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적등본과 그 외

1. 제적등본

어머니께서 외가에 대한 이야기를 써 달라시며, 외할아버지와 외증조부의 제적등본 두통을 주셨다.

제적등본을 사망으로 인해서 말소가 된 경우나 분가 등으로 호적에서 제적처리된 것으로 나는 이해했다. 즉 제적등본이란 한 인간을 말소하기 위한 기록으로 이해했다.

한 사람을 말소하기 위한 한 사람의 존재를 기록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사라질 수가 없는 법이다. 그래서 제적이란 행위는 말소의 증거가 아니라 존재했다는 증거이다. 존재했음을 기록해야만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그 위에 덧붙일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했던 것이다.

생겨나지 않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사라질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제적등본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니, “과거 호적법이 존재할 당시의 기록, 제적편제일 당시 기준으로 당시의 호적구성원들이 등재되어 있습니다. 전호적, 신호적, 본, 출생, 혼인, 사망, 부, 모, 형제, 호주와의 관계 등이 나타나 있습니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러니까 과거의 호주제에 입각한 호적제도가 가족관계등록부 제도로 바뀌면서 호적을 없애는 일환으로 남긴 호적등본과 같은 것이다.

2. 공포의 보수

공포의 보수(The Wages Of Fear, 1953작)를 다시 보았다. 니트로 글리세린을 트럭 한가득 싣고 남미의 밀림 속을 달리는 이 영화는 세상의 마지막 변두리와 그 변두리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꿈틀거리는 인간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리얼리티의 극치이다.

한방울로도 가공할 폭발력을 지녔을 뿐 아니라, 경미한 충격에도 폭발하는 니트로 글리세린을 담은 유리병들이 등 뒤에서 짤랑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도로 위에 놓인 나무가지나 돌맹이를 트럭 타이어로 밟고 넘거나, 전진할 경우 동료의 다리가 두동강이 날 수 밖에 없음에도 트럭의 엑세레이터를 밟을 수 밖에 없는 한계 상황들을, 그 처참함을 이 영화는 아주 설득력있게 그리고 있다.

죽음의 공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집 몇채 밖에 없는 세상의 변두리에서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무의미한 삶에 대한 공포’라는 것을 영화는 그리고 있다.

3. 책을 읽다

책을 읽을 경우, 이해력이 모자란다는 것을 실감한다. 특히 최근에는 한번도 그런 방식으로 생각해보지 못한 방법적 사고 때문인지 모르나 이해를 거의 하지 못한 채 페이지만 넘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다른 책을 읽어도 이해의 수준이 그전 같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느낀다. 집중력도 떨어지고 그에 따라 기억력마저 바닥이다. 책을 읽고 난 후 무엇을 읽었는가를 생각하면 기억이 하얗다.

4. 찌라시와 기밀문서

찌라시라고 해도 문제고, 국가기밀문서라고 해도 문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기밀문서 혹은 청와대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아무나 읽거나 내용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최근 두번씩이나 경험했다. NLL로 촉발된 남북대화록과 이번 정윤회 문건이 그것이다.

5. 한국 경제의 문제

우리나라 경제의 문제나 국가경쟁력의 문제는 간단하다. 국민 개개인의 역량과 임금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법률, 제도, 정치, 인프라 등도 있지만, 재계에서 주장하는 노동생산성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여타 경쟁국가에 비하여 높다는 것에 주목해 보자.

재계에서 주장하듯 임금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좋은 직장에 다닌다는 젊은 친구들조차 집 장만은 커녕 전세값을 마련하지 못하여 결혼을 하지 못하고, 교육비가 무서워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집 값이 싸고, 교육비 부담이 적다면 임금이 낮아도 생활을 하기에 불편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집값이나 교육비로 흘러들어가는 비용이 민간소비로 흘러간다면 내수소비시장은 활성화되고 임금이 낮아진다면 대외경쟁력은 높아져 중국, 동남아 등 외국에 공장을 세우기 보다 국내에 공장을 세울 것이고 고용은 확대될 것이다.

땅값과 집값이 비싸다 보니 임금은 높아도 호주머니는 늘 비어있고, 소비는 위축되고 기업은 당연히 국내투자보다는 임금이 낮은 해외투자에 치중하다보니, 국내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청년백수는 는다. 내 자식이 츄리닝입고 방바닥을 뒹굴며 TV만 보고 있는 꼴 만은 두고 볼 수 없다고 학원이다, 과외다, 일류대 높은 학점에 토익만점. 삼성, LG, 현대 등의 공채 합격 혹은 철밥통 공무원을 만들어야겠다고 기둥뿌리를 뽑아내고 자갈밭을 팔아댄다.

이것이 삽질토건공화국이 만들어 놓은 우리 경제의 자화상이다. 결코 노동자들의 임금이 높다 낮다 하는 문제가 아니라, 정부와 재벌, 강남부자들이 합작으로 수십년에 걸쳐 만들어 놓은 기형적인 구조의 문제인 것이다.

구조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당사자들이 피해자들에게 삿대질을 하며 “너희들은 너무 많이 받아 쳐먹고 있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아무리 많이 쳐 먹어도 배고플 수 밖에 없는 그런 구조 위에 올라서 있는 것이다. 집값이 몇억씩 하다보니 몇천만원의 뇌물도 큰 돈 같지가 않다.

This Post Has 8 Comments

  1. 아톱

    음… 여인님도 글을 읽으며 머리가 하얘지는 경험을 하시는 군요..
    뭔가 놀라운데요. 그동안 제 생각으로 여인님을 규정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뭔가 친근하게 느껴져요.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평범한 한 사람이었구나 하면서..^^;

    전국 연립주택의 전세금 평균이 1억을 넘었다고 하더라고요. 집값은 자꾸 뛰고…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그럼에도 착한 국민들은 속으로만 궁시렁대고 있네요.

    1. 旅인

      자주 그럽니다. 앞에 페이지에서 무엇을 읽었는지 도무지 생각도 안나고, 저자의 의도를 제멋대로 해석하고, 잘못 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이제 학술서적 같은 것을 읽고 이해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2. 힌돌이

      아톱님 저랑 비슷한 생각 ㅋㅋㅋ
      저도 여인님이 저런 경험을 하신하고 하니, ‘안 그럴것 같은데..’ 했어요.

      여인님 이번주 미생 보셨어요? 미생을 보고 있으니, 사람들이 저렇게 뼈아프게 사는구나 하면서 막 슬퍼지더라구요. ㅠ_ㅠ

    3. 旅인

      미생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미생을 보면서 왜 제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지 않는지 알겠더라고요. 저는 직장 안에서 그 직장이 그토록 치열한 것도, 회사 밖이 지옥이라는 것도 몰랐던 때문이겠지요. 남들보다 속이 많이 편했던 모양입니다.

      미생을 보면서 그 리얼함에 놀라곤 하면서, 나는 어떤 유형의 직장인일까 찾아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어느 부분은 누구를 닮았고 어떤 부분은 또 다른 누군가를 닮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간혹 뼈가 저려서 술을 마시고 푸념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다 지난 일이네요^^

    4. 후박나무

      저도 아톱님, 흰돌님과 비슷한 생각.
      전혀 그러실 것 같지 않아요.ㅎ

      미생은… 아직도 무서워서 보지 못하고 있네요.ㅠ
      나중에 몰아서 보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5. 旅인

      저는 잘 이해가 안가실지 몰라도 요즘에는 난독증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점점 독서가 힘들어집니다.

      미생이란 드라마가 참 좋습니다. 나쁜 사랑이 있고 음모가 판을 치는 것이 아니라, 나빠질수 밖에 없는 상황과 치사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을 그리고 있다는 것, 그래서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를 자꾸 반문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2. 리얼리티

    언어는 시가 되야 되지 않을까?…라는 문구글 쓰신 것이 문득 생각났어요.
    군대간 아이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요.
    편지가 시처럼 쓰이는 이유는 공간의 분리 때문일꺼란 생각을 하면서
    세상을 사는 방법은 참 여러가지라는 생각도 합니다.
    군대라는 단어는 참 멀기만한 세상이었는데…
    펑펑 쏟아지는 눈 속에서 편지를 쓰면서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합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넓어진 선택 안에서 내 것을 다듬을 수 있어서 편하기도 합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것 우리모두 잊지 않고 있기 때문에…

    1. 旅인

      오랫만에 뵙니다. 아드님이 군대를 갈 때가 되었는데… 하던 참 입니다. 군대의 겨울은 힘든데 건강하게 넘겼으면 합니다.

      편지를 쓰시면서 아드님 생각이 많이 나겠지요?

      그림으로 된 답장을 받으실 수도 있겠네요.

      저는 요즘 제 외가에 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외고조부며 증조부에 대한 알려진 이야기 넘어 알려지지 않은 것이 너무 궁금하지만 결국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목소리며, 손길이나 눈길이 알려지고 기록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저도 멀리서나마 아드님이 군대생활을 잘 해나갈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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