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귀도 가는 길

고산으로 가는 왕복 2차선 해안도로는 낯설지만 조용했다. 하늬바다를 바라보면 이 낯설음이란 익숙해지지 않는 외로움을 닮았다. 파도의 포말이 들이치는 해안도로는 현실적이라기 보다, 먼 훗날 노구를 이끌고 홀로 이 길을 걸을 것 같다는 뼈저린 예감으로 이어져 있는 것 같다. 그 훗날이란 이어도 방향으로 붉은 노을이 길게 피어날 저녁 무렵이겠지만, 아직은 오후 1시 반, 들 위로는 봄이 번져오고 있었다. 왜 나의 추억이라는 것은 이토록 빈곤할 수 밖에 없는지? 오후의 햇살에 누렇게 들뜬 들이 끝나고, 검은 암초들이 허물어지는 바닷가에 무인등대가 빨갛게 서 있고, 그 너머의 푸른 바다 위로는 하얀 파랑이 아우성이었다.

암초에 찢기어진 파도의 물거품이 해변을 두드렸고, 바닷새들은 머리가 젖었다.

도로가 해안 언덕 위로 우회전할 때, 텅빈 펜션과 게스트하우스 몇 채가 보였다. 언덕 위로 바람이 떠밀린 바닷새들이 먼지처럼 떠올랐다. 날아오른 새들은 가슴으로 바람을 내리누르고 정렬을 한 뒤, 까맣게 역 S자를 그리며 바다 위에서 좌선회했다. 암초 위로 선회한 새들이 폭포처럼 내려앉았다.

바람이 내습하는 방향을 알 수 없었다. 맑은 햇살도 바람에 떠밀린 듯 마음 속에는 어둠이 가득했다.

한줄기 해안도로는 좌회전, 언덕을 치고 올라가 들과 들, 언덕과 언덕이 낱낱히 드러나는 섬의 안쪽으로 들어섰다. 도로는 먼 곳에 달려온 도로와 교차했고, 교차한 길은 유채꽃이 핀 것 같은 언덕 아래로 소실했다. 바람이 많은 섬의 길 가에는 전신주가 보이지 않았다. 들과 바람과 언덕으로 가득한 섬의 안쪽으로 뻗은 길의 뒷모습은 수줍은 것 같기도 했고, 오후의 햇살에 현기증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 봄이 온 모양이다.

들에서 해안 쪽으로 더 가자 내리막이었고 끝에 포구가 있다. 자구내라는… 포구에서 1~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부러진 섬의 조각 몇개가 바닷물에 잠긴듯한 섬, 차귀도(遮歸島)가 있었다.

돌아갈 길이 막혔다(遮歸)는 섬은, 신화처럼 황량해 보였고 동화처럼 가깝고도 아득한 데… 섬 위로는 남녘의 봄이 아예 돌아올 생각이 없는 듯, 섬의 반대편, 엉알(높은 절벽 아래의 바닷가)로 이어진 포구에는 바람이 가득 들어찼다.

결국 그 섬으로 넘어가지 못한 나는 바람에 떠밀렸는지 아니면, 남겨둔 쓸데없는 일이 있는지, 차에 시동을 걸고 섬의 안 쪽으로 다시 들어섰다. 안쪽 들에는 바람이 한창이었지만, 봄이 팽팽하게 들어차 북상을 준비 중이었다.

20160311 13:45분경, 고산-일과리 해안도로의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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