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우침

동방의 고대종교 특히 기독교에 있어서 깨우침의 개념은 없다. 그노시스라고 하여도 오직 합일이라는 개념이 있었을 뿐이다. 깨우침(깨달음)은 인도적 전통에 있어서도 불교에만 국한된 개념이다.

마키비온티가 깨우침을 얻었다는 것은 기독교이던 동방종교에 있어서는 이례적인 종교 체험이 될 것이다.

깨우침의 개념은 영지주의의 전통과도 달리한다. 영지주의 영지란 결국 신에 대한 앎 즉 합일의 상태이며, 신을 전제로 한다. 반면 깨달음이란 신이 없는 상태, 즉 인간으로서 우주 삼라만상의 오의를 깨달았다는 뜻인 바, 불교적인 전통에 입각한다.

마키비온티가 깨우침을 얻었다면 그노시스의 전통마저 혁파되고 새로운 종교가 탄생되었어야 하나 그가 새로운 가르침을 펼치지 않았다는 점은 특이하다.

나는 여기에서 서양종교가 한단계 진보할 수 있는 계기를 상실했다고 본다. 그의 깨우침이 그노시스적인 합일의 체험의 또 다른 명칭이 아닌가 했으나, 문헌 상으로는 나의 상실 즉 체험을 하는 자가 없이 체험 만이 남는 상태인 바, 불교의 깨우침의 단계와 함의 상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 개인적으로 마키비온티가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지 않은 중요한 사건은 비록 자신의 깨우침이 가장 뛰어난 종교적 차원이라 하여도 당시의 종교 테러상황에서 새로운 종파의 탄생 자체가 피를 불러온다는 사실에 주의를 한 것 같다.

그러나 이 글에서 새로운 진리가 없는 만큼 자신의 말을 세상에 더할 필요가 없다고 한 그의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명확치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