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바벨의 도서관

우주공상과학 영화 중 가장 베스트를 친다면, 조디 포스터가 주연으로 나온 ‘콘텍트’이다. 앨리너박사(조디 포스터 분)는 외계에서 보내온 전파를 최초로 발견하고, 동료들과 함께 분석한다. 그러던 중 전파 속에서 외계인이 보낸 우주선의 도면을 발견한다. 미국 정부와 세계 각국이 컨소시엄을 구성, 이 도면을 바탕으로 우주 저 쪽에 있는 문명세계로 가는 우주선을 만든다. 우주선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서 우주로 발사되는 방식이다. 우여곡절 끝에 앨리너박사는 우주선을 타고 지구에서 25.3광년 떨어져 있는 거문고 자리의 알파별인 베가로 떠난다. 앨리너박사는 18시간에 걸친 여행을 끝내고 지구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가 베가에 갔다 온 것을 믿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눈 앞에서 우주선이 우주로 날아가지 않고, 중력의 법칙에 따라 그냥 추락한 것만 보았기 때문이다.

빛의 속도로 우주선이 날아갔다고 해도 우주선은 50.6년 후에 귀환할 수 있다. 하지만 앨리너박사는 9.8m/s²의 중력가속도로 우주선이 추락하는 그 몇초 사이에 25.3광년이나 떨어진 베가를 불과 18시간 만에 갔다 온다.

영화에서는 앨리너박사가 환상에 빠졌던 것인지, 진짜로 베가로 갔다 온 것인지, 단정을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관객들이 물리적인 극한과 정신적인 극한이 웜홀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데 인색하지는 않았다. 우주란 가설과 상상 그리고 말도 안되는 무한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복잡한 수식 그 자체가 환상이 되고 주문이 되는 그런 곳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 영화, ‘콘택트’를 참고하여 ‘인터스텔라’를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콘택트’를 능가하는 어떤 구석도 영화는 보여주지 못한다. 단지 ‘콘택트’에서는 왕복 50.6광년의 거리를 18시간 아니 불과 몇초 사이에 짠하고 갔다 왔다면, ‘인터스텔라’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를 설명하려고 한다. 웜홀과 블랙홀을 지나다니면서 지구에서는 백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빛의 속도로 날아다닌 결과, 쿠퍼는 지구에서 토성 부근의 웜홀에 다가가는 시간 약 8개월+α 정도의 시간(1년 정도?)을 보냈고,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입각하여 ‘속도는 거리를 시간으로 나눈 것’이라는 고전물리학의 절대시간과 공간 개념을 뒤엎고, 절대적인 것은 오히려 (빛의) 속도이며, 공간(거리)과 시간이야말로 상대적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별의 목소리’만큼의 상상력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이 영화에서 좋았던 점은 외계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외계인이 없는데 인간이 가서 살만한 다른 행성이라는 것이 있을까? 문명이 발달하지는 않았어도, 지능이 다소 모자라기는 하지만 진화된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은 채, 광합성으로 나무와 풀이 우거진 푸른 행성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크리스토퍼 놀란은 놀랍게도 외계인(유령)을 오히려 거대한 중력 때문에 시간과 공간이 중층적으로 압축된 블랙홀에 들어간 쿠퍼로 치환한다. 블랙홀의 모습은 재미있게도 보르헤스의 소설, ‘바벨의 도서관’을 닮았다. 참고로 영화에서 보여준 웜홀의 모습은 ‘알렙’을 닮은 것 같다.

층계의 아래쪽 오른편에서 나는 거의 눈에 담기 어려운 광채를 빛내고 있는 형형색색의 작은 구체 하나를 보았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회전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잠시 후 그 움직임이 그 구체 속에 들어있는 어지러운 광경들 때문에 생겨난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알렙>의 직경은 2 또는 3센티미터에 달한 듯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크기의 축소없이 우주의 공간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중략…) 나는 모든 지점들로 부터 <알렙>을 보았고, 나는 <알렙> 속에 들어있는 지구를, 다시 지구 속에 들어 있는 <알렙>과 <알렙> 속에 들어 있는 지구를 보았고, 나는 나의 얼굴과 내장들을 보았고, 나는 너의 얼굴을 보았고, 나는 현기증을 느꼈고, 그리고 나는 눈물을 흘렸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제멋대로 남용하여 쓰고 있지만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는 그 비밀스럽고 단지 상상적인 대상, <불가해한 우주>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 민음사 간, 보르해스 전집 3 알렙, 229~233쪽 –

This Post Has 4 Comments

  1. 흰돌고래

    콘택트에서 CQ CQ @:”~;# come back 했던 대사가 떠올라요.
    저도 그 영화 무지 흥미롭게 봤었거든요:)
    인터스텔라에 대한 소문이 자자하던데, 콘택트를 능가하는 어떤 구석도 보여주지 못한다니, 이거 기대감이 확 떨어지는걸요ㅎㅎ
    대신 인용하신 글귀가 흥미롭네요. 바벨의 도서관도 궁금하구요.
    알렙이란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우주관과도 닮은듯 합니다.

    1. 旅인

      보르헤스는 불교에 상당히 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알렙의 개념을 불교의 화엄적 세계관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화엄적인 사사무애한 비전은 인도인이어야만 가능하다고 하니까 말입니다.

      바벨의 도서관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중세의 도서관의 모델로 쓰이지만 보르헤스에 의하면 우주의 도서관인 만큼 ‘아카샤’이기도 합니다.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빛마저 중력에 빨려들어가는 블랙홀 안 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빌자면 시간과 공간마저 중층적으로 눌려있기 때문에 지나간 시간과 공간의 기록들을 조회할 수 있다는 상상은 신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보면서 좀 지겨웠습니다.

  2. penseur

    알렙 속의 지구, 그 지구 속의 알렙, 다시 그 알렙 속의 지구..(사실 그 소설을 읽지 못한 탓에 알렙이 뭔지도 모르지만ㅎㅎ)… 인터스텔라에서 행성들의 모습이 인셉션에서의 꿈속 공간들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던게 생각나네요. 우주라는 미지의 외부세계 만큼이나 무의식도 우리 내면에 있음에도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잖아요. 우리 안에 또 어떤 우주가 있는지 그저 상상만 할 수 있는…

    1. 旅인

      인셉션을 TV로 한 두조각만 보다 보니 인셉션의 꿈 속 공간이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꿈 속의 또 다른 꿈들의 모습인가요?

      알렙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지식과 풍경이 응축되어 있는 구체로 비슷한 것으로는 우주의 모든 지식이 들어있다는 아카샤와 같은 것인 것 같습니다. 알렙은 알레프벳(히브리 아브자드)의 첫글자로 알레프라기도 합니다. 보르헤스는 화엄의 사사무애(앞이 뒤를 가리지 않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같은 공간에 존재)한 세계관을 2~3Cm의 가상의 구체인 알렙에 구현해 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블로그 제목이 라캉의 ‘에크리’인 만큼 이런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무의식은 우리 내면에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무의식은 외재적입니다. 블랙홀이 있다면 화이트 홀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가설처럼 말입니다. 지식은 내가 아는 것을 아는 것, 내가 모르는 것을 아는 것 그리고 내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는 것 세가지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제4의 지식이 있다고 합니다. 내가 아는 것을 모르는 것이 그것입니다. 라캉은 무의식을 ‘내가 아는 것을 모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한번 다른 문장으로 고쳐본다면 ‘나의 무의식은 내가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 따라서 나의 무의식은 나의 외부에 있다. 즉 무의식은 나의 의식이 아니라, 타자의 의식, 타자의 욕망이다.’ 이렇게 해석됩니다.

      블랙홀의 중심으로 빨려들어간 물질과 시공간이 우주 어딘가 화이트 홀 밖으로 폭발해나온다니, 무의식이 나의 내면에 있으면서도 타자의 의식이자 타자의 지식이라니…

      미지의 영역은 참으로 광대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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