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구리와 미생

유홍준의 詩, ‘옆구리’를 읽으면 옆구리가 결리거나 쓰라리거나 뭔가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더욱 황당한 것은 그 옆구리마저 없다는 느낌이 들 때이다. 내 옆구리가 아니라 내가 막대기나 뾰족한 것으로 찔렀을 때, 텅빈 저들의 옆구리다.

미생 1~6편을 보았다.

살자고 다니는 직장이 그토록 살벌하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직장이라는 곳에 입사하려고 안달이다. 그렇다면 직장 밖의 세상은 도대체 얼마나 살벌하다는 것인가?

직장 생활이 맵고 쓴 이유는 일 때문이 아니다.

사전에 일이란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 또는 그 활동의 대상. 해결하거나 처리해야 할 문제. 또는 처리하여야 할 행사”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사장이나 상사에게 일이란 늘 ‘부하들이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왜 부하들이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지 심각하게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직원이나 부하들은 늘 게으르고 변명이나 일삼고 머리를 쓰기를 싫어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덜 떨어진 종족에 불과하다.

하지만 부하들이 일이 안되는 이유를 열거하자면 삼박사일 동안 떠들어도 모자라며, 그 대부분의 이유는 상사의 탓에 기인한다.

다시 돌아가 직장생활이 맵고 쓴 가장 큰 이유는

넥타이를 매고 직장에서 하는 일이라는 것이 도무지 일 같지 않은 탓이다. 일같은 일만 한다면, 자신의 밥값을 충분히 한다는 이유로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몸만 고달프면 된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화이트 칼러들은 쓸데없는 일들을 한다. 보고서나 기안서 그리고 여러가지 이름으로 된 문서를 작성한다. 이 화급하지도 일 같지도 않은 서류 일을 전문용어로 페이퍼 워크라고 한다. 이 페이퍼 워크는 대충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침소봉대하여 대단한 실적으로 가장 하거나 혹은 목표대비 실적미달이 나의 무능 탓이 아니라 시장환경과 회사의 사주팔자 탓이라고 애매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과장법이나 문제의 핵심을 모호하게 피하거나 끝을 흐리는 수사적인 기법이 동원된다. 그래서 직원들은 소설을 쓴다며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전공은 ‘국문과’인 것 같다는 말을 한다.

직원들은 페이퍼 워크를 줄여달라고 말한다. 나는 그런 직원들에게 말한다.

“쉿! 그 쓸데없는 페이퍼 워크야 말로 너희들의 밥줄이다. 쓸데없는 일들을 모조리 없애버렸을 때, 너희들 중 몇십 프로가 짤려나갈 지 모른다. 그러니 잠자코 있어라.”

쓸데없는 일에 밥줄을 대고 살아가는 직장인들은 일보다 눈치를 보게 마련이다. 몸으로 일을 밀고 나가는 피로보다,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하루 하루는 더럽고 지겨울 수 밖에 없다. 자신의 허약한 노동과 지겨움에서 버텨 나가기 위해서는 힘이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줄을 대거나 양떼 틈에 섞여 상사를 욕하거나 일 잘하는 놈을 험담하며 리스크를 1/n로 줄이려고 한다.

그러니까 인턴사원이나, 계약직이나, 정규직이나 모두 아직 두집이 나지 못한 미생일 뿐이다. 죽지도 살지도 못한 상태야 말로 지랄같이 피로하다.

유홍준의 시, 옆구리 읽기

 

This Post Has 8 Comments

  1. 후박나무

    넥타이 매고 정식 직장생활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직장 생활의 고단함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갑니다.

    미생…
    슬프고, 화 나고, 무서울까봐 아직 못보고 있네요.ㅠ

    1. 旅인

      이것이 바로 생산수단을 갖지 못한 노동자의 (인격적) 소외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얼마전 KT의 강제퇴직과 관련하여 퇴직을 강요당한 직원이 조만간 명단에 올라갈 지 모르는 사람들(동료와 부하들)로 부터 소외(왕따)당하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이러한 소외는 직장이라는 현장 뿐 아니라, 가정에서조차 소외로 내몰리고 만다는 비참한 현실입니다. 가장은 가정의 생존과 행복을 책임지는 존재가 아니라, 자식들의 학원비와 과외비 그리고 아내의 수영 및 문화강습비 및 동창회 등 품위유지를 위한 돈을 벌어오는 존재로 전락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동운동의 가장 강력한 저항세력 중 하나는 사용자 만이 아니라 동창회 따라 해외여행가고 요가클럽에 가서 몸매를 다듬는 아내와 아이들 즉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시대의 아내와 아이들이 왕따를 면하고 안락함을 누리는 주체라는 것은 아닙니다만…

  2. 흰돌고래

    저도 요즘 미생 보고 있어요. 아직 2화까지밖에 보진 못했지만요.
    저렇게까지 치열할 수밖에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일같지 않은 일 ㅎㅎ
    제 일을 되돌아보게 돼요.
    일다운 일을 할 때도 있고, 일같지 않은 일을 할때도 있어요.
    제가 열받고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일같지 않음’ 때문이었네요 ㅎㅎㅎ
    화이트칼라는 아니지만 그래도 일에서 받는 통증은 닮은 것 같아요.

    1. 旅인

      아이들을 위한 흙놀이나 야외관찰 등의 일들을 해보려고 하여도 부모들이 안좋아한다. 그것을 했을때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는 없느냐? 예방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굳이 위험한 일을 할 이유가 뭐냐? 그냥 실내에서 안전하게 할 수 있는 다른 놀이로 대체하자……

      이러다 보면 정작 아이들을 위하여 무엇을 해보고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일들이 점차 심드렁해질 수 밖에 없게 되겠지요.

      직장이 맨날 저렇게 치열하다면 살아갈 수 없겠지만, 때로는 처절할 정도로 살벌할 경우가 있지요. “오늘 저녁 저희 회사 어음이 부도처리될 겁니다”라는 거래처의 전화같은 거 말입니다.

  3. 위소보루

    하고싶은 일을 한다, 혹은 주어진 일에 흥미를 느낀다라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이었는지 이제서야 알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 마치 공부가 하기 싫었던 것.

    회사에 들어가서 적응이 되고나서 들었던 생각은 ‘아, 이런데도 회시가 돌아가는구나. 참 신기하다’ 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숫자와 단어를 조작해서 원하는 결과를 도출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는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본인이 책임을 지는 일을 맡게 되고 나서야 그나마 일에 관심을, 혹은 좀더 신나게 일을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후에 다른 방향으로 최종결정을 윗사람들이 할때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겠지만요.

    이래저래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드라마 같습니다. 옆구리라는 시는 정말 텅빈 옆구리를 푸욱 하고 찌르는 듯한 느낌이네요

    1. 旅인

      아마 저처럼 무감각해진 사람보다 위소보루님이야말로 애환을 더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홍준씨의 시는 심금을 울리는 힘이 있더군요. 물고기는 옆구리 밖에 없는데 진화를 하면 할수록 옆구리는 허리로 퇴화하는 것이 아닌지 싶으면서도 등짝이 넓어지고 삶에 무게도 늘어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옆구리로 떠오르는 죽은 물고기를 보면, 죽음이 저렇게 속수무책인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4. 아톱

    그런데 현실은 미생보다 더욱 처절하고 힘겹다고 하잖아요.
    얼마나 심할지 상상조차 안 되네요.
    저같은 사회 초보자는 느끼지 못할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드는 곳이겠지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좋으련만 갈수록 그럴 희망은 작아지고 미생같은 것을 볼 때면 저희같은 힘없는 88만원세대들은 한숨만 늘어가네요.

    1. 旅인

      이렇게 처절한 고용환경과 협소한 노동시장이야말로 근로자의 심신을 좀 먹는 것 뿐 아니라, 패자에겐 부활전이란 없다 라며 과다경쟁의 교육환경을 조성하여 청소년들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며 투신자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살벌한 고용과 노동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회사나 사주 일가의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비리를 저지를 수 밖에 없고 공범이 됩니다. 그 비리를 고발하거나 할 경우 사측의 근거없는 각종 민형사 소송에 휘말리게 되고 돈과 힘에 밀려 지고 만다는 두려움 때문에 침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일년 사시사철 거래와 계약이 이루어지는 노동시장, 그리고 개별적인 연봉계약이 이루어지고, 근무경력을 바탕으로 이직과 전직이 자유로운 노동시장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지금처럼 몇십 몇백대 일의 과대포장된 공채시장은 없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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