 벽과 함석 사이로 이끼와 곰팡이와 버섯 그리고 거미집이 엉키지만, 밤이 오면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골목의 어느 창에는 불이 들어왔고, 골목과 골목을 지나 국도의 끝, 어느 집에선가는 부부가 죽어라고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어. 그 소리를 들으면 이 초라한 생활에 깃든 악착같은 확실성 때문에 가슴이 뻐근했어. 그래서 먼지 낀 인생을 뒤집어 쓰고 악착같이 끝나는 그 날까지, 아무 이유도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름답다고 했어. 아무 기대도 없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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