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너스 낙엽 아래에서

북쪽에서 바람이 불었다. 사무실 앞 플라타너스에서 진 낙엽이 남쪽 아스팔트 위로 흘러넘쳤다. 겨울이다. 여느 플라타너스 잎이 호박잎 만하다면, 한번도 가지가 잘려나간 적이 없는 사무실 앞 플라타너스의 낙엽은 큰 것은 어른 손바닥, 작은 것은 아이 손바닥 만했다. 무성한 가지에 매달린 잎이 호박잎처럼 크다면, 무게를 견디지 못하여 비와 바람이 스쳐지나는 어느 날, 가지가 꺾이고 부러지거나 혹은 나무의 뿌리가 흔들리거나 둥치가 뒤틀렸을 곳이다.

그제와 어제의 비와 오늘의 초겨울 바람 탓에 왕복 6차선 도로 위로 낙엽이 수북히 쌓였음에도 가지에 남은 메마른 잎 탓에 아직 가지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은행이 거진 다 져버렸음에도 말이다.

이 곳으로 처음 흘러온 날이 올해 1월 25일. 새벽에 바라본 플라타너스는 어마어마한 크기였고 가지에는 아직도 잎이 지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크나큰 나무의 가지 사이에는 까치집이라든가 새집이 보이지 않았다. 봄이 오자 지지 않은 낙옆 위로 새 잎이 나고 새들이 잎의 그늘 사이로 깃들더니 햇빛이 맑은 날에는 목을 부풀려가며 지저귀기 시작했다.

여름이 되어 거센 바람이 몰아칠 때, 나무는 바람을 흘려보내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비틀어가며 바람을 가지와 잎들 사이로 빨아들였다가 토해내며 우람한 몸짓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낙옆이 지기 시작할 무렵, KIH라는 싸가지없는 녀석이 낙옆을 치우는 수고를 덜기 위하여 그 플라타너스를 배어내자고 했다는 것이다.

한번이라도 플라타너스를 제대로 바라보았다면 그런 소리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작업반에서는 “그렇게 늠름하게 자란 나무를 건드렸다가 잘못될 수 있다”며 작업하기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도 매일 낙엽이 지고, 가지 사이로 헐벗은 하늘이 조금씩 드러나며 겨울이 다가오고, 또 다시 봄이 오고 가지 사이마다 물이 오르고 잎싹이 움트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며, 그 무의미한 시간 가운데 한그루의 나무가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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