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성생존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저씨

1. Habitual Live Syndrome

가끔 다른 사람들을 보면 지독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습관성생존증후군이다. 아무 이유가 없지만 여태까지 살아왔기 때문에 그냥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증상은 전염되고 한번 감염이 되면 불치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난치에 가깝다. 이 병은 아무 생각없이 사람을 살게 하지만, 간혹은 이 병에서 치유되는 과정에서 부작용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습관적으로 무의미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자각이 우울을 낳고 극심한 경우 자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는 것에 습관화되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 우울이 덮쳐와 죽어버리는 것이 나쁜 것인지에 대해서는 판단이 서지 않는다.

나도 습관성생존증후군이다. 아마도 그 병의 말기증상으로 죽을 것이다. 말기증상이란 ‘노환으로 밥숟가락을 놓는 것’이다. 아님 말고…

2. The Man From Nowhere

이 제목은 원빈이 나온 영화 ‘아저씨’의 영어 제목이다. ‘아저씨’의 개념을 너무나 적나나하게 표현하고 있다. 즉 “저 새끼는 어디서 나타난거야?”

이 곳 사람들은 이상하다. 괴팍하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개인의 기괴함과 괴팍함이 사라진다면, 더 이상 실존하는 개인이나 개성은 없을 지도 모른다. 아마 사회의 그럴듯한 조직에 속하기 위해서는 개인이나 개성을 구성하는 괴팍함과 기괴함을 넥타이로 꽉 졸라매고 스킨냄새로 킬링해야 되기 때문에, 술 쳐먹고 늦은 밤 골목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야 하는 한 개인의 필연적 정황에 둔감하고, 한푼 돈에 일희일비하는 인간들의 치사하고 치열한 속성들을 감춰 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 사람들의 생활의 모서리들은 삶의 한계에 이르러 마모되고 구멍이 난 탓에 개인의 기괴함이 젠 체하는 자들의 이른 바 건전한 상식을 뒤덮어버리는 것 같다. 그러니까 몰상식하다는 이야기이다. 공자가 말한 교양이나 예의 염치라는 것(文)들이 바탕(천성: 質)을 제어하기 어려운 거친 상황(質勝文卽野)에 다다른 탓 인지도 모른다.

교양이 존재하기 어려운 상황, 그래서 사람들의 모습이 노골화되고 결국 이상하고 괴팍해지는 타자성이 범람하는 이 곳의 하루는 위태롭고 별나지만 그냥 지나간다. 그리고 겨울이 가는 것 같고 봄이 오는 것 같다.

나 또한 점점 아저씨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이나 갈증을 교양이나 염치로 포장하고 젠 체하는 재수없는 상황(文勝質卽史)보다 다소 거칠지만 인간이 보이는 이런 상황이 나는 더 좋다.

This Post Has 12 Comments

  1. 후박나무

    저도 제가 왜 사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그냥 살아 있으니, 살아 왔으니 살아가는 것 뿐.
    어쩌면 죽는 것도 그리 잘못된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저도 인간의 욕망이나 갈증을 교양이나 염치로 포장하고 젠 체하고 있는 걸까요?
    거칠지만 인간이 보이는 상황이 저에겐 퍽이나 어려운 일로 다가옵니당.ㅎ

    1. 旅인

      내가 남을 보는 일이란… 남이 나를 보는 일과 흡사할 것입니다. 아마 이 글도 사람들에 대한 험담 중에 하나일 것이고, 남들이 나를 볼 때 “저 놈 어디서 나타난거야?”라고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아직 이 곳에 적응하지 못한 탓일지도 모릅니다.

      그냥 살아왔으니 살아가는 것, 이것이 인간과 살아있는 것에 부여된 섭리인데, 단지 “왜 사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잘못인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이 아니라 인위적인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점에서 의심할 수 밖에 없겠지요. 그것 또한 숙명인가 봅니다.

  2. 흰돌고래

    한참 ‘왜 사느냐’란 질문을 골똘히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데 🙂 잠정적으론 나아지기 위해 산다는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완전히 체화된 건 아닌 듯 싶어요.

    습관성생존증후군의 말기증상은 지극히 자연스럽네요.

    “저 새끼는 어디서 나타난거야?”하고 내뱉기라도 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아요.
    그런 그라도 젠 체하는 인간이기 보다 솔직하게 드러내는 인간이라, 어떤 측면에선 사랑스러울(?) 것 같기도 하구요. :_)
    저 진짜 젠 체 장난 아닌데, 이젠 좀 떨쳐버리고 싶어요.

    1. 旅인

      공자가 싫어한 인간은 질(천성)은 없이 문(꾸밈)만 남아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습관성생존증후군의 말기 증상은 말인(der letzte Mensch: 초인의 정반대의 인간)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겠지요?

      초인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3. 아톱

    에고 저도 마지막 말씀에 공감해요
    교양있는 척 하는 것보다 인간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더라도 솔직한 게 낫죠
    요즘 세상이 점점 살기 팍팍해져서 더 그런 거 같아요
    인간성도 상실되고 교양도 말살되고 참 웃긴 게 교양있는 사람을 가르치려 교양학과까지 개설되는 게 현실 아니겠습니까
    교양은 좀 더 저학년 때에 기본적으로 익혀놓도록 되어 있어야 하는데 돈이나 성공 같은 것에만 매달리고 있는 게 현실 교육의 밑바닥이니까요

    저도 나한테 왜 사냐고 끝없이 묻고 있는데요
    그게 글쎄 명확히 답하기 어렵더라구요
    뭐 제가 대단한 사람도 아닐 뿐더러 어떻게 보면 나도 그저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고 밖에 설명이 안 될 때가 있거든요
    에… 아직 아무 것도 잘 모르겠어요

    1. 旅인

      조선시대 초기 조광조와 같은 사림출신이 유교에서 중시한 부분은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하는 대인을 기르는 대학보다 글을 읽고 사람의 기본이 되는 소학이었습니다. 가족간에 화목하고, 몸가짐을 바로 하고 이웃과 함께 어울려 사는 법을 터득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소학교는 학문이나 성적이 아니라, 글을 깨우치고 셈을 하고 질서를 지키고 부모와 어른을 공경하고 친구와 함께 즐겁게 지내며 몸을 튼튼하게 하고 집 안 청소 등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교양입니다.
      대학 나온 자가 소변 하나 제대로 보질 못하여 공중화장실에서 변기 옆으로 오줌을 질질 흘리고, 식당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반말로 종업원들을 와라 가라 소리치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면서 무슨 교양을 걸먹거리겠습니까? 이들이 생각하는 교양이란 커피의 맛과 이름, 서양음식의 이름이나, 유명 식당이나 브랜드 이름을 줄줄이 외우는 것 등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자가 말한 문질빈빈(文質彬彬 然後君子)이란 사람의 거친 부분 나가서 막 뛰어놀고 싶은 것을 참게 하고, 교양이 교만으로 흐르는 것을 막는 인간의 순박한 마음 등이 균형을 이루는 상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생존 연후에 자신이 실존하는 의미를 찾게 되겠지요^^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때를 기억하듯이 말입니다.

  4. 위소보루

    습관성생존증후군. 누구나 이직 후에 겪는 후유증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즈음 무척이나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습관적으로 출근을 하여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그러면서도 다시 이곳을 벗어나면 어딘가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이 있는 곳이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는 요즘, 무언가 중심없이 흔들리고 있는 느낌입니다.

    1. 旅인

      참으로 일과 나의 적성이나 즐거움은 서로 맞춰가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수필집을 솔직한 마음으로 썻을지도 모릅니다.
      호모 바비엔스는 싫지만 살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밥벌이를 하여 먹어야 하는 환장할 상황을 자조적으로 표시한 학명일지도 모릅니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에서 락지자에 이르기 위해서는 결국 지에서 호를 통하여 락에 이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樂으로 직입할 수 있는 벌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결국 배우고 익혀서 간신히 지에 이르고 노력을 통하여 그 일을 즐기는 락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너무 조급해 하거나 너무 장고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5. 리얼리티

    읽다보니 어느곳의 서당의 모습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반듯한 생각과 넉넉함이 있는 사람들이 이렇듯 많은데도…
    세상살이가 녹녹하지 않음을 누구의 탓을 해야할까요?

    캥거루의 자루주머니에 아이들을 담고 달리다가도 머무를때를 모른다면 쉴 수가 없어서
    다 같이 사는 세상은
    다 같이 만들어야 되는데 크기가 커질 수록 다루기 힘들어서
    크기를 나누는 일이 어른들의 일일텐데…하면서
    생각이 현실이면 얼만 좋을까하면서…나비를 쫓아서 밖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1. 旅인

      세상살이가 힘든 것은 세상이 힘든 것보다 자기와 다름을 인정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처럼 ‘괴팍’하다고 취급하는 다름을 이해하지 못함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다르다고 하는 저 자들이야말로 살아가기가 힘들어 자기자리를 찾기 위하여 쭈뼛거리는 것이라는 점을 제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모두가 저 같기를 바라는 욕심 탓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생각이 현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누군가는 꿈이 무서워서 현실로 도피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좋은 생각만이 생각이 아니라 인간 속에 내재된 끔찍한 생각들이 이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현실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전쟁이나 홀로코스트, 각종 테러와 폭행은 결국 생각이 생각 밖으로 넘어온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2. 리얼리티

      여자들이 생각하는 세상과 남자들이 생각하는 세상은
      다르기도 하겠네요…
      아이가 얼마전 통화중에 생명에 관한 책을 읽다가
      예전에 여인님의 글중에서 읽은 글이 생각이 나더라는
      얘기를 주고 받으게 생각이 나네요.

    3. 旅인

      인간이 세계-내-존재라는 측면에서 세계는 각자의 (내외적) 경험을 통해서 만들어질 수 밖에 없는 탓에, 남자와 여자가 바라보는 세계는 다를 수 밖에 없겠지요. 그리고 아드님이 군대에서 겪게 될 세상은 여태까지의 세상과 유다를 것입니다.
      저도 여태까지와 다른 세상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봄날은 아름답지만 나날은 무의미하며, 무의미하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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