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지는 시간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 이런 사무가 나에게 잘 어울리는 지도 모른다. 시간이 쌓이는 것이 아니라, 비가역의 세상 저 끝으로 허물어져 내리고 아무런 역사도, 흔적도 없이 공허가 되는 지금, 사무실 건너편에 있는 플라타너스를 보는 일은 멋진 일이다. 싹이 난 후 한번도 가지가 잘려져 나가지 않은 나무의 모습은 의젓하다. 잎이 져 버린 가지 사이로 아침이 가고 오후가 지나간 후, 늦은 저녁이 열리더니, 저녁 속으로 건너편 병영에서 울리는 취침 나팔소리가 스며들었다.

하루가 저무는 모습은 처연하다. 취침 나팔소리를 들으면, 시간이 낡은 도시로 몰려든 영하의 먼지와 뒤섞이는 방식에 대하여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고 나자 나에게 있어서 사랑이라는 것이 한번도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6 thoughts on “허물어지는 시간

  1. 소설 속의 한 부분을 발췌해서 읽는 느낌이어요.^^

    초등학교 다닐 때 커다란 플라타나스 나무가 있었는데,
    문득 그 때 보았던 나무가 생각이 나기도 합니당.^^

    1. 요즘 제 생활이 어쩐지 소설같다는 느낌입니다.
      항상 흉물스럽게 잘린 가지 위로 새 가지가 자라나는 것 만 보아온 나로서는 플라타너스가 저렇게 멋진 나무였다고 상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다녔던 학교 운동장 주변에도 플라타너스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모양이야 가관이었지만, 여름날 그늘 만은 일품이었습니다. (중학교에서 뺑뺑이 동계진학한) 고1 여름방학 후 하교에 돌아왔더니 운동장 주변의 플라타너스가 다 잘려나갔습니다.
      그 나무들은 이쑤시개 공장으로 팔려나갔다고 하더군요. 자글거리는 늦 여름의 시원한 그늘을 이쑤시개와 엿바꿔먹다니….

  2.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
    시간이 흐르는 물처럼 느껴지는 건

    자연만 있고 거기에 있는 사람도 자연이 된 것 같은 느낌 때문인가 봅니다.~
    왠지 잘 어울리시는 것 같아 글을 읽으면서 좋네요…

    1. 아직도 필요하고 익숙해져야 할 용건은,
      시간과 친해지고 더 이상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 일입니다.

      그리고 매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할 인사말들을 준비하는 것!

    2. 익숙해진다는 건 마음을 보여주는 일인 것 같아요.
      아이의 군생활을 지켜보면서 마음을 두는 곳으로
      제 마음이 간다는 걸 느끼고 있네요…
      그곳의 생활에서 그 동안 쓰썼던 많은 글들과 함께
      좋은 시간되시길를 바라겠습니다.~

    3. 한달이 다 되어가는데 이 곳은 아직도 낯섭니다. 낯설다기 보다 이 곳과 친해질 시간적 여유를 얻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 아드님에게 군 생활은 새롭고 이상한 세상을 열어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튼 군에 간 첫해의 겨울은 유난히 길고 추운 법입니다. 추위도 슬기롭게 건너겠지요?

      저도 좋은 시간을 만들어 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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